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 “여보, 나야…” 2012년 7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여보, 나야…”
7월이라 하면 북한에서는 ‘환생의 달’이다. 텃밭, 그리고 소토지 밭에서 이른 봄에 심어 놓은 감자를 수확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봄 내내 여린 풀만 찾아다니다가 주먹 같은 감자를 삶아 된장이나 소금에 찍어 목이 메게 먹는 재미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그런데 이 맛엔 여러 가지가 있다. 불법이지만 근면하게 제 밭을 일군 사람은 맘 놓고 먹을 수 있어도 직장일이 바쁘거나 단속하는 사람의 눈치 때문에 뙈기밭을 일구지 못한 사람은 구경만 해야 한다. 정말 그럴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 시기엔 60살 이상은 젖혀두고 밥숟가락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여 앉으면 카드놀이에 열중한다. 지는 쪽은 이유를 불문하고 감자 도둑질을 간다. 네 명이 카드를 쳤다면 진 두 명은 배낭을 지고 어디든 가서 감자를 도둑질해 와야 한다.
“이 양심 팔아 개를 준 양반들아!”
북한에서는 법보다 더 잘 지켜지는 것이 바로 카드놀이 결과다. 먹기 위한 게임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방법이 아니고 만약 혼자 남의 밭에 침입했다면 그건 틀림없는 도둑놈으로 매도되기 때문이다. 집체의식(?) 때문인지 카드놀이 결과로 밤길을 가는 것에 대해 누구도 도둑질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필자도 집 주변에 있던 작은 탄광합숙에서 4인조에 들어 어느 날 카드를 쳤다. 아내가 감자밭 경비를 나가라는 것을 직장 경비라는 구실을 대고 겨우 빠졌는데 결과는 운 좋게도 이겼다. 진 사람 둘은 툴툴거리며 배낭을 메고 밤길에 나섰다. 두어 시간만 기다리면 한 배낭 둘러 메고 올 것이므로 모두 군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한 시간 반쯤 지나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더니 감자 배낭을 멘 ‘습격조’가 들어섰다. 성공이었다. 주먹 같은 감자가 배낭에서 우르르 쏟아지자 모두 환성을 질렀다. 벌써부터 군침을 넘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도 두 배낭씩이나 가져 왔으니 말이다. 한밤중에 난리가 났다.
물을 길어 감자를 씻는 사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사람, 들썩이는데 웬 아주머니가 서슬이 퍼래 갖고 문을 벌컥 열었다. “야, 이 양심 팔아 개를 준 양반들아! 남의 감자 파다가 이게 뭐 하는 짓들이야?”
그 순간 필자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 아주머니가 다름 아닌 내 아내였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경우가 다 있다니!’ 얼굴을 숨기느라 둘둘 말아 밀어 놓은 이불에 머리를 틀어박는데 아내가 들고 온 작대기로 공교롭게도 나를 쿡쿡 찔렀다.
“이 양반아, 왜 얼굴 숨기면서 그래? 그래도 부끄러운 건 알아서, 머리 들어요! 낯바대기나 좀 보게. 봄내 애써 가꿔 났더니 하루 밤에 감자밭을 탕쳐? 아이고 내 분해서. 돌아서라니까!”
안 돌아설 수도 없고 해서 “여보, 나야…” 하며 얼굴을 돌렸다. 그때 너무 기막혀 입을 짝 벌리고 필자를 쳐다보던 아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농장 밭은 무장경비를 서고 개인 밭도 모두 밭머리에 초막을 쳐 놓고 경비를 서는 터라 그 짧은 시간에 두 배낭씩이나 가져온 것이 결국은 내 집 밭을 도륙낼 줄 어이 알았으랴. “당신이야? 당신이 제 집 밭을 탕치라고 사람을 내보냈어?” 승벽이 강하기로 이름난 아내다. 아마 내가 아니었다면 그날 밤 누구든 한 명은 그 작대기에 얻어맞았을 것이었다.
“제 집 밭을 탕치라고 사람을 내보냈어?”
사실 필자는 가정에서 모범 세대주는 못 돼도 아내를 등쳐먹는 미련한 ‘곰탱이’는 아니었다. 북한에는 먹고 살기 위해 아내가 술을 빚어 항아리에 담아 놓으면 그걸 몰래 꺼내서는 “나중에 삼수갑산 가더라도 우선은 먹고 보자.” 하며 마시고, 장사일로 아내가 밖에 나가면 집안 물건을 장에 내다 헐값에 팔아 음식이나 술을 사서 마시는 못난 남편이 수두룩하다.
그랬지만 필자는 굶으면 굶었지 절대 그런 짓은 안했다. 그런 착한 경력이 있었기에 그 밤 아내의 너그러운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는 매일 밤 감자 밭에 나가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