통일한국 新성장엔진, 시베리아를 가다 | 한민족 풀뿌리 생명력, 중앙아시아까지 뻗어나가다 2012년 7월호
통일한국 新성장엔진, 시베리아를 가다
한민족 풀뿌리 생명력, 중앙아시아까지 뻗어나가다

한국·카자흐스탄 수교 20주년 및 고려인 이주 75주년을 기념하는 한민족 축제가 지난 5월 12일(현지시간) 알마티 카주구 대학교에서 열린 가운데 고려극장 무용단이 소고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시베리아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전형적이다. 땅 속 깊게 얼어 있는 동토대, 인간이 살기 어려운 혹한, 매일 부는 눈보라 속에서도 줄줄이 이어지는 죄수들의 유형의 길, 한마디로 인간이 생각하기 싫은 거의 모든 종류의 고난과 역경 등 어려운 환경이 떠오르는 지역이다. 그러나 동토대 중간 중간에 말들이 달리는 평원이 있고, 순록이 풀을 뜯는 초원이 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우리의 조상들이 말을 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던 터전이 있었다.
러시아의 많은 고고학자들도 동의하듯, 시베리아의 역사는 아주 오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BC 2세기에 훈족이 등장했고, 그 이후 시베리아는 몽골·투르크계 유목민족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13세기에는 유럽에 위대한 칸이 등장하여 “눈이 쪽 찢어지고 피부색이 노란 인종”에 대한 무한한 두려움을 서구인의 정신 속에 각인시켰으며 러시아를 포함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거의 250여 년이나 지배했던 킵차크 한국의 시대도 있었다. 몽골제국은 러시아에 정신적 외상을 남겼지만, 그 이면에는 위대한 통치의 유산도 남겼다.
시베리아와 한민족의 비극적 재회
16세기부터는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상인(스트로가노프)의 지도와 카자크족(예르마크)의 집중적 공세로 초원에 살면서 문명을 등진 유목민들은 문명적 도구와 세력 앞에 시베리아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러시아 개척민들의 이동이 시작되었고, 17세기부터는 본격적인 탐험과 조사가 진행되었다.
거친 대자연 속에서 시베리아를 탐험한 용감한 탐험가들과 시베리아의 자연과 인간을 조사한 지리학자, 문화인류학자들의 도움으로 시베리아는 어느덧 러시아의 문명권 또는 문화권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러시아 제국은 시베리아의 다양한 소수 유목민의 문화와 지리와 역사를 흡수하면서, 유라시아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개척은 자연기후·인간적 장벽으로 희생을 강요했고, 수많은 누군가는 원치 않는 희생을 당했다. 범죄자들을 포함하여 제국이 원하지 않았던 많은 인물들이 시베리아의 곳곳에서 개척촌 건설과 함께 광산개발, 철도건설, 요새구축 등에 강제동원되어 목숨을 바쳤다.
북방 시베리아에서 말을 달리던 우리의 호연지기는 한반도로 이주해 오면서 완전히 잊혀져 버린 것일까? 그나마 발해, 고구려까지만 해도 우리는 광활한 대지에서 대제국을 이루어 살아왔다. 19세기에 러시아는 사할린과 아무르 지역과 연해주 지방까지 진출했다. 이로써 한반도로 후퇴한 한민족은 잊혀진 터전을 정복한 새로운 문명세력과 마주치게 된다.
우리에게 잊혀진 옛 터전 시베리아에는 소비에트의 공격적 개발을 포함하여 ‘야만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력들이 빠른 속도로 개발을 진행했다. 철도와 강을 따라 개척촌과 농가가 들어서고, 도시와 공장들이 광활한 공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시베리아는 무한한 부와 자원을 약속하지만, 언제나 그 대가로 만만하지 않은 희생도 요구했다. 시베리아와 한민족의 오랜 이별 후의 재회도 비극적이며 희생적인 것이었다.
시베리아, 조상들이 남긴 약속의 땅?
19세기 중엽, 시베리아가 조선과 국경을 접하게 되고, 민족과 옛 터전이 새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나간 세월은 새로운 만남에 커다란 장벽을 만들어 놓았다. 시베리아는 이미 남의 나라, 남의 땅이 되었고, 함부로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1864년(고종1년) 대흉년은 잊힌 지 오래되는 우리의 유목적 기질을 되살렸다. 비록 배고픔을 피해 두만강을 건넜지만, 강을 건너고 척박한 땅을 개척하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의 터전을 잡은 그들은 진정 유목민의 후예다운 개척자 모습 그대로였다. 1874년 25명이 이주하여 초가집 다섯 채로 시작된 블라디보스토크의 개척리는 l년도 채 못 되어 신한촌(新韓村)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시 시베리아는 우리 민족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1937년 일본과
소비에트의 제국주의적 적대관계로 인해 북방으로 진출한 우리 민족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다. 그러나 낯설고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광야에서도 우리 민족은 치열한 개척과 개간 속에 풀뿌리처럼 살아남았다.
가장 추운 지방에서 생활하던 까닭에 얼굴이 두텁고, 검은색의 곧은 머리카락과 돌출된 광대뼈, 흑갈색의 눈동자 그리고 몽고반점은 일찍이 우리 민족의 조상들이 드넓은 시베리아의 어디에선가 말을 달리던 기마민족, 유목민족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눈보라가 날리고 땅이 얼어 있는 광활한 시베리아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까닭은 바로 그곳에서 우리 조상들이 살았고, 우리가 바로 그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베리아는 아마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겁이 없는 기마유목 민족인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긴 부와 풍요와 약속의 땅은 아닐까?
배규성 /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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