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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해우소? 그거 소 이름 아냐” 2012년 12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42

 “해우소? 그거 소 이름 아냐”

설악산 백담사에 갔다. 빨간 단풍이 어우러진 백담사를 돌아보고 나오다 함께 했던 지인에게 화장실이 어딘가 물었다. 지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아, 저쪽에 있어요. 저기 써 붙였네요.” 하고 가리켰다. 그런데 내 눈에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요? 안 보이는데요.” 했더니 “저기 ‘해우소’라고 쓴 게 있잖아요.”라고 했다. 해우소? 그게 어떤 소지? 어리둥절했다. 혹시 내 말을 잘못 듣고 다른 곳을 알려주지 않나 싶었지만 그는 “절에선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해요.” 했다. 화장실은 그냥 볼일만 보고 나오는 장소가 아니라 마음 속 시름과 걱정도 함께 털어내는 장소란 의미로 해우소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 의미가 그럴 듯 해보였다. ‘해우소, 그러니까 그게 소 이름이 아니고 화장실이었네.’ 나는 처음 듣는 말인지라 금방 잃어버릴 것 같아 속으로 곱씹으며 볼일을 보러 갔다. 해우소에 들어가 앉아 이상한 생각을 했다. 여기에 앉아 어떻게 마음 속 시름을 털어낸다는 걸까? 글쎄, 볼일 급했던 시름은 금방 털어내겠지만 마음 속에 멍든 상처와 시름은 어떻게 터나?

해우소는 알아도 윤두소는 몰라?
나는 지인에게 말했다.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은 해우소가 화장실인 것을 모르겠는데, 저렇게 써 붙이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겠네.” 내 말에 지인은 껄껄 웃었다. “북에서 온 사람들은 모르지만 남쪽 사람들은 다 알지요. 예로부터 불러오던 이름이니까요.”라고 한다. “아, 그래요? 제가 아직 배울 것이 참 많네요. 아마 북에 가서 해우소가 뭐냐고 퀴즈를 내면 무슨 소 이름인가 할 거예요. 젖소, 부림소, 윤두소 같은 거 말입니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인이 물었다. “가만, 금방 한 말 중에 윤두소라고 하던데 그게 뭐죠?” 지인도 나도 어안이 벙벙해 서로를 쳐다봤다. 지인은 윤두소란 말을 몰랐고 반대로 나는 그가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윤두소야 옛날부터 있었지 않는가? 내가 설명했다. 부농이나 중농이 소를 빈농에게 빌려주고 값을 받는 소라고. 그제야 지인이 알만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소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몰랐다.

집에 돌아온 후 사전을 뒤적거렸다. 거기엔 ‘윤두소’가 ‘임소’와 비슷한 말로 ‘북한어’라고 되어 있었다. 그래서 또 한 가지 배웠다. 아니, 나만 배운 것이 아니라 지인도 나로 인해 북한 사람이 해우소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과 윤두소가 뭔지를 알게 됐다. 이런 것이 작은 통일, 사람의 통일을 이루는 과정일 것이다.

그 귀한 오징어가 왜 남쪽 바다에만?

탈북자들은 남한에 살면서 남북이 일부 동물의 이름도 다르게 부르는 것을 보게 된다. 나는 탈북 과정에 제3국 수용소에서 남한 사람을 처음 만나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그가 북에도 ‘오징어’가 많은지 물었다. 우리는 오징어가 아주 드문 어종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남쪽엔 오징어가 엄청나게 많다고 했다. 그 귀한 오징어가 그렇게 많을 수가? 나는 오징어의 뼈가 상처를 아물게 하고 피를 멈추게 하는 귀하고 좋은 약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귀한 오징어가 남쪽 바다에만 떼를 지어 산다니, 선뜻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오징어 잡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듣다보니 낙지잡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런 것은 북에도 많은데 그게 ‘오징어’가 아니고 ‘낙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종이에 그림까지 그리면서 자기 말이 옳다고 우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럼 낙지를 그려보라고 했다. 다시 그린 그림은 다리가 길고 몸통이 작았는데 그것은 북에서 ‘서해낙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남쪽에선 북의 ‘낙지’를 ‘오징어’로 불렀고, 북에서 말하는 ‘서해낙지’만을 ‘낙지’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약재로 쓰는 오징어를 남쪽에선 ‘갑오징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야생동물인 경우에도 북에선 호랑이를 ‘범’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남쪽에선 젊은 세대가 거의 쓰지 않았고 ‘범’이라면 무슨 동물인지 얼른 인식하지 못했다. ‘고라니’라는 동물도 보았는데 그것은 북에서 보던 ‘노루’ 중에 몸집이 작은 종자였다. 그런 노루를 보통 ‘누렁이’로 불렀다. ‘노루’란 이름 역시 젊은 세대들은 잘 모르고 ‘고라니’만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범’이니 ‘노루’니 ‘승냥이’니 하는 말은 노인들이 더 잘 알아들었다. 옛적부터 남북이 함께 공유했던 말들을 어르신들이 많이 알아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라도 통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만약 통일이 되면 남북의 노인들이 제일 말이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우소’를 소 이름으로 착각하지 않고, ‘낙지’와 ‘오징어’, ‘범’과 ‘호랑이’, ‘노루’와 ‘고라니’가 다르지 않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때, 그 때라야 통일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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