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스포츠교류, 상호인정과 호혜의 징검다리 2011년 8월호
특집 | 2018 평창! 새로운 평화의 지평 열자
스포츠교류, 상호인정과 호혜의 징검다리
오늘날 스포츠는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면서 국가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사회적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올림픽은 지구촌 스포츠 제전으로서, 자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대중들에게 극적인 호소력을 가지는 가장 규모가 큰 문화행사로서 월드컵 등과 함께 메가 이벤트(mega-event)로 불리어진다.
이러한 대회에서의 스포츠 경기 자체는 경쟁적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경쟁을 위한 만남의 무대에서 상호 간의 이해와 친선의 장이 펼쳐진다. 더불어 스포츠는 다른 국가와의 친선도모를 위한 좋은 수단으로 활용된다.
공식교류가 없는 국가 간에도 정치적 차원에서 자유롭지 못한 고위 정치(high politics)영역의 교류보다는 비교적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스포츠 교류를 시행할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대결보다는 협력, 갈등보다는 선린 관계의 지향성을 담아낼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 스포츠 교류가 갖는 의미를 몇 가지 되짚어 본다. 우선, 스포츠 교류는 강압이나 명령이 아닌 선의의 경쟁과 화합의 차원에서, 그 구체적 행위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서독, 불신 해소 … 협력기반 다져
스포츠 교류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편집성이나 이질적 가치체계를 뛰어넘어 국가 간 교류를 촉진시킬 수 있다. 그럼으로써 상호인식 부족이나 소통의 단절에 따른 적대감의 증폭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마찰 가능성을 축소하는 동시에 상호적 국가목표 추진을 위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예컨대, 통독 이전의 과거 동독과 서독 간의 통합과정에서 스포츠 교류는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물론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동서독 간의 스포츠 교류가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에 관해서는 비판적 평가가 상존하고 있다.
스포츠 교류가 동서독 간의 화해 촉진과 통합과정의 촉매적 기능을 했기 보다는 당시의 국내외의 정치상황에 규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계적인 역할에 머물렀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물론 ‘스포츠의 정치화’ 현상이 특정 시기에 부각되기도 하였다. 과거 동독이 국제적 승인 획득을 위한 방편으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거나, 미·소 간의 대립구도가 스포츠를 통해 극명하게 표출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나 1984년 LA 올림픽에 상호 참가를 거부하는 등의 예가 그것이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양독 간의 스포츠 교류가 동서독 국민들의 민족의식 고취, 동포애의 함양, 민족정체성에 대한 이해, 상호 동질감을 증진시키는 사회·문화적 기능을 수행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북관계 경색 스포츠 교류 가장 쉬워
한편 남북한 간의 경우는, 분단 이래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 속에서 반목과 불신을 키워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향후 남북통합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면 평화공존의 중간 과정 내지는 과도적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직접적인 정치적 의미 부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스포츠 교류는 통합에 따라 파생될 수 있는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단계적인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루어진 남북 스포츠교류는 정치적 환경의 틀에 좌우되었다. 정치적 갈등과 화해의 시계추의 진행 방향에 따라 스포츠 교류가 부침을 거듭하였다. 특히 최근의 북핵문제의 미해결, 북한의 대남 군사도발 등으로 촉발된 남북관계의 정치적 경색국면이 지속되면서 남북 스포츠 교류도 교착의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스포츠 교류가 남북한의 통합과정에서 양측 간의 갈등을 회피하면서 기능적 협조가 가장 쉬운 부문이라는 것이다. 스포츠 교류는 동서독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치적 갈등과 정서적 적대감을 상당부분 해소하고, 협력의 파급 등 확산(Spill-over)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다음으로 스포츠 교류의 또 다른 함의는 국가 간 관계 양상에 대한 정치적 상징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스포츠 경기를 하게 되면 양국 및 해당 정부에 대한 정치적 인정의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반대로 다른 나라와의 스포츠 교류를 거부함으로써 스포츠 교류를 허용하지 않게 되면 정치적 불인정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과거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정책을 실시하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하여 국제사회에서 올림픽 등과 같은 국제경기의 참여를 용인하지 않음으로써 스포츠를 통한 외교적 제재를 가하였다. 반대로 1971년 미국과 중국은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탁구 팀의 상호교류를 행하였다.
이른바 ‘핑퐁외교’는 상호 간의 인정과 호혜의 징검다리가 되었고, 스포츠 행사를 국교수립 이전의 단계에서 외교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스포츠 교류의 진전 혹은 퇴보는 양측 간 정치·외교적 관계의 긴장과 화해의 수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비쳐진다.
결국 스포츠 교류의 실천은 거시적으로 보면 상호성을 갖는 문화현상으로 부각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해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고 포용하며 통합화되는 결과를 산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측면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뿐만 아니라 경기를 지켜보는 대중에게도 유사한 효능을 발휘하게 된다.
다자 간 스포츠 교류인 올림픽 대회를 통해 인류애의 고양이나 세계평화에 대한 기대효과도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탈냉전 이후 올림픽 경기는 세계인의 평화 제전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전 세계인의 이목이 올림픽 경기에 집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포츠를 매개로 소통과 통합 그리고 축제의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지구촌 시대에는 나이(J. Nye)의 지적처럼 군사력과 같은 ‘명령적 능력’으로서의 하드 파워(hard power)보다는 문화와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남도 원하게 만드는 유인적 능력’으로서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중요성이 점증되고 있다.
즉 국가의 힘의 원천은 점차 무형화, 비강제화 되어 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문화·가치 등의 요인들이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스포츠의 소프트 파워적 속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가 갖는 소프트 파워적 속성은 올림픽과 같은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스포츠는 세계인들에게 매력을 촉발시키는 유인적 기제로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소통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한국, 스포츠로 평화 국가이미지 구축해야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스포츠의 소프트 파워적 의미를 깊이 있게 천착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럼에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각축을 벌이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울타리 속에서 하드 파워의 측면에서는 상대적 약소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상황의 탈피를 염두에 둔다면 국제적 영역에서 타국 국민들에게 한국의 매력을 보여주고 확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즉 한국의 생존·번영 전략의 하나는 보편적 가치로서 평화를 내세우고 촉진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포츠를 통해 평화 촉진자, 평화 창안자로서의 국가이미지를 적절하게 구축하고 투사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활용과 실천이 가능한 소프트 파워로서 스포츠와 스포츠 교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는 남북한 관계에서도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일 것이다.
유호근 / 한국외대 글로벌정치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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