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북한산을 오르며 낯선 삶의 독백을 담다 2015년 12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48
북한산을 오르며 낯선 삶의 독백을 담다
<북한산>은 미술가 임흥순이 북한에서 온 가수 김복주를 찍은 작품이다. 그녀가 한국에서 무대 위에 올라 노래할 때와 같은 밝은 색 한복을 입고 북한산을 오르며 독백하듯 이야기하는 뒷모습을 카메라를 멘 임흥순이 따라간다.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여가수를 볼 때 우리가 느끼는 낯선 기분처럼 그녀가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북한에서의 삶의 파편들은 통속적임에도 불구하고 초현실주의 화면처럼 들려왔다.
“우리 엄마 아빠 보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곤 했었죠. 왜냐고요? 우리 엄마 아빠는 사이가 참 좋으셨어요. 조롱조롱 자식들 다 앉혀놓고, 숨바꼭질을 했으니까. 아빠가 주방에 들어서면 엄마가 ‘무슨 남자가 주방에 들어서고 그래요! 볼꼴 사납게!’라고 하죠. 그러면 아빠는 ‘종숙 동무, 외국에는 유명한 요리사들이 다 남자들이라우’ 하시면서 우리한테 눈을 끔뻑끔뻑 했던 기억도 있어요. 엄마가 요리한 것보다 아마도 우리 아빠가 해준 음식 더 많이 먹고 자랐을 거야. 우리 아빠 참 요리 잘했는데. 우리 아빠 많이 보고 싶다…”
“우리 아빠는 허풍쟁이였어요. 아마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지금도 그게 긴가민가해요. 우리 아빠는 먼 바다에 나가는 원양선단, 배를 탔었는데. 어렸을 때 인어공주 동화 있잖아요? 그거 보면서 한 번은 ‘인어공주 다 거짓말이야. 어떻게 고기인 사람이 있어?’라고 하니까 우리 아빠가 ‘인어고기가 진짜로 있단다.’라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근데 그림책처럼 예쁘진 않아’라고 하면서 하는 말씀이 한 번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았는데 엄청 큰, 사람만한 고기를 잡았다는 거예요. 위에는 사람이고 밑에 꼬리는 물고기… 말이 돼요? 내가 이제 한 20년, 30년? 한 25년 흘렀나? 그래도 뭐 인어공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어렸을 때는 그 말이 맞겠다 싶어서 홀까닥 넘어갔지. 그냥 ‘정말 인어공주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뻥이었던 거 같아. 상상력 키워주기 위해서. 항상 상상 속에 살았지.”
산을 오르며 읊조리는 북한 가수, 뒤따르며 카메라에 담는 남한 미술가
그녀는 상상의 나라에서 온 것인가? 신의 나라, 신화의 나라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듯 독백처럼 내뱉는 그녀의 담담한 읊조림이 화면 안에 펼쳐지자 ‘우리가 바라보는 북한의 모습 또한 상상의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들과 순간 겹쳐졌다가 또 다시 분리된다.
산을 힘차게 올라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숲속을 헤쳐나가는 카메라의 흔들림과 겹쳐지면서 탈북의 과정을 상상하게 했다가 남한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겹쳐지면서 다시 남한에서의 삶을 압축해내는 기표로도 읽혔다.
“한국 처음 왔을 땐 똑같죠, 뭐. 우리나라니까 별로 낯설지는 않았어요. 냄새, 공기가 조금 다른 게. 그냥 ‘아, 너무 답답하다?’, ‘건물이 너무 다닥다닥 붙었어’ 이런 느낌? 근데 사람들이 좀 낯설었다고 할까. 돈밖에 모르는 것 같았고, 좀 차가운 것 같기도 했고, 경계도 많이 하고. 마음이 조금 열려서 이제 어울릴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사기를 몇 번 당했죠. 뒤통수 몇 번 맞고. 참 많이 힘들어서 그때 ‘내가 여기를 왜 왔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 생각 진짜 많이 했었죠. 내 나라, 여기도 내 조국이라고 생각했고 그랬는데. 외국인 같이 취급 받고. 아니, 외국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되나? 근데 누군가 계속 또 다가와서 진심을 보여주고 문 두드리고. 정말 진실한 사람이 다가와서 계속 끊임없이 관심 보여주고, 잘해주고 이러니까 이제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하고 소통하게 되는, 지금의 이런 상황을 노래에 담고 싶었어요.”
북한산 정상에 올라 한 눈에 펼쳐지는 서울 시내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노래가 끝나자 서울 시내를 향해 손을 흔드는 그녀의 뒷모습과 함께 엔딩 자막이 올라왔다. 상처 가득할 것 같은 그녀의 가슴이 그 손끝에 실려 있는 듯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아요. 많이 좋아요.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산은 꼭 정상까지 올라가요. 근데 인생도 그런 거 같아요. 끝까지 올라가봐야 뭐가 있는지 알잖아요. 저 산도 정상에 올라와야 뭐가 있는지 아니까. 올라가보지 않으면 누구도 모르니까, 어떤지. 그게 난 사는 희망인 거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리는 화면과 함께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박계리 / 통일디자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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