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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콩나물시루 속 ‘어화 둥둥 내사랑’ 2011년 10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8

콩나물시루 속 ‘어화 둥둥 내사랑’

 

생활에 있어 대중교통이 차지하는 몫은 방대하다. 어느 사회나 교통이 원활해야 경제가 활성화 되고 대중문화도 발달해 사람 사는 멋이 나는데 오늘 날 북한의 교통실태는 너무 열악하다. 기름 사정으로 인해 자동차나 수상교통은 생각할 수조차 없고 대체로 보면 전기로 달리는 열차 하나뿐이다.

정상적인 배급에 의해 움직일 때와 달리 이제는 그 배급 제도마저 완전 마비된 터라 먹을 걸 찾아 나선 주민 유동은 옛날보다 몇 배로 늘어났다. 그만큼 운송수단도 늘어나야 마땅한데, 열악한 경제사정이 허락지 않아 이제 유동 그 자체가 고역이 되고 말았다.

북한에서 열차는 최고시속 80km로 달릴 수 있지만 철길이 이제는 너무 낡아 60km정도에서도 탈선 같은 사고가 비일비재로 일어난다. 보통 시속 30~40km로 운행되는 여객열차 안의 모습은 정말 타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못한다. 객차 하나에 108명을 정원으로 하지만 언제 보나 보통 500여 명이 승차하니 그 안의 정경이 과연 어떠할까?

108명 정원에 500명 탄다?

함흥에서 평양까지 정시로 달리면 8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사실 그 거리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전기 부족으로 인해 지금은 보통 2~3일 걸리는 정도다. 편안히 지정된 자리에 앉아 푸짐히 먹으면서 옛말도 하며 여행한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앉기는커녕 꼿꼿이 서서도 한쪽 발을 들면 놓을 데조차 없어 한동안 들고 가야 한다.

필자도 지겹도록 겪어 보았지만 북한에서의 열차 여행은 한 번 타면 정말 사람 몸의 진을 다 빼 버리는 고행의 연속이다. 최근에 입국한 고향(청진) 사람을 필자가 얼마 전에 만났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열차 이야기가 나왔다. 술 한 잔 얼큰해지자 곁에 앉은 젊은 아내를 가리키며 열차에서 난감했던 일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객대는 물론 승강대, 화장실, 어디라 할 것 없이 마치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으로 빼곡한 객대 안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그처럼 난감한 일이 없다. 남자의 경우는 뭐 염치를 불구하고 창문이나 구석에 돌아서서 빈 물병 같은 것에 보면 급한 고비는 넘기는데, 문제는 여자다.

나이 든 여인들은 그나마 얼굴이 두꺼워서 엉거주춤 구부리고 앉아 바지를 입었으면 가지고 다니는 수건으로 엉덩이를 가리고 아귀가 큰 비닐봉지에 보고 창문으로 던져버리면 되는데 젊은 여자야 어찌 그런 용단을 내리랴.

男 “화장실?” … 女 ‘끄덕끄덕’

연 다섯 시간 정도 객대 중간쯤의 위치에서 꼿꼿이 서 오던 이 사람이 곁에서 안절부절 하는 아내에게 짐작은 하면서도 왜 그러냐고 물었다.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새색시라 아무리 남편이라도 부끄러워 얼굴만 붉히며 말을 못했다. 화장실 때문에 그러느냐고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새색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차가 멎자면 아직 얼마를 더 가야 할지 모른다. 설사 멎는다 하더라도 객대 중간에서 승강대까지 나가려면, 그리고 그 다음 땅에 내려서서 일을 해결하고 다시 이 복잡한 열차를 다시 탄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남자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쏟아졌다.

오늘 아내는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열차에 올랐다. 차라리 치마면 묘한 방법도 있으련만 그것도 아니니 한숨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있으면 아내는 분명 옷을 입은 채로 실수할 수밖에 없다. 하기야 뭐 조건이 조건이니만치 그까짓 실수쯤이야 냇물 건너뛰듯 훌쩍 넘어가면 되겠지만 남자는 남편으로서 조금이라도 아내가 남부끄러운 실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기발한 착상을 떠올리며 남편은 얼른 그때까지 아랫배를 움켜쥐고 얼굴이 빨개 허리를 구부리고 서있는 아내에게 자기 윗옷을 벗어 치마처럼 두른 다음 아내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러면서 “사랑, 사랑 내 사랑, 천금 같은 내 사랑, 어화 둥둥 내 사랑 내 사랑이야.” 하고 춘향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시작하며 아내의 일처리(?)를 도왔다.

여자는 자기를 안고 노래까지 불러대는 남편이 더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것 같아 손으로는 남편을 꼬집으면서도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용기 하나 준비 못한 것을 뼈아프게 후회했다고 한다.

이윽고 볼 일이 다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안도의 숨을 길게 내 쉬었다. 북한에서 열차 손님 모두는 장시간의 고행이어서 누가 무슨 일을 하든 상관할 여유가 없다. 둘은 그게 오히려 너무 다행스러웠다고 한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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