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내친구

북에서 온 내친구 | “선생님, 저 재활물리치료사 됐어요!” 2017년 3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25 “선생님, 저 재활물리치료사 됐어요!” 꽤 오랫동안 탈북학교에 나가며 어려운 일도 있지만 가슴 뭉클한 순간이 더 많았다. 이제는 탈북학교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슴으로 품어 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박봉이라는 여건과는 관계없이 사람을 키우는 일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분홍 진달래가 한창 피어나던 봄날이었다. 학교가 성남으로 이전 중이라

북에서 온 내친구 | 졸업, 다시 출발선에 선 제자들에게 2017년 2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졸업, 다시 출발선에 선 제자들에게   하늘꿈학교 졸업식이 곧 있을 예정이다. 한 해 동안 함께한 학생들의 졸업식이라 느낌이 남다르다. ‘이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 잘 적응할까?’, ‘선택한 전공에는 만족할까?’, ‘남한 친구들과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을까?’ 딸 시집보내는 어미처럼 걱정이 많다. 물론 나의 걱정이 기우이길 빌면서 말이다. 꽤

북에서 온 내친구 | “가족이 아직 북한에 있어서요…” 2017년 1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23  “가족이 아직 북한에 있어서요…”   ‘책으로 만나는 인문학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 이름이 아름답거나 멋졌다. 유지니, 이빛나, 오아름, 김영웅…. 탈북 학생들이니만큼 ‘철혁’이라든가 ‘명희’ 등 약간 시골스런 이름일 것이라는 편견이 출석을 부를 때마다 여지없이 깨졌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깊이 물을 수는 없었다. 왠지 상처를 줄까 두려웠다. 얼마

북에서 온 내친구 | “가스가 끊겨 샤워를 못해요!” 2016년 12월호

클릭! 통일교육 북에서 온 내친구 22 “가스가 끊겨 샤워를 못해요!” 탈북 청소년을 만나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쩌다 한 번 보는 것이 아니라 매주 눈을 마주치며 수업을 하다 보니, 이제 그들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읽을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 탈북 아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참 가슴이 아프고 힘들어서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었다.

북에서 온 내친구 | “우리는 다문화가족인가요?” 2016년 11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21 “우리는 다문화가족인가요?”   나는 ‘책읽기’를 ‘맛’에 비유할 때가 많다. 여러 가지 맛이 존재하기에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는 사람의 지적 밸런스를 맞춰준다. “책읽기를 밥 먹는 것처럼!”을 모토로 탈북 청소년들에게도 ‘책읽기’를 우선으로 수업하고 있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 것처럼 책을 읽어야 기초가 쌓이고

현장속으로! | “수학시간? 통일교육 가능해요!” 2016년 10월호

현장속으로! 57 연천고 “수학시간? 통일교육 가능해요!” 한국 사회의 기성세대는 본인들의 부모가 직접 분단을 겪었기 때문에 통일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청소년들에게 통일은 그야말로 ‘먼 이야기’다. 분단을 몸소 체험한 기성세대와 경험이 전혀 없는 세대 간의 차이는 단지 연령대뿐만 아니라 경험과 가치관의 차이를 낳는다. 이런 청소년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수요자에

북에서 온 내친구 | 또 다른 나의 이름, 통일 강사! 2016년 9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또 다른 나의 이름, 통일 강사! 얼마 전에 연일 계속되는 폭염을 뚫고 연천의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 다녀왔다. ‘통일캠프’에 온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깊은 산속의 8만 평이나 되는 웅장한 건물 속에서 만난 학생들은 남달랐다. 일반 학교에서 만날 때와는 달리 눈빛이 형형했다. ‘통일’이라는 언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남북한

북에서 온 내친구 |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렴 2016년 8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8  우직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렴 요즘 탈북 학생들은 대학 수시입학 원서를 쓰느라 바쁘다. 특례 입학으로 대학을 가지만 자기소개서나 면접 준비는 남한 학생들과 다름없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자기소개서라는 짧은 글 속에 자신의 전 인생을 담아내기란 쉽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성장과정 속에서 터득한 자기 이야기를 쓰는 코너가 있는데,

북에서 온 내친구 | 스스로 설 수 있게 도와주세요 2016년 7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7 스스로 설 수 있게 도와주세요 고백컨대, 나는 탈북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무조건 동정했다. 불쌍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연을 들어보면 아프지 않은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고향에 병든 부모님을 두고 떠나온 아이, 소를 잡았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총살을 당한 아이, 국경선을 넘다가 동생을 잃은 아이, 꽃제비로

북에서 온 내친구 | 낮에는 선생님, 밤에는 부모님 2016년 6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6 낮에는 선생님, 밤에는 부모님   흔히 현대를 ‘스승이 없는 시대’라는 말을 한다. 나도 ‘스승’이라는 말보다는 ‘직장인’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의식을 바꿔 준 선생님들을 소개하고 싶다. 북에서 온 아이들에게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거처할 숙소가 우선이다. 내가 나가는 학교에서는 기숙사를 운영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가족을

북에서 온 내친구 | “나를 소중히 여기기, 실패해도 도전하기” 2016년 5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5  “나를 소중히 여기기, 실패해도 도전하기” 내가 나가는 탈북학교 졸업생 중에 반드시 만나고 싶은 학생이 있었다. ‘이은수! 전국 대입 검정고시 전교 수석에 이어 명문 대학 입학’ 10여 년 전, 탈북 학생으로는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은수가 잠수를 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여러 루트를 통해서야 비로소 은수를

북에서 온 내친구 | 꽃제비 민수의 청첩장 2016년 4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4 꽃제비 민수의 청첩장   탈북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만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나 왔다. 주로 대입반을 맡아 글쓰기 지도를 하다 보니 학생들의 사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사연이 없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힘든

북에서 온 내친구 | 철이의 우정 2016년 3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3 철이의 우정 철이는 스물여덟 살 적지 않은 나이에 공부가 하고 싶어 탈북 학교에 온 학생이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훤칠한 키에 모델처럼 멋진 청년이라 처음부터 관심이 갔다. 그런데 철이는 소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걸 힘들어 했다. 늘 생각에 빠져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몹시 슬퍼보였다. 알고 보니 철이

북에서 온 내친구 | “지금은 사랑보다 공부가 우선이에요” 2016년 2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2 “지금은 사랑보다 공부가 우선이에요” 최근 전국이 ‘응답하라 1988’ 열풍으로 들썩였다. 드라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응팔’을 이야기하며 개개인의 향수를 털어놓느라 바빴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현실이 각박하다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 가장 큰 문제점은 청년 실업과 취업난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에서 온 내친구 | “책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슴다!” 2016년 1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1 “책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슴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들어가지 않은 소설이나 동화를 읽어 본 적이 없슴다. 러시아 소설을 읽어보긴 했는데 대부분 주체사상이 들어가게끔 각색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북에서 온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북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온 아이들도 세계 명작을 듣도 보도 못했다고 한다. 하물며 우리나라

북에서 온 내친구 | ‘엄마표 밥상’ 최고예요! 2015년 12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0 ‘엄마표 밥상’ 최고예요!   돼지 불고기, 계란말이, 아욱 된장 국, 싱싱한 겉절이 김치, 소시지 볶음…. 그리고 사과 한 개. 내가 나가고 있는 탈북 학교의 점심 메뉴를 살짝 공개한다. 매일 새로운 반찬과 찰밥, 오곡밥, 현미밥 등 다양한 밥이 나온다. 그렇게 뷔페식으로 차려놓은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식판에

북에서 온 내친구 | “나는 북한 말 절대 안 써요!” 2015년 11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9 “나는 북한 말 절대 안 써요!” 요즘 학교 분위기가 조금 산만한 편이다. 대부분 수시로 대학에 합격을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약간 들 뜬 분위기랄까. 가을 하늘도 높고, 아이들 가슴에 산들 바람도 부는 것 같아, 교실을 벗어나 수업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별 생각없이 학교

북에서 온 내친구 | “명절이 싫어요!” 2015년 10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8 “명절이 싫어요!” 북에서 온 친구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거주 문제이다. 탈북자 중 성인은 임대 아파트가 주어지지만 스무살 이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친척이나 지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북에서 온 내친구 |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2015년 9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7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탈북 친구들을 만나다보면, 변화가 심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다른 체제에서 살다 남한에 와서 적응하느라 혼란을 겪는 건 당연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싶을 때가 있다. 미희가 그렇다. 처음 미희를 보았을 때는 얼굴도 예쁜 데다가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열심히 써서 그 아이의

북에서 온 내친구 | “돌 위에 핀 꽃이 되렴” 2015년 8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6 “돌 위에 핀 꽃이 되렴” 해마다 이맘때면 대입 반 학생들의 얼굴이 편치 않다. 대학 입시원서를 접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탈북 친구들은 ‘특례 입학제도’로 대학에 들어간다. 북에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고 온 아이들이 남한의 교과 과정을 따라간다는 것은 높은 벽일 수밖에 없다. 유치원 때부터 입시 준비를 해 온 남한

북에서 온 내친구 | 가슴으로 시를 쓰는 아이들 2015년 7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5 가슴으로 시를 쓰는 아이들   일주일에 한 번씩 탈북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글쓰기에 대한 기본을 가르치기도 하고, 세계 명작 소개와 함께 인문학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시 한 편을 읽어 준 뒤, 학생들에게 받아 적기를 시킨다. 간단히 복사해서 주면 그만이지만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다.

북에서 온 내친구 | “사람들 눈이 무서워요” 2015년 6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4 “사람들 눈이 무서워요”   탈북자 중에는 여성이 훨씬 많다. 그것은 북한의 여성들이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중국 장마당을 오가며 경제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국경선을 넘은 북한의 여성들이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조선족과 억지 결혼을 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 속에서 겪는 인권 침해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북에서 온 내친구 | “삶의 목표가 생겼어요. 엄마를 모셔 오는 거예요” 2015년 5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3 “삶의 목표가 생겼어요. 엄마를 모셔 오는 거예요” 탈북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궁금한 게 있으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너는 혼자 왔니? 가족과 같이 남한에 왔니?” 등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말하기를 꺼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왜 아이들이 가족에 대한 질문을 피하는지에 대해

북에서 온 내친구 | “남한으로 유학 온 셈이에요” 2015년 4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2 “남한으로 유학 온 셈이에요”  처음 탈북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정말 궁금한 게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별 생각 없이 묻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놓고 말하길 꺼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호기심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대하게 되었다. 유난히

북에서 온 내친구 | 고향을 묻지 마세요 2015년 3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1 고향을 묻지 마세요 나는 우연한 기회에 탈북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하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 나는 탈북자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탈북 아이들과 웃고 울며 4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을 것이다. 이 지면에 내가 보고 들은 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