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고향을 가다
명사의 고향을 가다 | 한국 CF계의 거장 케이블TV 시대 포문 열다 2017년 1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배승남 용산케이블TV 창업주 한국 CF계의 거장 케이블TV 시대 포문 열다 배승남 회장은 한국 CF계의 전설에 속하는 감독이다. 그는 평양 사나이다. 그의 출생지는 평양시 서구 기림리 135번지이다. 평양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 평양 시내에 들어가려면 배 부자네 집 드넓은 땅을 가로질러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림리 일대를 아예 배 부자네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국가의 부름 받고 나선 덕장(德將), 애국의 제2막 열다 2016년 12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김영철 이북5도위원장(평안북도지사) 국가의 부름 받고 나선 덕장(德將), 애국의 제2막 열다 서울 종로구 비봉길에 위치한 이북5도청은 활기에 차있다. 지난 9월부로 함경북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3개 도의 도지사가 새로 바뀌었고 새로 부임한 신임 지사들이 의욕적이며 활기에 차있기 때문이다. 2016년 올해의 마지막 호에서는 신임 평안북도 김영철 지사를 만나보도록 하자.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대한민국 슈바이처가 시원하게 뚫어드립니다! 2016년 1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권성원 강남차병원 석좌교수 대한민국 슈바이처가 시원하게 뚫어드립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종로에서 동대문 그러니까 흥인지문을 바라보고 가다 보면 왼쪽 언덕바지에 큰 병원이 있었다. 19세기 말, 정확히는 1887년 11월에 이화학당을 세운 선교사 스크랜튼이 세웠던 병원이다. 구한말까지 우리나라에는 내외법이 있었고 여성은 남성에게 어떤 경우에도 몸을 보여줄 수 없는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나는 참 행운아다. 살아생전 너희를 만났으니” 2015년 12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이충희 인하대 명예교수 “나는 참 행운아다. 살아생전 너희를 만났으니” 인하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인 이충희(李忠熹) 박사는 스스로 행운의 사나이라고 자처한다. 북한에서 1·4후퇴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월남하여 풍찬노숙하였지만 지금은 부인과 아들, 딸이 모두 건강하고 손자손녀들이 우글우글하기 때문에 천주님께 늘 감사하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얼마 전 뜬금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무반의 명문가,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진 비밀? 2015년 7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박용옥 前 국방부 차관 무반의 명문가,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진 비밀? 서울에서도 ‘봉피양냉면’을 파는 곳이 있다. 봉피양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여름철이면 봉피양냉면을 파는 가게에는 앉을 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봉피양은 ‘본평양’이라는 말이다. 평양 중에서도 중심지를 가리키는 말이 본평양이다. 일제강점기 때 평양 사람들은 서울에 지지
명사의 고향을 가다 | 질곡의 대한민국 현대사 속 살아있는 호국의 인물 2015년 6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이대용 前 주월 한국대사관 공사 질곡의 대한민국 현대사 속 살아있는 호국의 인물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인 남침을 했던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6월 28일 새벽 서울 중앙청 앞에 그들이 몰고 온 소련제 탱크 T-34를 위세당당하게 세워두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점령당하고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북한문제는 프로가 다뤄야합니다” 2015년 5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북한문제는 프로가 다뤄야합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 강인덕 소년은 평양제일고교에 다니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서울 이북의 최고 명문 평양고보로 불렸던 그 학교의 졸업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막상 전쟁이 터지고 전시체제가 되자 성급한 동급생들은 손을 들고 자원해서 인민군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방학이 시작되던 8월이
명사의 고향을 가다 | “북한보다 더한 땅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2015년 4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김성이 前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북한보다 더한 땅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조선왕조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서북지역의 최북단은 평안북도 의주였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백성들을 버리고 황황히 그 의주 땅까지 몽진했다. 국경무역을 전담하고 있던 압록강변의 의주읍은 선조임금이 다녀갔다고 해서 부(府)로 승격됐고, 의주는 부사가 다스리는 대처가 되었다. 의주를 넘어 만주사람들이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고향 선천 땅에 가면 그곳에 다시 교회를 세우거라” 2015년 2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차피득 바른마음갖기회 회장(한국필름 명예회장) “고향 선천 땅에 가면 그곳에 다시 교회를 세우거라” 이 이야기는 1947년 초여름, 평안북도 선천군 수청면 가물남이라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시작된다. “피득아, 지금부터 이 아버지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아버지 차희선 장로가 엄숙하게 운을 떼었다. 피득 소년은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명사의 고향을 가다 | “고향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을 때 가지요” 2015년 1월호
명사의 고향을 가다 | 신영균 한국영화인총연합회 명예회장 “고향을 자유롭게 찾을 수 있을 때 가지요” 2015년 새해를 맞아 월간 <통일한국>에서는 북한에서 내려온 저명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휴전선 너머에 남기고 온 산하에 대해 추억하고, 아름다웠던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어 그 글을 남김으로써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취재를 담당한 김광휘 작가는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