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생계형 고문간첩? … 우리 사회 문제 파헤쳐 2012년 12월호
영화리뷰
<간첩> 생계형 고문간첩? … 우리 사회 문제 파헤쳐
“웅~~”
‘목란이 폈다’
메시지를 확인한 사내는 황급히 어디론가 자리를 옮겼다. 암호명 김과장(김명민 분)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최부장(유해진 분)을 기다린다. 그렇다. 이것은 고정간첩 5만명 시대(고 황장엽 비서 증언)의 접선장면이다.
옛날같이 골치 아픈 난수표의 해독이나 비밀지령은 없다. 이른바 모바일 시대에 따른 맞춤 접선이다. 김과장은 불법 비아그라를 파는 일명 ‘따이공’ 보따리상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항상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내에게 시달리는 남파 경력 22년차의 베테랑 간첩이다.
영화 <간첩(2012)>은 말 그대로 고정간첩을 소재로 첩보 액션에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한 영화다. 이런 점만 보면 영화 <간첩 리철진(1999)>과 비슷하지만 사실 <의형제(2010)>의 요소도 많이 발견된다.
따이공(보따리상), 싱글맘, 농민, 독거노인. 영화 <간첩>은 “간첩질 10년이면 작전도 생활이 된다!”는 홍보 문구처럼 10년 만에 새로운 암살지령을 받게 된 간첩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각각 따이공, 부동산중계업, 목축업 등에 종사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생활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간첩질 10년이면 작전도 생활이 된다?
영화 이미지 컷에 크게 부각되어 있듯이 이 영화는 현시대를 살고 있는 간첩을 ‘생계형’이라는 말로 압축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나왔던 북한관련 첩보영화를 꼽는다면 <쉬리(1998)>를 시작으로 <간첩 리철진>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 <쉬리>는 남북분단 문제를 스크린에 올려 히트 친 기념비적 작품으로 이후 유사한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쉬리>의 성공 후에 곧 이어 <간첩 리철진>이 개봉되었다. <간첩 리철진>은 무섭고 은밀한 간첩의 이미지를 희화화하여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영화 <이중간첩(2002)>이 개봉되면서 간첩은 다시 무겁고 신중하게 남북분단 현실의 행위자로 돌아왔다. 영화 <이중간첩>은 위장귀순 간첩 병호(한석규 분)가 당국에 이용당하고 결국 용도폐기의 위기에 처한다는 다소 어두운 흐름의 영화다. <이중간첩> 이후에 <의형제>가 개봉하여 <쉬리> 이후 부진했던 간첩영화 흥행에 불을 붙였다.
영화 <의형제>의 주제의식은 다소 복합적이다. <의형제>는 <이중간첩>에서 비추어지는 ‘국가’라는 괴물에 수동적으로 희생당하는 개인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애에 근거해 제3의 길을 선택한다는 결말을 갖고 있다. 남북문제에서 ‘간첩’이라는 객체를 1차원적 인물로 묘사하지 않고 다차원적인 자유의지를 갖는 영혼으로 그렸다.
물론 이 영화의 흥행에는 꽃미남 강동원의 등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영화에서는 이러한 미남 배우들이 터프한 역할로 나와 여성관객들에게 ‘반전’을 전달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듯하다.
<의형제>나 <이중간첩>에 비하면 <간첩>의 분위기는 가볍다. 분단현실 앞에서 간첩들이 갖고 있는 고민도 가볍게 처리됐다. 정작 버거운 것은 생계를 유지하고 자식을 교육시키는 현실의 문제다. 영화 속 고정간첩 4명의 위장신분도 보따리상, 싱글맘, 농민, 독거노인 등이다.
돈, 교육, 생계가 사상, 임무, 충성 압도
바로 우리 사회의 문제다. 실제로 영화 시사회에서 우민호 감독은 “간첩을 그린 작품이지만, 중점을 둔 건 간첩이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FTA, 전셋값 폭등, 싱글맘, 독거노인 문제 등으로 아파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었다.”고 제작의도를 밝혔다.
하지만 영화 <간첩>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문제와 분단문제를 매끄럽게 접합시키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영화 속에서 그러한 문제는 너무 가볍고 코믹하게 처리됐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최근 자주 발생했던 간첩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듯 했고, 시놉시스나 시퀀스는 <간첩 리철진>과 <의형제>에서 따온 듯하다.
영화 <간첩>은 기존 간첩영화의 전형적인 법칙을 따르고 있다. 간첩과 국정원 요원 간의 이분법적 관계, 그리고 북한에서 직파된 열성주의자로 인한 갈등의 고조 등. 다만 이 영화에서 ‘돈’, ‘교육’, ‘생계’라는 일상적인 단어가 다소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는 ‘사상’, ‘임무’, ‘충성’ 등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에선 간첩영화의 시대별 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분단소재 영화는 결국 남북한 관계의 현실 그리고 우리 현실문제와의 끊임없는 대화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좌이든 우이든 말이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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