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취재수첩 | 남북, 비밀접촉 공방…북·중관계 밀착 양상 2011년 7월호
장용훈의 취재수첩
남북, 비밀접촉 공방…북·중관계 밀착 양상
남북 간의 비밀접촉과 관련한 공방이 뜨겁다. 포문은 북한이 먼저 열었다. 북한은 지난 6월 1일 정치적으로 예민한 남북 간 비밀접촉 내용을 전격 공개했다. 특히 북측은 남측이 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돈 봉투를 내놓고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사과와 관련해 애걸, 구걸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북한, 남북비밀접촉 내용 전격 공개
북측은 국방위원회 대변인 대답을 통해 5월 9일부터 남북비밀접촉을 가졌다며 남측 접촉 당사자인 통일부 김천식 통일정책실장, 국가정보원 홍창화 국장, 청와대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을 비롯해 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북측은 이 접촉에서 남측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고 하면서 우리(북) 측에서 제발 좀 양보하여 달라고 애걸했다.”고 주장했다.
또 “남측이 최소한 두 사건(천안함·연평도)에 대해 유감이라도 표시해 달라,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만나 이 문제를 결속하자. 그리고 정상회담 개최를 빨리 추진하자고 하면서 돈 봉투까지 거리낌 없이 내놓고 그 누구를 유혹하려고 꾀하다 망신을 당했다.”고 말했다.
북측은 남측이 제안한 5월 하순 정상회담을 위한 장관급회담, 6월 하순 1차 정상회담, 2달 뒤(8월) 2차 정상회담, 내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3차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했다면서 제발 딱한 사정을 들어달라고 구걸했다고 주장했다. 북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베를린 제안 후속조치로 장관급회담을 거쳐 내년 핵안보정상회의까지 3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남북 간의 비밀접촉 내용을 상세히 공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비밀접촉의 당사자로 지목된 김천식 실장은 지난 6월 19일 베이징 비밀접촉설이 불거지자 “최근 베이징에 간 적이 없다.”면서 접촉설을 전면 부인했었다.
비밀접촉 공개는 남북대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측 내부의 갈등 유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의도와는 별도로 돈 봉투설 및 남측의 대화 태도와 관련한 북측의 주장으로 인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천안함·연평도 사건과 비핵화 진정성을 사실상 남북 간 대화재개 조건으로 북측에 요구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북측의 주장대로 돈 봉투를 꺼냈다면 보수층의 반발은 물론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겉으로는 원칙을 강조하며 북한의 태도변화를 요구하면서 북측과 비밀접촉을 통해 애걸하는 듯한 모습을 만약 보였다면 국내 보수층으로부터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한 듯 북측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서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부, “일일이 대응할 필요 못 느껴”
통일부 당국자는 돈 봉투 주장에 대해 “황당한 얘기로 당연히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고 정상회담 제안 주장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정식으로 제안한 바는 없다.”고 일축했다. 또 국회 대정부 질의 등의 과정에서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니며 돈 봉투를 건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반박에 대해 조목조목 새로운 사실을 거론하면서 ‘녹음기록’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재차 위협하고 나섰다. 비밀접촉에 나섰던 김천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비밀접촉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준에 의해 마련됐다.”고 말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이를 통해 남측이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 먼저 접촉을 제안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북측이 먼저 접촉을 제안했다고 밝혔었다.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접촉이 아니라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기 위한 자리라고 해명했지만, 북측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사과와 시인을 요구했다고 한데 대해서도 남측이 절충안을 제시했다고 재차 언급했다. “북측에서 보면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보면 사과로 간주되는 절충안이라도 내놓자고 남측이 빌붙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정상회담과 관련한 구체적 일정을 제시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북측은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명백히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측이 대통령의 의견을 반영해 작성했다는 일정계획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비밀접촉을 한 번 더 갖고 장관급회담을 연후 6월 판문점, 8월 평양, 내년 3월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 기간에 정상회담을 하자는 시간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돈 통부에 대해서는 “김태효 비서관과 국가정보원 홍창화 국장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라면서 “김태효 비서관의 지시에 따라 홍창화 국장이 트렁크에서 돈 봉투를 꺼내 들자 김 비서관이 그것을 받아 우리 손에 쥐여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북측) 즉시 쳐 던지자 김 비서관의 얼굴이 벌개져 안절부절 못했으며, 홍 국장이 어색한 동작으로 트렁크에 황급히 돈 봉투를 걷어 넣었다.”고 언급했다.
북측은 1차 공개 때와 마찬가지로 남측이 “우는 소리를 했다”, “비굴하게 놀아댔다”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정부를 압박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북측이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밝힌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녹취록이 없다고 밝혔었다. 북측은 “끝끝내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하고 동족 기만과 모략 날조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불가피하게 접촉과정에 대한 녹음기록을 만천하에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의 추가 폭로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의 일방적 주장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남북 간에 있었던 비공개 접촉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서는 지난번 통일부 대변인 논평 이후 통일부 장관과 국무총리가 국회 답변 등을 통해 밝힌 바 있다.”면서 “북측의 주장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 “북한 내부 복잡한 것 아닌가”
그는 녹취록 존재 여부와 관련해 “통일부 장관이 지난 6월 2일 국회 답변과정에서 밝혔듯, 우리에게 녹취록은 없다.”면서 “다만 녹음 등 북측이 주장하는 대로 기록이 존재한다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모든 내용을 있는 그대로 밝히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돈 봉투’ 논란과 관련해서도 “장관이 이미 국회 답변과정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면서 “돈 봉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측의 폭로 의도에 대해 “비공개접촉을 공개한 사례는 남북 회담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정책결정이나 협의과정에서 북한 내부 사정이 복잡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일단 비밀접촉을 둘러싼 남북 간의 대결국면은 잠시 진정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북측의 폭로와 우리 정부의 대응으로 이명박 정부 기간 남북정상회담 개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가 정체되고 후퇴하는 동안 북·중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밀착하는 양상이다. 북한의 2인자라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중국의 천더밍 상무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황금평 및 나선특구 착공식이 열렸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북·중경협과 관련, “북·중 무역량이 많이 늘었지만 상당 부분 북한이 남북 간 교역에서 본 손실을 만회하려는 측면이 있다.”면서 “대부분 무연탄 등 광물자원을 수출하는 등 북한 스스로 필요한 자원을 출혈해서 수출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 간의 교역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에 매달리는 양상이고 7천조 규모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지하자원은 중국에 헐값에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비밀접촉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지와 상관없이 남북관계의 손상이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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