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 해방 후 어떻게 38도선으로 분단되었나? 2011년 8월호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해방 후 어떻게 38도선으로 분단되었나?
지난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였다. 소련은 8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소련의 참전은 1945년 2월 미국과 소련, 영국의 얄타회담에서 합의한 것이다. 소련은 이 회담에서 독일 항복 90일 후에 대일 참전을 약속하였고, 얄타회의 직후 소련군 참모본부는 대일 작전 전략 계획 작성에 착수하였다.
일본 패망 직전 대일전쟁에 참가한 소련
애초 계획상에 소련의 대 일본 공격개시는 8월 20일부터 25일까지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원폭투하로 일본의 패전 분위기가 확산되자 소련은 자신들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면 향후 동아시아에서의 세력재편에 있어 불리하다고 판단, 즉각적인 참전을 결정하였다.
소련군은 8월 8일 나진을 공략한 데 이어 9일에는 한반도의 최동북 지역에 위치한 웅기(현재 나선)를 폭격하고, 그날 바로 경흥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일본은 10일 중립국을 통해 연합군에 항복의사를 표명하였다.
미국은 진주만 사건 이후부터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개입 또는 지배를 태평양 지역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한반도 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충분한 준비는 소련의 참전으로 이어졌으며, 미국은 소련을 한반도 문제에 끌어들여 한반도를 공동으로 관리함으로써 한반도가 어느 한 강대국에 의해 독점적으로 지배될 때 발생할 수 있는 국제분쟁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참전 이후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만주지역의 일본 관동군이 소련군에 의해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소련군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군사적 점령이 예상되자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미국은 1945년 8월 10일과 11일 워싱턴에서 국무성, 전쟁성, 해군성의 요원들이 참석하는 3성 조정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소련의 참전과 일본의 항복, 그리고 향후 전쟁 수행 방향,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 회의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을 분할하는 군사경계선을 설정하는 안을 마련하여 전쟁성에 보고하였다. 이 분할안은 육군성 맥클로이(John J. Mcloy)의 지시에 따라 딘 러스크(Dean Rusk) 대령과 찰스 본스틸(Charles H. Bonesteel) 대령이 마련한 것이다.
러스크 대령은 미국 의회증언에서 이 안에 대해 “우리는 38도선을 권고했다. 비록 그것도 소련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군이 현실적으로 진주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북쪽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미군의 책임지역 안에 한국의 수도를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38도선은 육군이 국무성에 제안한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그것은 결국 국제적으로 동의되었다. 나는 당시 소련이 38도선을 수락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이 한반도에서 우리의 군사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더욱 남쪽으로 내려온 선을 주장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소련 남하 저지 위해 38도선 제안
소련군이 이미 한반도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미군은 600마일 떨어진 오키나와와 1,500~2,000마일 떨어진 필리핀에 있었다. 3성 조정위원회에서 육군은 가능한 한반도 북쪽에서 항복받기를 원하는 미국의 정치적 욕구와 미군이 도달하기에는 시간적 한계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38도선 안을 제시한 것이다.
3성 조정위원회에서 결정된 안은 8월 11일 스팀슨(Henry S. Stimson) 전쟁장관에게 보고되었으며, 그는 ‘일반 명령 제1호’ 초안을 작성하였다. 이 명령서는 태평양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일본군에게 항복지역을 배당하는 문서였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에 있는 일본군은 소련군사령관에게, 38도선 이남에 있는 일본군은 미군 사령관에게 항복하라는 지시가 포함되어 있다.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이 초안을 승인하고 8월 13일 분할안을 영국과 소련, 중국에 전달하였다.
어느 나라도 이 분할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마닐라에 있는 태평양지역 연합군 최고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에게 명령서를 하달하였다.
38선 분할은 미국과 소련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 분할통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소련의 남하정책을 저지하여 태평양 상에서 미국의 방위선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소련의 입장은 한반도를 태평양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목표뿐만 아니라 전후 동아시아 세력 재편과정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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