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8월 1일

시사초점 | 미국, 외교라인 교체…대북정책 대화·협상으로? 2011년 8월호

시사초점

미국, 외교라인 교체…대북정책 대화·협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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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된 웬디 셔먼 전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이 지난해 5월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한반도 비전포럼’에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웬디 셔먼은 1999년 당시 윌리엄 페리(전 미국 국방장관)가 맡고 있던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 자리를 이어받아 빌 클린턴 행정부가 끝날 때까지 일하면서 대북 유화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반도 냉전해체를 목표로 했던 ‘페리 프로세스’의 실무 과정을 책임진 인물로 김대중 전 대통령 ‘햇볕정책’의 강력한 지지자로도 알려져 있다.

‘햇볕정책’ 지지자, 웬디 셔먼의 귀환

그런 셔먼이 다시 컴백했다. 미 백악관은 7월 1일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이 국무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됐다고 밝혔다. 마침 지난 3년 간 북한이 바뀔 때까지 대화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쏟아지고 있었고, 이른바 ‘전략적 인내’ 또는 ‘전략적 무대응’을 이끌던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도 퇴장했다.

이 상황에서 미 국무부의 서열 3위이자 아시아 지역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는 정무차관 자리에 셔먼이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과거 그가 걸어온 길을 잘 아는 외교가는 자연스럽게 ‘전략적 인내’가 아닌 ‘협상’ 또는 ‘대화’가 대북 정책의 코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쪽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의 최측근이다. 게다가 셔먼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 인수위에서 국무부 담당 인수위원을 맡았던 토머스 도닐런이 지난해 10월부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고 있다. ‘셔먼-도닐런 라인’은 어쩌면 출범 초기 북한과의 과감한 협상을 주창했던 오바마의 정신을 구현하는 새로운 시도인지도 모른다.

또한 부시 정부 후기 활발하게 진행됐던 6자회담에서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와 함께 일했던 성 김 특사가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성 김은 잘 알려진대로 2007년 9월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핵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단의 단장으로, 11월에는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했으며, 2008년 5월에는 북한이 제공한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서를 들고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넘어온 상징성 있는 인물이다.

스타인버그 부장관과 함께 그동안 동아시아 정책을 주도해온 커트 캠벨 차관보는 자리를 지켰지만 향후 그의 역할이 과거보다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최소한 셔먼 차관과의 역할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성 김 특사의 후임으로 임명된 클리퍼드 하트의 경우 실무 외교관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 내부 역학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그들의 후원자의 위상에 따라 조정되겠지만 셔먼 이후 외교라인은 과거와 다른 행보를 보일 것이라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오바마 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키지는 못해도 ‘원만하게’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남북 무력충돌로 한반도 위기지수가 올라가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이는 다른 외교전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닐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아프간 철군 등 중동 분쟁에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 가시적 성과를 내년 대선 전에 미국 대중들에게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시아를 책임질 셔먼도 미국 내 정치 일정을 감안할 때 조만간 새로운 대북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남북대화 → 북·미대화 →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3단계 방안에서 첫 단계인 남북대화의 의미가 대폭 축소되거나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한 뒤 북·미대화, 그리고 6자회담 재개가 실현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화의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시기로는 여름 휴가철이 끝나는 9월 초 이후로 점쳐진다. 또 대화 국면에서 부상하는 인물인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미국 방문 등이 그 즈음 실현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 “남북관계 진전에 적극 나서달라”

미국에게 남북한은 동시에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추진할 경우에도 동맹국 한국의 반응이나 북한의 대응에 따라 그 속도와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는 한국 정부를 향해 최근 미국은 지속적으로 탄력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6월 23일 미국을 방문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미국은 “남북관계 진전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1일 “천안함·연평도로 불안한 정세가 조성됐지만 우리는 거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정책선회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 세력의 지지를 외면할 수 없는 이명박 정부가 ‘진정성 있는’ 정책의 전환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북한은 남측과 정상회담을 놓고 비밀스럽게 접촉해 온 과정을 일방적으로 ‘폭로’하는 등 이명박 정부와의 단절도 불사할 각오를 과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역시 북한이다. 대화를 택할 것이냐, 새로운 도발의 길로 갈 것이냐가 핵심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가시적인 사과’를 명백히 거부하고 있는 북한이다. 또 남측이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주체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과시하는 것을 보면 추가적인 ‘위협’을 위한 명분 쌓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추가위협 행위를 단행한다면 이는 과거의 예에서 보듯 미사일이나 핵실험 분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이 2012년 완전한 핵보유국이 되겠다고 천명한 것을 감안하면 핵무기의 소형화와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실험의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북한은 지난해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첨단’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바 있다. 따라서 핵실험의 경우 과거 두 차례 플루토늄 방식의 핵실험과 달리 우라늄 방식의 핵실험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북한이 새로운 도발 선택한다면?

일부에서는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과 후원국 중국의 영향력 등을 감안해 북한이 도발 대신 유화책을 구사할 개연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무시’하고 도발에 나설 경우 고립만 심화될 것이며, 이를 김 위원장이 모를리 없다는 게 근거다. 게다가 미국이 다시 등장한 대화파 셔먼 차관을 중심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도할 경우 북한도 일정정도 호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국면을 종합해보면 북한은 일단 공언해 온 3차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등을 강행해 ‘몸값’을 올리는 도박을 감행할 것이라는 쪽이 더 현실적인 전망으로 보인다. 이 경우 미국의 대화파들이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막기 위한 과감한 선제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된다.

셔먼의 역할이 다시 주목되는 이유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압박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한국 정부가 어떤 변수가 될 것인지, 아울러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대북 영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얽히면서 한반도 정세를 조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우탁 / <연합뉴스>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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