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소수자의 현실과 이상 2012년 7월호
영화리뷰
<줄탁동시( 啐啄同時 )> 소수자의 현실과 이상
영화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밝힐 것이 있다. 이 영화 〈줄탁동시〉가 필자의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다. 먼저, 요즘 북한소재 영화가 기근이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탈북자가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 선택의 계기가 됐다. 두 번째는 제목 〈줄탁동시〉가 주는 매력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필자의 끌림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룬 퀴어(Queer)영화다.
영화 〈줄탁동시〉에는 동성연애자와 탈북자, 조선족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들을 등장시켰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밴쿠버영화제, 런던영화제 등에 출품됐고 <얼굴 없는 것들>,
<청계천의 개>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온 김경묵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탈북 청년 ‘준’과 동성연애자 ‘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사회 소수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준’은 주유소 아르바이트, 전단지 배포 등 돈을 버는 일에 몰두하는 청년이고 ‘현’은 유부남 애인이 마련해준 고급 오피스텔에서 사는 불안한 청춘이다. 둘 다 회색빛 도시에 정처없이 몸을 싣고 표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둠의 껍질을 깨는 시간
영화는 탈북 청년 준이 오토바이에 조선족 순희를 태우고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들 둘은 같은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 매니저에게 희롱 당하던 순희를 데리고 주유소를 도망쳐 서울 명소 곳곳을 다니며 평소 느끼지 못했던 여유를 즐긴다.
동시에 동성애자인 ‘현’의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현’을 등장시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흥행적인 측면을 생각했을 때 말이다. 우선 영화 〈줄탁동시〉를 둘러싼 영화심의위원회의 제한상영 판정을 둘러싼 논란은 거의 몇 십분 동안 지속되는 동성애 장면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를 다양성의 한 측면으로 보는 에토스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솔직히 필자의 심리 언저리에도 퀴어영화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이 존재한다.
김경묵 감독은 영화 시사회장에서 “이 영화가 제한상영가, 외설 위주로 얘기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작품 자체로 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뇌리에 그 장면이 강하게 각인되는 이유는 이야기의 전개흐름상 ‘현’과 ‘준’의 정사장면이 반드시 필요했는가 하는 부분과 관련이 있다. 이 둘이 이불속에 뒹굴면서 ‘현’이 ‘준’이라는 묘한 복선을 심어놨지만 의미의 중첩과 은유를 과도하게 착종시킨 느낌이다. 때문에 처음에 등장했던 ‘순희’는 다시 영화 속 소수자로 전락해 버렸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제목과 관련된 것이다. 김경묵 감독이 ‘줄탁동시’라는 멋진 사자성어를 빌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상에서 그러한 선종(禪宗) 공안의 그윽한 체취는 느껴지지 않는다. 병아리가 껍질을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여 밖에서 쪼는 것을 ‘탁(啄)’이라 하는데 결국 깨달음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에게 어미닭과 같은 멘토가 깨우침의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 본인의 노력에 따라 껍질을 뚫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다.
즉 ‘줄탁동시’ 자체가 깨달음과 관련된 공안이다. 때문에 소외된 소수의 젊은이들 속에서 그러한 부분이 그려져야 제목과 수미일관하게 된다.
국가 없는 존재들의 비애
반어법으로 사용했다 해도 영상 속에서는 소수자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흐느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어 제목인 〈Stateless Things〉가 더 와 닿는다. 직역하면 ‘국가없는 것들’ 정도 된다. 보호막이나 경계, 구조나 틀이 없는 젊은이들을 묘사한 제목으로 〈Stateless Things〉는 적절한 작명이다.
이러한 ‘서슬 퍼런(?)’ 필자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영화 〈줄탁동시〉가 많은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것을 보면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가(大家)틱한 제목에 비해 뭔가 약간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이 영화의 김경묵 감독은 1985년생이었다. 우리 나이로 28세다.
또 영화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여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는데 주인공인 이바울(준), 염현준(현), 김새벽(순희)의 나이도 전부 20대 중반이다.
개인적으로 김경묵 감독의 영화적 센스가 돋보인 장면을 꼽는다면 중반부에 카메라 롱테이크(long take) 기법으로 ‘준’이 사람 없는 새벽 종로거리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준의 정처 없이 걷는 빠른 걸음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여운을 선사한 장면이다. 필자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 영화계의 재능있는 젊은 감독의 실험성이 돋보이는 영화다.
서유석/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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