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9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북한 드라마? 재미가 있어야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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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북한 드라마? 재미가 있어야 보죠

북한 가 지난 2014년 10월 13일부터 재방영한 5부작 연속극 '우리 여자축구팀'의 한 장면 . 이 연속극은 2006년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이 러시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201년 6월 처음 방영됐다. ⓒ연합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014년 10월 13일부터 재방영한 5부작 연속극 ‘우리 여자축구팀’의 한 장면 .
이 연속극은 2006년 북한 여자축구 대표팀이 러시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2011년 6월 처음 방영됐다. ⓒ연합

전 세계에 무섭게 몰아치는 한류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한류의 시공간적 영역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류열풍’이란 말을 처음 듣고 무슨 말인지 몰라 하던 때가 떠오른다. 용어는 몰랐지만 나의 탈북도 한류열풍의 영향을 받았다. 어쩌다 재밌는 한국 드라마 DVD를 빌려오면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밤새 기다리던 일, 전기가 들어오면 역적모의를 하듯 문을 잠그고 불도 끈 채 새벽까지 몰래 보던 일,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부러워 상상의 나래를 펴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영화·드라마 있지만 골라 보는 재미는 없어

이쯤에서 북한 드라마를 소개할까 한다. 독재사회에도 드라마나 영화 등 예술작품은 있다. 독재를 미화하거나 허구를 넘어 사실을 왜곡 및 날조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영화의 장르는 굳이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단조롭다. 전쟁 영화가 대부분이고 역사, 액션영화, 코미디 영화가 몇 편 있는 정도다. 나머지는 대부분 당 정책을 정당화하고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내용이다. ‘텔레비죤소설’, ‘텔레비죤극’이라 일컫는 드라마는 대부분 20부 안팎이고 역시 한정된 장르만 만들어진다.

북한 학생들도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긴 한다. 그러나 ‘골라 보는 재미’는 없다. 1년에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가 고작 몇 편에 불과하고 내용도 천편일률적이어서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나마 재미있다고 소문난 영화의 경우 표를 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그 열기도 상영 며칠만 지나면 가라앉는다. 농촌 지역 주민들이나 아이들은 새로 나온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다는 건 꿈도 못 꾸고 몇 달 뒤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야 볼 수 있다.

북한에서 히트 친 영화는 신상옥, 최은희 선생이 만든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일본과 유럽의 거리와 물질적 풍요로움 등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세상 밖을 볼 수 없는 북한 주민들이 열광한 이유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채널이 하나뿐이어서 새 드라마가 나오면 그것만 볼 수밖에 없다. 혁명성, 계급성에 익숙해져서 우상화, 신격화, 인권침해 등의 내용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학생들은 남한 학생들보다 영화나 드라마에 흥미가 없다. 학생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도 아닌 데다, 그마저도 드라마 방영 시간에 전기가 들어와야만 볼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코미디 장르 같은 재밌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보는 편이어서 아침에 등교하면 아이들끼리 모여 드라마에서 본 내용을 흉내 내기도 한다.

학교에서 외화에 대해 사상교육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김일성이 항일시기에 창작한 작품들을 김정일이 영화, 연극으로 옮겼다는 것에 대해서만 국어 과목에서 요란하게 가르친다. 이런 내용은 기말고사, 졸업시험, 대학입시에까지 나올 정도로 중요하다.

국경 지역에선 많은 주민이 중국 텔레비전으로 남한 드라마나 영화, 중국 드라마를 몰래 즐겨본다. 북한 당국이 남한 드라마를 단속하는 데 촉각을 세우고 ‘자본주의 날라리풍, 비사회주의적 현상, 적들의 사상 문화적 침투’ 등으로 엄포를 놓아도 단속하기는 어렵다.

북한 초등학생 가방 속에 숨겨진 한국 드라마?

한국 드라마 단속이 강화되자 어른들이 초등학생들의 가방에 CD를 숨겨서 돌려보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학생들은 단속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검열대가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한 여성을 단속했는데, 조사해도 한국 드라마 CD가 나오지 않았다. 당황한 검열대가 그 여성의 아들인 초등학생의 책가방을 뒤졌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 한국 드라마 CD가 수두룩해 온 시내를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다. 이 교묘한 수법에 북한 교육 당국은 경악했다.

그 후부터 청년동맹에서 학교들에 지시를 내려 아침 등교 시간이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책가방을 무조건 뒤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따금 청년동맹에서 불시에 학교로 와서 수업 도중에 학생들의 책가방을 수색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럴수록 한류열풍의 전파 방법은 더욱 진화해간다. 미디어조차 개인의 취향대로 즐기기 어렵고 접할 기회도 적은 나라. 이것이 북한 사람들이 외부 세계의 미디어에 열광하는 이유인 것 같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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