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5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노동자 화가 박문협…쇳물에 녹여낸 북한 리얼리즘 2012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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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노동자 화가 박문협…쇳물에 녹여낸 북한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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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협, <전후 40일 만에 첫쇠물을 뽑는 강철 전사들>, 1970년, 캔버스에 유화, 171×229cm

북한은 인민들이 당의 배려에 따라 풍부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북한의 노동자, 농민, 군인, 청년학생 등 대중은 자기의 취미와 능력에 따라 선택한 문예소조에 들어가서 문학예술 활동을 향유하도록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군중문화노선은 대중이 수동적으로 문화를 향수하는 활동에서 나아가 스스로 예술을 창조하게 한다는 정책지향성을 갖고 있다. 실질적으로 북한에서 주장하듯 인민 전체가 이러한 활동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많은 수가 이 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창작활동을 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주물공 박문협, 강선제강소 첫 쇳물 그려

이러한 대중문화 정책의 일환인 미술소조 활동에 참가하여 <전후 40일만에 첫 쇠물을 뽑은 강철 전사들>을 비롯한 일련의 대작들을 제작해 낸 노동자 작가가 박문협이다. 박문협은 1938년 평안북도 운전군 원서리에서 출생하여 중등교육을 마치고 1958년부터 강선제강소에서 주물공으로 일하면서 미술소조 활동을 통해 미술창작을 시작했다. 정규 미술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그가 미술소조 활동을 할 때, 현지 파견미술가로 와 있던 평양미술대학 출신의 화가이자 훗날 공훈예술가가 된 송찬형으로부터 미술을 배울 수 있었다.

박문협의 <전후 40일만에 첫 쇠물을 뽑아내는 강철 전사들>이 제11차 국가미술전람회장에 나타났을 때, 그의 작품을 감상한 많은 이들은 깊은 사색에 잠겨 지난 시기를 회고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했던 것은 작품을 얼핏보면 승리자들의 환희와 기쁨에 찬 그림 같으나 자세히 보면 어려웠던 시기를 회고하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은 화면 구도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의 형상을 통해 구축되고 있다. 수많은 군중이 첫 쇳물의 감격에 환호성을 올릴 때 주인공은 쇠장대를 움켜쥐고 앞가슴을 풀어헤친 채 긴장된 시선으로 쇳물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이 남들처럼 환희에 들떠있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림 속 주인공의 아버지도 오랫동안 이 곳에서 용해공으로 일하였던 노동자였다. 이 강선 땅에서 용해로와 함께 자라났으며, 전쟁시기에는 용해로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고 한다. 일제식민기 갖은 고역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용해로를 떠나지 않았던 아버지는 해방이 되자 아들도 자신의 대를 이어 용해공으로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전쟁터에 나갔다가 용해로로 돌아온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 용해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희생된 아버지의 시신이었다. 아들은 원한을 안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신도 이 강선의 용해공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던 1953년 8월 3일.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기도 전에, 김일성이 강선제강소를 찾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전후 북한은 중공업 중심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것을 결정하고, 그 일환으로 김일성이 강선제강소를 방문한 것이었다. 강철을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가열로를 하루바삐 세워야 했던 북한에서는 이 일을 계기로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군인, 학생들까지 망치와 벽돌을 들고, 음식을 싣고 이곳 강선마을로 모여들었다. 강선제강소 노동자들과 그들의 아내, 가족, 친척들 모두가 합심하여 40일 만에 첫 쇳물을 만들어낸 감격의 날을 그린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작가 박문협은 ‘40일 만에 첫 쇳물을 쏟아낸 감격적인 순간에 이 용해로를 지키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보안경을 끼고 서 있는 주인공의 뜨거운 심정을 어떻게 웃고 있는 얼굴표정으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 오른쪽 근경에 탑형구도로 설정된 인물군상들은 각 인물의 특징적인 성격을 잘 형상화하고 있어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감동의 깊이가 더 할 수 있다. 화면을 자세히 보면 군중 가운데 한 늙은 어머니가 둥근 밥그릇을 들고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이 할머니는 4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용해공들의 식사를 가져왔다고 한다.

할머니의 앞쪽에는 목수건으로 땀을 씻고 있는 젊은 처녀의 모습도 눈에 띈다. 이 처녀는 전쟁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 첫날부터 기중기 운전수로 일했다. 삽을 쥔 용해공의 맏아들이며 소년기동선전대원으로 활동했다는 붉은 넥타이를 휘날리는 소년단원의 모습들이 그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인물의 형상들이 조형적으로 힘 있게 강조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배경에 존재한다. 화면 왼쪽은 웅장한 강철 용해장과 날리는 불꽃의 생동감으로 치열한 전투장을 방불케하고 있다. 전투하듯 작업에 임한 노동자들을 형상화하기에 적합한 배경이다.

끊어지고 구멍이 숭숭한 철탑기둥, 무너지고 휘어진 육중한 천장 기중기탑, 하늘이 내다보이는 천장, 쌓이고 쌓인 파괴된 건물과 파철, 벽돌더미도 실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모습은 아니다. 이 현장의 회화적 형상성을 높이기 위하여 작가가 구성해낸 배경인 것이다.

체험 통한 예술적 형상화 … 인민을 감동시키다

이처럼 북한에서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사실주의 작품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체험을 통해 파악하고, 파악된 대상의 특징이 드러나기에 적합한 계기를 설정하여 예술적으로 조형화해내는 것을 말한다.

북한미술의 목적이 인민을 교양하기 위한 선전선동에 있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북한 인민들을 감동시켜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어떻게 해야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첫 대답이 이러한 제작과정이다. 또한 감상자들은 수동적인 감상에서 벗어나 이러한 제작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감동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민들이 각 문화소조에서 활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박문협은 이 작품을 통하여 화가로서 이름을 얻게 되자 전문창작기관에서 창작할 기회가 제공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노동자 미술가로서 일하며 창작하는 삶을 살았다. 북한 군중문화정책의 지향점을 대변하는 인물임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계리/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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