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풀 나무 꽃에 스민 조선의기백, 빠짐없이 그려보련다” 2012년 3월호
박계리의 스케치북 3
“풀 나무 꽃에 스민 조선의기백, 빠짐없이 그려보련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있던 김용준의 미학이 북한 미술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때 부각된 작가가 리석호(1904~1971)이다. 그의 작품은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듯, 2011년 9월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 출품되어 외국 화랑들의 비상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북한에서 새로운 조선적인 리얼리즘 회화를 어떠한 조형 형식으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첫 논쟁에서 김용준 계열이 이기고, 두 번재 논쟁인 복고주의 논쟁에서 김용준 계가 지면서 김일성 시대를 대표하는 조형 형식이 완성되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 바로 그 때가 리석호가 부각된 시기이다.
다음호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지만, 김일성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은 김룡권의 <진격의 나루터>에서 보듯이 조선화, 즉 전통적 매체인 종이(또는 비단)에 먹과 붓을 쓰면서도 러시아 리얼리즘의 유화작품들처럼 화면 안의 대상물이 손에 잡힐 듯한 덩어리감이 표현되어 있고, 화면에는 안으로 걸어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공간감이 표현되어 있다. 사진기로 찰칵 찍은 화면과 같은 사실감이 있는 작품들이다.
이에 비해서 리석호의 <국화>는 평면적이고 보다 전통적이다. 김용준과 리석호는 <국화>와 같은 작품에 바로 조선적인 리얼리즘 미학이 숨쉬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상의 관찰을 통해서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할 때, 대상의 외형적인 형태만을 표현하는 것은 진정한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생각한 이들은, 형태의 리얼리즘을 표현하는 것은 물로 중요하지만 이를 넘어서 대상의 본질, 또는 법칙까지 화면 안에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국화>, 조선 리얼리즘 미학의 재발견
예를 들어 난(蘭)을 그릴 때, 외형만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까지 화면에 담아 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들의 대답은 실물을 더 가깝게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난을 너무 사랑해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세 번씩 물을 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죽을 것이다. 죽은 난을 보며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는데 왜 죽었을까? 하늘을 보고 원망을 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이 난의 주인은 난의 법칙, 난의 생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최소한 1년 난을 관찰하면 그제서야 우리는 난이 장마에 어떻게 되는지, 그러다가 건조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생리를 파악하게 되면서 난을 잘 키울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난에 대해 많이 알아 가게 되면 어느 순간 난이 내 자신인 듯 다 알게 되고, 그 순간 난과 난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합일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나와 난이 하나가 될 때, 일필휘지로 난을 그려도 그 ‘난’ 그림 안에는 ‘난’의 법칙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내 속에 난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난을 그릴 때 밑에서부터 위로 붓을 움직이는 것도 난이 자라는 생기레 맞춰 그림을 그리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듯 대상을 핍진하게 관찰하는 것을 응찰한다고 하는데, 응찰을 통해 대상의 외형뿐만 아니라, 본질, 법칙가지 표현해내는 것은 대상의 형태만 손에 잡힐 듯 똑같이 그리는 서구적 방법보다 더 높은 단계의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한 것이 김용준이었으며, 그의 이론을 대표하는 화가는 리석호였던 것이다.
리석호는 경기도 안성시에서 출생하여 해방 전 서화협회 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출품하여 입선을 한 바 있으며 정종여(1914~1984) 등과 함께 7인전을 가졌고, 1949년에는 이응로와 함께 2인전을 개최하는 등 화가로서 활동하다가 월복,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으로 1963년까지 활동하였다.
주로 풀, 꽃, 나무 등 화조화를 많이 그린 리석호는 자신이 작업을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나는 우리 조국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스며있는 조선의 정신과 기백을 화폭으로 형상한다는 긍지로 하여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무한한 행복으로 생각한다. 조국의 진달래를 비롯한 가지가지 오색찬란한 꽃을 빠짐없이 그려보려 한다.”
조국에 핀 이름 없는 풀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함으로써 이를 통해 조국애를 드러내고자 하였던 리석호. 그의 붓질에서 표현된 색의 농담, 붓의 속도감, 선의 강약을 통한 생명력의 표현이 함축된 시적 정서는 북한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하는 점이기도 하다.
박계리 /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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