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3월 1일

긴급진단 | 개성공단 전면중단 남북관계 제로시대

print

긴급진단 | 불 꺼진 개성공단, 파장과 전망은?

개성공단 전면중단 남북관계 제로시대

남북 화해의 상징이던 개성공단이 결국 문을 닫았다. 2005년 가동에 들어가 12월 첫 제품이 생산되고 10년여 만이다. 연초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이뤄지자 공단 출입경을 통제하던 정부가 결국 장거리 로켓 발사에 공단의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개성공단 전면 중단 관련 정부 성명’에서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 이상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전면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개성공단을 국제적 규범에 부합하는 공단으로 조성한다는 입장 하에 그동안 개성공단이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면서 “그러나 정부의 노력은 결국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고도화에 악용된 결과가 됐다.”고 강조했다.

KR_201603_37

개성공단 발전 노력,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에 악용됐다

정부의 입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더 강력한’ 대북 제재안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 정부가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홍 장관이 성명에서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북한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히 대응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데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당사국인 우리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공단 가동 전면중단 조치는 발표 당일 북한에 통보됐고 북한은 이튿날인 2월 11일 공단폐쇄 조치로 맞섰다.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11일 10시부터 개성공업지구와 인접한 군사분계선을 전면봉쇄하고 북남관리구역 서해선 육로를 차단하며 개성공업지구를 폐쇄하고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어 “개성공업지구에 들어와 있는 모든 남측 인원들을 11일 17시(우리 시간 오후 5시 30분)까지 전원 추방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남측 잔류 인원 280명 전원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귀환했다.

조평통은 또 “개성공업지구에 있는 남측 기업과 관계 기관의 설비, 물자, 제품을 비롯한 모든 자산들을 전면동결한다.”면서 “추방되는 인원들은 사품 외에 다른 물건들을 일체 가지고 나갈 수 없으며 동결된 설비, 물자, 제품들은 개성시 인민위원회가 관리하게 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또 “남측 인원 추방과 동시에 남북 사이의 군 통신과 판문점 연락통로를 폐쇄한다.”면서 “11일 우리 근로자들은 개성공업지구에서 전부 철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에 투자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자산은 금강산 지역의 남측 관광시설과 유사한 절차를 거쳐 몰수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은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2010년 초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마저 결렬되자 금강산 지구 내 남측 자산을 몰수했다. 여기에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산 몰수 이후 개성공단 지역이 군사시설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이다. 조평통이 개성공단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남측 자산 동결 공단 지역, 군사통제구역 선포

원래 개성공단 지역은 유사시 최우선 남침 경로로 꼽혀왔다. 북한 입장에서 개성은 병력과 장비를 집결해 두었다가 문산을 거쳐 서울까지 최단시간 내에 돌파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실제로 공단 착공 이전에는 개성과 판문읍 봉동리 지역에 인민군 2군단 산하의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이 배치돼 있었다. 6·25전쟁 때에도 개성 북방에 주둔했던

6사단이 전차를 앞세워 개성과 옹진 일대를 점령한 뒤 서울의 영등포까지 신속히 전개한 것으로 전사에 기록돼 있다. 공단 착공 이전에 인민군 6사단은 주력 전차인 ‘천마호’와 장갑차 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북한의 62포병여단은 우리 수도권을 겨냥한 170mm자주포와 240mm 방사포로 무장한 부대다. 특히 사거리 54~65km의 이들 장사정포는 우리 수도권에 매우 위협적인 무기였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해 앞으로 생길 여러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보이지만 가장 큰 것은 우리 기업의 피해다. 개성공단에는 124개 우리 측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정부와 민간을 합쳐 개성공단에 투입된 자산 규모는 1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입주 기업들이 떠안아야 할 거래선 단절 등 2차 피해까지 고려하면 피해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가동이 약 160일간 중단됐던 2013년에 입주기업들이 통일부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현지투자액 5,437억원, 원청업체 납품채무 2,427억원, 재고자산 1,937억원 등 피해규모가 총 1조566억원에 달했다. 당시 통일부는 증빙자료를 받아 피해금액을 7,067억원으로 추산했다. 입주기업들은 그러나 납품계약 불이행에 따른 원청업체의 손해배상 청구, 거래처 상실, 회사 신뢰도 하락 등 무형의 손실까지 따지면 피해규모는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노동자 임금으로 들어오던 연간 1억 달러(한화 1,200억원)정도의 경화 수입을 날리게 됐다.

이 같은 유형의 피해보다 더 큰 문제는 남북관계가 사실상 1970년대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판문점 연락채널은 1971년 9월 20일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에서 양측이 의사소통로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채널을 통해 7·4남북공동성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의 소통로마저 막힌 셈이다. 3월 초에는 키리졸브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시작된다. 자칫 지난해 8월과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남북한은 그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까? 개성공단의 폐쇄로 남북관계가 제로인 상황이 됐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20만 북한 주민 생계수단 사라져 충격 클 것” / 관련기사1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 관련기사2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