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분쟁 25시 | 앙골라 내전 종식? 불씨는 여전해 2016년 10월호
세계분쟁 25시 30
앙골라 내전 종식? 불씨는 여전해
앙골라는 아프리카 남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은 콩고민주공화국, 동쪽은 잠비아, 남쪽은 나미비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은 약 124만7,000㎢로 한반도의 약 5.7배에 해당한다. 인구는 약 1억8,500만 명으로 총인구의 38%를 차지하는 오빔분두족이 앙골라의 최대 부족이며, 음분두족이 23%, 바콩고족이 13%, 혼혈인 메스티코가 2%, 기타 24% 등의 비율로 다양한 민족이 분포하고 있다. 앙골라는 아프리카 대륙 내 3위를 차지하는 원유 매장량과 세계 4위의 다이아몬드 생산량 등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나라다.
풍부한 지하자원 … 이해 뒤섞인 종족 간 유혈 분쟁
내전은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이후 구성 민족을 달리하는 대표적인 3개의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대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이들 단체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강대국과 인접 국가를 끌어들였다. 개입한 국가 역시 앙골라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경제적 가치를 고려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행동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당사자는 사활적 이해관계로 인해 멈출 수 없는 내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었다.
식민정책에 불만을 품은 일부 소장파 좌익 장교들이 1974년 4월 25일 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으로 인해 앙골라에 대한 식민통치도 종식되었고 마침내 1975년 앙골라는 독립을 하게 되었다. 1월 31일 과도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나, 독립운동 단체 간의 깊은 논의와 진정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출발하자마자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수도인 루안다를 장악하고 있던 MPLA(앙골라해방인민운동)는 1975년 11월 11일 정부를 수립하여 앙골라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였다. 같은 날 FNLA(앙골라민족해방전선)는 암브리스에서 앙골라민주인민공화국을, UNITA(앙골라완전독립민족동맹)는 우암부에서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혼란은 극에 달하였다.
특히 당시 소련의 지원을 받은 MPLA가 주도권을 장악하며 독립을 선포하고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하자 아프리카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우려하던 지역 패권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미국이 각기 FNLA와 UNITA를 지원하여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1975년 11월 남아공은 앙골라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모사메데스, 로비토, 벵겔라 등을 침공했고 이로 인해 쿠바군이 파병됐다. 1985년 말 UNITA와 MPLA 간의 교전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1988년 남아공이 UNITA 지원을 중단하고 이후 쿠바군이 철수를 약속함으로써 앙골라 내전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 보였다. 1990년 12월 MPLA는 공식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1991년 5월에 헌법 개정을 통해 다당제를 채택했다. 또한 반군과의 협상 끝에 1992년 9월 최초로 다당제에 의한 대통령 및 의원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산투스가 49%, 사빔비가 40%를 득표하여 30일 이내에 결선투표를 치르게 되었고, 의원 선거에서는 MPLA가 120석(54.7%), UNITA가 50석(34%)를 득표했다. 그러나 UNITA 측은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이들은 군사 통합에 반대하며 병력을 동원하여 동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군사 공세를 감행했고, 내전이 재발했다.
1994년 11월 15일 MPLA와 UNITA 양측은 UN의 중재 하에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정전협상에 걸림돌이 되었던 양측 군대의 통합이 1995년 7월에 단일군 체제로 가시화되었다. 이러한 군사적인 절차와 때에 맞추어 정치적인 협상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1997년 4월 산토스가 대통령직을, 사빔비는 대통령 특별정치고문직을 맡으며 국민통합화해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신변 위협을 염려한 UNITA 지도자 사빔비는 수도 루안다 지역으로의 이동을 거부하고 측근들과 함께 계속 동부 내륙에 머물렀다.
UNITA는 1998년 12월과 1999년 1월, 2회에 걸친 공격으로 UN의 전세기 2대를 격추시켰고, 1999년 1월 중순에는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던 말란즈, 우암부, 쿠이토 등 3개 도시를 포위했으며, 1월 26일에는 콩고 민주공화국 국경 부근에 있는 음반자 콩고를 장악하였다. 한편 UN 평화협상에 걸림돌이 되었던 UNITA 지도자 사빔비가 2002년 전사했고, 2002년 4월 앙골라 정부군과 UNITA 반군 간에 휴전협상이 체결되어 30여 년간 지속되던 내전이 종식되었다.
평화협상 걸림돌 사빔비 사망했지만 분쟁 불씨 남아
앙골라 내전은 약 50만 명의 사망자와 400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내는 피해를 가져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감내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2002년 공식적으로 내전이 종식되고 국가 재건을 위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앙골라는 원유, 다이아몬드 등 천연자원을 통한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다. 예전 아프리카 남부지역에서 누리던 지위를 다시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UNITA와 정부 간 국가 권력을 둘러싼 분쟁이 재발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2012년에는 폭력이 동반된 분쟁으로 격화되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4년에 분쟁은 비폭력으로 완화되었으나 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 시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지혜가 요구된다. 이해관계를 배제한 인접 국가,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들, 그리고 UN 등의 역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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