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1년 9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놀아도 노는 게 아니다 2011년 9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27

놀아도 노는 게 아니다

 

남한에 살다보면 탈북자가 보기에 놀라운 일들이 많다. 치솟는 기름 값 때문에 못살겠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꽃구경이요, 휴가요, 하면서 서로 승벽내기라도 하듯 떠난다. 그런 차량들 때문에 도로가 주차장처럼 되어버리는 것도 놀랍고, 일은 저 혼자 다 하는 듯 항상 바쁘다고 아부재기를 치는 사람이 비싼 등산화까지 구입하며 빈번히 산에 가는 것도 놀랍다.

헬스클럽이나 각종 운동장, 수영장 등 운동을 위해 꾸려진 장소들도 한적할 때가 없다. 이유를 물어보면 건강을 위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아니면 정서적 욕구를 만족하기 위해서란다. 맞는 말이다. 등산이나 운동을 하고 나면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고 일도 신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두고 온 가족생각 … 잘 놀기 무슨 소용?

그런데 탈북자들의 경우엔 다르다. 탈북자들도 등산을 하고 운동을 하지만 대체로 남에게 이끌려서, 혹은 행사 차원에서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인은 등산에 참가하여 정상에 올라도 ‘야호!’ 소리를 지를 만큼 상쾌함을 느끼지 못한다. 운동에서 이겨도 별로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 순간만 지나면 왠지 쓸쓸하고 무의미한 일에 힘만 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술을 양껏 마셔도 그 때뿐이고 집에 돌아가면 오히려 더 외롭고 기분이 찜찜하다. 물론 운동과 여가를 무척 즐기며 사는 탈북자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가정이 안착된 사람들이다. 가족이 다 함께 남쪽에 왔거나 아니면 혼자뿐인 사람들은 등산, 운동, 노래방, 꽃구경, 휴가 등을 만끽할 줄 알았다.

가족들 빼내니 그 때야 산이 보이네

결국 북한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으로 인해 입게 될 일가족의 피해를 걱정하는 마음과 죄책감에 속박되어 있는 탈북자들에게는 아무리 좋은 운동, 좋은 볼거리도 모두 별로다. 남한에 온 지 5년이 되어오지만 아직도 꿈을 꾸면 북녘 고향이 더 자주 보인다. 그것도 대체로 악몽이다.

밥도 맛이 없다.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권해도 성의를 봐서 먹어주는 경우가 많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 생길 때도 있지만 먹다가도 불쑥 떠오르는 고향 생각, 가족 생각 때문에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 예로부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잘 먹고 봐야 경치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는 먹는 것마저 목에 걸리는데 경치가 아름다우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어느 방송사에 근무하는 같은 고향의 탈북자는 누가 산에 가자면 질색을 한다. 자기는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에 알러지가 생긴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 살 때 먹고 살기 위해 나무하러 다니고 약초를 캐고 풀을 뜯어 양식을 보충하느라 하도 산에 많이 올라가 산에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라 해도 안한다. 그 시간, 그 힘이면 일이나 더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밥과 김치 하나로 살다시피 하면서도 꼬박꼬박 돈을 모아 북에 보낸다. 그에게 노래방, 유희시설 같은 곳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자고 권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어쩌다 억지로 노래방에 끌려가면 겨우 노래 몇 곡 한다는 것이 전부 쓸쓸함, 고독, 비애 같은 어두운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뿐이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 달라졌다. 북한에 있던 일가족이 전부 압록강을 건너 태국까지 무사히 도착해 한국 대사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부터다. 그가 처음으로 제 편에서 먼저 도봉산에 가서 산행도 하고 막걸리도 마시자고 제안해 함께 갔다. 정상에 올라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주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나도 북한에 있는 가족을 어떻게든 빼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그 후 나도 일가족 6명을 태국까지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남한에 입국할 절차만 남았다. 그래선지 요즘은 마음이 편안해져 간다. 슬그머니 산에 갈 생각도 나고 계곡에 갈 생각도 난다.

행복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가족을 잃은 사람의 상처는 일상에서 가지게 되는 스트레스와 다르다. 그것은 운동이나 유희로 해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뜻한 인정미와 아픔을 공유해주는 사회적 환경이 등산이나, 운동보다 먼저다.

그러나 아쉽게도 남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 속에는 멀리 아프리카의 빈곤문제 같은 것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옆에 있는 동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탈북자는 몸은 비록 독재체제에서 탈출했지만 마음은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국토분단, 민족분단은 탈북자의 몸과 마음마저 분단시킨 셈이다. 탈북자가 ‘통일의 선구자’라는 말을 들을 때면 슬프게도 ‘분단의 피조물’이라는 말이 함께 생각나곤 한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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