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8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장군님 선물에 대처하는 노하우? 2011년 8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장군님 선물에 대처하는 노하우?

북한에는 집단노동이 많다. 실례로 ‘속도전’ 청년돌격대를 들 수 있는데 큰 대상물 건설 때마다 군인초모 형식으로 광범위하게 조직한다. 조직과 작업은 군인식이다. 즉 명령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데 당국이 주입하는 기본 원동력은 바로 수령에 대한 충성심이다. 충성심 하나로 움직이는 조직체이기에 명령받은 돌격대원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군대와 똑 같이 7~8년의 돌격대 생활 후 제대할 때면 말썽 없이 일 잘한 사람에게만 TV선물이나 노동당에 입당하는 영예를 준다. 돌격대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올 때 TV를 들고 오지 못하면 “저놈 낙오분자네”, “8년 동안 뭐 했어”라는 비평을 들었다.

그러나 그건 돌격대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고 직접 겪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똑똑한 놈’이라고 칭찬한다. 왜 그럴까?

북부철길공사(자강도 만포~양강도 혜산) 때 일이다. 박달나무가 얼어 터진다는 추운 겨울, 돌덩이 같이 언 땅을 인력으로 파헤치고 노반에 깔 자갈을 나르던 돌격대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오후 6시 30분, 평양에서 돌격대원들에게 보내는 선물이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서 장군님께 드린 귤인데 그걸 글쎄 어버이 장군님께서 한 알도 드시지 않고 추운 북방에서 고생하는 돌격대원들을 먹이려고 전부 내려 보낸다는 것이었다.

장군님 사랑이어서 더 맛있네?

순간 일을 마치고 숙소로 갈 준비를 하던 전체 대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사실 열대과일인 귤을 북한에서 먹어보기란 참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이건 보통 귤이 아닌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었다. 120명 중대원 모두가 환성을 지르고 어떤 녀석은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고참 대원 한 사람이 갑자기 배를 끌어 쥐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 필자와는 인연이 좀 깊은 선배여서 제꺽 뛰어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몹시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좀 부축해 달라고 했다. 만세를 부르던 대원들이 시무룩해졌다.

하필 이 기쁜 순간에, 중대장도 안 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눈짓했다. 곧 그를 부축해 중대막사에 눕혔다. 밖에서는 벌써 도착했는지 헬기의 요란한 동음이 울렸다. 나는 신참 때를 벗지 못한 때여서 마음이 급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 고참이 나가려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자정 쯤 되는 시간에 들어오면 잊지 말고 식당에 들러 자기 저녁밥을 좀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자정? 그 시간에 들어오다니, 무슨 일이 있나?’ 고참의 말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나는 머리를 기웃하며 급히 헬기가 내려앉는 공지로 뛰어 갔다.

“귀띔이라도 좀 주지, 혼자만?”

가보니 벌써 난리가 났다. 겨울바람에 군용헬기의 바람까지 겹쳐 주변을 휩쓰는데 잔뜩 들뜬 대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그냥 만세를 부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그깟 귤 한 알 먹게 된 걸 뭘 그다지도 좋아 날쳤는지, 하지만 분위기가 그따위로 돼 먹으니 젊은 기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드디어 시간이 지나 매 대원들에게 귤이 차례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귤이 한사람 당 한 알도 아니고 분배하니까 네 사람당 세알이 돌아갔다. 그게 귤이니 망정이지 사과 같았다면 나누기가 참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튼 한참 실랑이 끝에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진 놈이 세 알에서 두 쪽씩 갈라낸 것을 받아먹었다. 맛은 별맛이었다. 먹으면서 어떤 놈은 “장군님 사랑이어서 더 맛있네.”, 했고 어떤 놈은 “너무 냠냠하다.”며 “좀 더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저녁 식사 후였다. 모두 지친 하루를 보낸 뒤여서 빨리 취침구령 내리기를 기다리는데 전 대원 모두 집합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모이니까 즉석에서 결의모임을 가진다. 장군님의 하늘같은 사랑을 그냥 보답 없이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틈에 준비했는지 보고에 이어 열띤 토론들이 전개되고 그다음은 ‘친위대, 결사대’ 구호를 부르더니 이내 밤 작업에 들어갔다.

대원들은 모두 입이 딱 벌어졌다. 한 알도 못 돌아온 귤 값치고는 너무 비싼 보답이었다. 멀쩡한 상태에서 일 못나가겠다는 말도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혹한 속에 나가 구슬땀을 흘리며 무려 네 시간동안 자갈 나르기를 하고서야 모두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그 시간이 바로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오는 길에 식당에 들려 ‘환자’밥을 갖고 숙소에 가는데 그 고참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들어서니 고참이 아픈 기색 하나 없이 히쭉 웃으며 반겨준다. “벌써 나았어요?” 내가 묻자 “응.” 한다. 무척 배고팠던지 정신없이 밥을 먹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어떻게 알았죠?” “뭘?” “밤 작업이 있다는 것을요?” “야, 그 귤이 보통 귤이야?”

그러며 눈을 찡긋하고 씩 웃는다. 나는 머리를 끄떡였다. 귤을 먹으면 곧 그 보답으로 밤 작업을 나가게 되고 언제 끝난다는 것까지 환히 꿰뚫고 있던 고참. ‘장군님 선물 수여’를 앞두고 꾀병을 부린다고 누가 감히 의심할까? 그것도 고참 대원이 말이다. 그런 게 아마 오랜 돌격대 생활이 스스로 알려 준 노하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표현해야 하지만 따져보면 너무 힘든 돌격대 생활이다. 하라는 대로 다 따라 한다면 아무리 젊은 육체라 해도 8년 후면 폐인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잔뜩 뒤틀린 소리로 “귀띔이라도 좀 주지, 혼자만?” 하고 볼이 부어 툴툴댔더니 그가 한 대답이 참 의미심장했다. “그거 아무나 하나, 다년간의 돌격대 생활을 해본 놈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야”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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