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김정일 방중, 양국 우호관계 재확인 … 기업 실상 체감 2011년 6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김정일 방중, 양국 우호관계 재확인…기업 실상 체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작년 8월에 이어 9개월만에 중국을 다시 찾았다. 김 위원장은 방중 첫날인 지난 5월 20일 투먼을 통해 입국한 후 무단장에서 잠시 멈췄다. 그는 무단장 베이산공원에 있는 항일연군기념탑을 참배하는 등 권력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행보를 보였다.
북·중, “6자회담 재개 장애요소 제거해야”
이어 하얼빈을 무정차 통과해 창춘에 도착한 일행은 중국 동북지역의 대표적 산업시설이자 북한과의 합작투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치자동차를 시찰한 뒤 장쑤성 양저우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남행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이치자동차, 제팡자동차, 양저우 산업과학센터, 대형 할인매장, 난징의 판다전자, 베이징 중관촌의 정보통신 서비스 업체인 선저우수마 등을 돌아봤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첨단업체, IT기업, 할인매장 등을 골고루 방문하면서 다양한 중국기업의 실상을 체험했다.
중국에서 김 위원장을 실은 특별열차가 달린 거리는 총 6천여 ㎞.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강행군을 벌인 셈이다.
이번 방중의 하이라이트는 5월 25일 김정일 위원장과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정상회담과 만찬이다.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6자회담의 재개 등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며 장애요소들을 제거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전반적 이익에 부합한다.”며 “이를 위해 의사소통과 조율을 잘해나가자.”고 밝혔다.
특히 6자회담의 조기재개를 강조하면서 경제건설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세 안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조선중앙통신>은 정상회담에서 “최고영도자들이 조·중친선협조관계를 대를 이어 계승하고 공고·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남이 대신할 수 없는 공동의 성스러운 책임과 확고부동한 입장이라는 데 대해 견해를 같이 했다.”고 밝혀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후 주석은 회담에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전통적인 중·조친선의 바통을 굳건히 이어가는 데서 역사적 책임을 다해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북·중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하고 기존의 우호관계를 재확인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을 통해 후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원 총리와도 회동했다. 아울러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제외한 시진핑 국가 부주석 등 나머지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8명을 모두 만났다.
이밖에 중국 측에서는 류치 베이징시 당서기, 궈보슝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링지화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왕후닝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다이빙궈 국무위원 등이 김 위원장의 일정과 행사를 수행하는 등 중국은 관례대로 김 위원장의 의전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김정일, “중국 개혁·개방정책 옳았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중국의 차기 총리로 확실시되는 리커창 부총리와 함께 중관촌을 방문함으로써 내년 10월 중국 지도부가 교체돼도 양국 수뇌부간 협력과 우호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특히 김 위원장과 원자바오 총리의 회담에서는 북·중간의 경제협력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남한의 5·24조치로 남북교역이 중단된 가운데 북한과 중국 간 교역액은 작년 34억달러(약 3조6천800억원)로 전년보다 34% 급증하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북한이 남한과 교역중단으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한 것이다.
북한은 또 부족한 달러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무연탄을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중국에 114만t가량의 석탄을 수출해 약 1억1천1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지난해 4월의 17만2천여t, 132만2천900만달러에 비해 물량은 6배, 금액은 8배 늘어난 것이다.
남북교역 중단으로 일자리를 잃은 봉제공들을 위해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방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기범 주 선양 북한 총영사는 지난 1월 헤이룽장성 무단장을 방문, 2천여 명의 북한 여성 노동자를 고용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은 황금평과 라선특구 등 변경지역에서 중국과 경제분야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들 경제특구의 건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규모 자본을 유치해 고사 직전의 북한경제에 활로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달 말 예정됐던 황금평과 라선특구 개발 착공식이 전격 취소됐지만 북·중 경제협력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한 측의 요청에 따라 미뤄지기는 했지만 취소라기보다는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에는 북한 측에서는 장성택 당 행정부장 등 실세들이 수행했지만 군(軍) 인사는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중국 방문에는 김기남·최태복 비서와 강석주 내각부총리, 장성택 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김영일·박도춘·태종수·문경덕 비서,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등 11명이 수행했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지난해 5월 방중에 처음으로 수행단에 포함된 후 그해 8월과 이번까지 세 차례의 방중을 모두 수행하며 실세의 위상을 과시한 장성택이다. 특히 장성택은 외자유치 창구인 북한 합영투자위원회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방중에서 양국 정상 간의 경제협력 방안 논의를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 등 동북아시아 정세와 관련해 강석주 내각부총리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중국에 따라간 것도 눈길을 끈다. 6자회담과 대미외교를 총괄하는 강 부총리는 지금까지 2000년 5월만 빼고 김 위원장의 여섯 차례 방중을 수행한 `단골멤버’이며,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은 중국을 따로 오가다 이번에 방중 수행단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정은, 국경에서 김정일 마중
김정은 후계체제가 등장하면서 주목받았던 인사들 가운데 박도춘·태종수·문경덕 비서와 주규창 당 기계공업부장이 김 위원장을 따라 중국에 간 것도 흥미롭다. 이번 방중에는 김 위원장의 4번째 부인 김옥으로 추정되는 여성도 동행했다.
이 여성은 김 위원장과 리무진에 나란히 앉아 있다 하차하는 모습이 중국 누리꾼의 동영상에 잡혔고 5월 26일 중국 <CCTV>가 내보낸 만찬 장면에서도 헤드테이블 끝부분에 앉아 있었다.
한편 이번 방문 초기에 단독 방중설을 낳았던 후계자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국경지역에서 귀환하는 김 위원장을 마중해 중국 방문에 동행하지 않고 이 기간 북한에 체류한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5월과 8월 김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는 김정은이 마중 나갔다는 북한매체의 보도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부장과 리명수 인민보안부장, 김원홍 군 총정치국 부국장, 현철해 국방위원회 국장 등이 함께 마중을 나갔다.
김 위원장이 작년 5월부터 1년 사이에 중국을 세 차례나 방문하면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정치외교적인 협력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남북 교역은 북·중교역으로 대체되고 있고 개성공단의 불빛은 희미해지지만 중국의 투자가 예상되는 라선시와 황금평의 불빛은 밝아져만 간다. 2∼3년 뒤 남북관계가 설 자리가 있을지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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