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12월 1일

기획 | 대남 관계개선보다 ‘적대적 의존관계’ 활용한 대내결속 주력 2012년 12월호

기획 | 김정일 사후 1년 … 김정은의 북한은?

대남 관계개선보다 ‘적대적 의존관계’ 활용한 대내결속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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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4월 2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평양시 군민대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새 지도부는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으로 권력승계를 마무리했다. 김정은 체제는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문화하고, 군사강국을 이뤘으니 경제강국으로 나가야 한다는 경제우선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 내부자원이 고갈된 북한이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대외관계를 풀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북·미 적대관계를 풀어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가 외부세계와 관계설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할 경우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남 강경노선, 충성과 선명성 경쟁 탓
공식승계 이후 김정은 체제가 사상이론적 조정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이다. 북한은 혁명과 건설의 기본단위를 나라와 민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이 남북관계를 풀 때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따라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과 북은 관계설정에 실패하고 갈등을 지속해왔다. 김정은 체제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 천안함 및 연평도 사태 등으로 악화될 대로 악화된 남북관계를 풀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남측의 대선 이후를 대비하는 관망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정일 사후 최근까지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급변사태론에 입각한 대북정책, 조문문제, 군표적지와 전투구호, 한·미 군사훈련 등을 문제 삼으면서 “리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김정일 사후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설정을 위해 대화를 추진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의 대남 비난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김정일 사후 남측의 대응과 대북정책을 문제 삼아 국방위원회 성명(2011년 12월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백서(2012년 1월 12일, 4월 2일) 등을 통해서 연일 대남비난을 쏟아냈다. 북한의 불만은 남측이 2011년 대화제의를 거부하고 조문을 불허하는 등 ‘최고 존엄’을 건드린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은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한 자들은 천벌을 면할 수 없다.”(<조선중앙통신> 1월 17일 논평)고 하면서 권력승계와 관련한 이런저런 말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미 군사훈련과 관련해서도 과민반응을 보였다. 2012년 3월 2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고 “특대형 도발자에 우리식 성전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고, 3월 3일 북한 외무성은 “리명박 역적패당을 무자비하게 징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측 군부대에서의 북한 지도자와 관련한 전투구호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새 지도자에 충성경쟁을 하듯이 북한의 거의 모든 기관들이 나서 연일 입에 담기 어려운 험한 말들을 동원해서 남측 지도자를 비난했다. 전투구호와 관련해서 북한은 ‘보복성전’을 거론하며 남측 당국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고양시켰다.

남측 새 정부와 관계복원 준비하는 듯
이와 같이 김정은 체제는 집권 초기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기보다는 남북 간 ‘적대적 의존관계’를 활용한 대내결속에 주력했다. 3대세습의 유일체제를 운영하는 북한의 경우, 식량난 등 산적한 국내문제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습성화돼 있다. 북한이 외부세계와 적대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경제적으로는 매우 궁핍하지만 정치적으로는 3대 세습까지 이어지는 유일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 사후 북한의 대남비난 수위가 높아진 것은 다소 감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김정은 체제의 권력공고화 차원의 외부의 적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각급기관들은 충성경쟁과 선명성 경쟁차원에서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데는 임기 말의 남측 정부와의 관계진전이 다음 정부와의 관계설정에 부담이 된다는 노무현 정부 임기 말의 경험이 반면교사로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북한은 남측 대선과 관련해서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등 선거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남측 이명박 정부를 사상 최악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정부로 낙인찍어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대남비난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 시대가 마감한 것을 계기로 남북 사이에 정치적 화해를 이룰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갈등이 심화됐다. 김정은 체제는 임기 말의 남측 정부와의 관계복원을 모색하지 않고 남측의 새 정부와의 관계복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 출범 초기에는 북한의 각급 기관이 충성경쟁 차원에서 대남비난 수위를 높여왔지만 공식승계 이후부터는 경제부문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대남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은 말로 하는 위기조성 수위를 높였지만,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남도발은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식승계 이후 김정은이 한 첫 공개연설(4·15연설)에서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하여 남북관계 복원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정은의 이러한 주장은 김일성이 제시한 ‘민족대단결론’과 김정일이 내놓은 ‘우리민족끼리’ 노선에 따라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시대 최대 과제는 경제문제이며, 내부자원이 고갈된 상태에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외관계를 풀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남한당국을 배제하면서 대외관계를 풀 수는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빚어진 지나친 대중국 의존도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남북관계 복원은 불가피할 것이다. 북·미관계 진전을 위해서도 북한은 남북관계를 일정부분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과 북에서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하고 주변 국가들에서의 권력교체가 마무리되면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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