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계스포츠 남북교류도 시작하자 2011년 8월호
특집 | 2018 평창! 새로운 평화의 지평 열자
동계스포츠 남북교류도 시작하자
우리는 세 번째 도전 끝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꿈을 실현시켰다. 경쟁상대인 ‘뮌헨’이나 ‘안시’에 비해 여러 가지로 불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2전3기의 기적을 일구어낸 것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누구에게나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은 있다.’라는 평범한 진리의 재확인이고 둘째, 65조원이라는 경제유발 효과와 함께 우리나라 동계스포츠 재도약의 기회이며 셋째, 스포츠교류를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조성의 가능성이 다시 열리게 되었다는 점 등이다.
우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 스포츠교류를 몇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우선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다. 만약 남북 분산개최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는 평화와 번영이라는 올림픽 이념을 가장 성과적으로 구현하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라고 하는 대회명칭과 분산개최 장소가 주경기장을 기준으로 2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조건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뿐만 아니라 분산 경기종목은 어떻게 나눌 것이며, 경기운영의 책임한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도 난제가 아닐 수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이미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남북 분산개최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대회명칭과 경기종목 분산기준 문제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평창 동계올림픽도 남북 분산개최는 현실적으로 복잡한 난제가 많다.
그러나 대승적 차원에서 남과 북이 서로 조금씩 양보한다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현재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철원을 동계올림픽 분산개최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철원은 905년에 궁예가 후삼국 통일의 꿈을 안고 태봉국 도성을 만들었던 곳이고 그 성터도 현재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바로 그 성터를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하고 그 근처에 동계올림픽 경기장의 일부를 건설한다면, 그야말로 올림픽 이념의 구현은 물론, 세계적 스포츠관광 명소로도 크게 가치가 있을 것이다.
두 차례 남북단일팀 쾌거 달성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북단일팀 구성·참가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남북 간의 정치상황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 우리는 1991년에 이미 남북 스포츠단일팀 구성·참가를 성사시킨 바 있다. 1990년 11월 29일부터 1991년 2월 12일 사이에 네 차례의 남북 체육회담 끝에 제41회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포르투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참가한 적이 있다.
김형진 북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김창제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을 총 감독으로 한 56명의 탁구단일팀 선수단은 남북한 겨레의 여망을 안고 선전 분투하여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여 중국과 스웨덴에 이어 종합 3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때 남북의 언론은 ‘냉전장벽에 탁구 구멍 뚫다.’라던가 ‘코리아팀이 새긴 역사’등의 표현을 써서 그 감격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한 1991년 6월 14일부터 2주일 동안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개최된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장충식 남북체육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단장으로 한 남북단일팀은 세계 최강팀으로 군림해 온 아일랜드 팀과 아르헨티나 팀을 연파하고 현지 전문가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오랜 분단의 장벽으로 경기 용어까지 다른 낯선 환경과 사고방식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선수들은 단일팀이 구성된 지 불과 1개월 여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선수단 내의 작은 통일을 이루어 냈다.
실제로 남북한 선수 18명을 포함한 62명의 선수단은 리스본 현지 합숙훈련 및 대회기간 동안 상호이해와 신뢰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을 통해 대화와 만남만이 불신과 오해를 해소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 선수 잠재능력 과소평가 말아야
이처럼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세계의 정상을 정복한 탁구 단일팀이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세계 8강 신화를 이루어낸 청소년 축구 단일팀의 쾌거는 남북이 하나가 될 때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게 했고, 체제와 이념의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던 민족적 잠재력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확신을 깨우쳤으며, 이런 남북화해의 계기를 통해 민족적 공동체 형성의 지름길을 개척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북단일팀 구성·참가는 올림픽을 통한 또 하나의 통일 민족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 남북 동계스포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스포츠 경기에 북한 팀이 참가한 것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게임 때가 처음이다.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는 새천년을 맞아 민족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기반 조성과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북한 참가를 적극 추진했다.
북한의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참가는 스포츠를 통한 한반도의 화합과 평화를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직위원회는 이처럼 평화적 통일기반 조성과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북한 참가를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추진했다. 첫째, 북한 선수단의 대회참가 둘째, 백두산 성화 채화 및 봉송 셋째, 북한 예술단의 개·폐회식 등 문화예술 행사 참가 등이었다.
그때 북한선수단의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참가는 반세기 동안 공고했던 이념의 장벽을 일거에 무너뜨린 사건이 되었다.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각각 채화된 성화가 임진각에서 하나로 합쳐진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는 한 민족이 한 순간이나마 작은 통일을 이룬 남북 스포츠교류사의 한 획을 그은 대회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남북 스포츠교류 사상 또 하나의 신기원을 이룬 성과는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동계스포츠 분야에서는 아직 한 번도 남북교류의 기회가 없었다. 북한의 동계스포츠는 1964년 제8회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여자스피드스케이팅 3,000m에서 한필화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물론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 쇼트트랙이 정식종목으로 확정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2010 캐나다 밴쿠버의 기적으로 남북한 동계스포츠의 경기력은 크게 차이가 났다. 그러나 동계스포츠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북한 선수들의 잠재능력은 결코 과소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동계스포츠교류가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한국 선수들이 누리고 있는 환경과 조건들이 제공된다면, 그동안 그들이 보여준 잠재력으로 보아 상당히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선수단 참가와 동반입장이 성사된다면 그동안 어느 스포츠교류에서도 볼 수 없었던 뜨거운 민족동질성의 열기가 연출될 것이다.
2018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강원도는 분단된 한반도 중에서도 유일한 분단지역이다. 그러므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함께 손을 잡고 참가한다는 것은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상징성이 더욱 높으며, 향후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지역 동계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학래 /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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