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2월 1일

통통 인터뷰 | “교류란 만남이 핵심이죠” 2015년 2월호

통통 인터뷰 | 모순영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과장

“교류란 만남이 핵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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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교 청량음료점, 고기상점, 군밤 매대, 성북 종합편의, 보통강 수산물상점. 언뜻 이해는 가지만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 말들은 평양시내 상점의 이름이다. 평양 한 공원에는 “공원에 휴지와 오물을 망탕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팻말이 있다. ‘망탕’은 ‘마구’라는 뜻으로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남과 북의 언어에는 언제부턴가 묘한 차이가 생겼다. 남한에는 수많은 외래어가 유입됐고, 북한에서는 좀 더 직설적인 표현을 즐겨 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를 지탱해준 것은 신뢰였어요”

모순영 겨레말큰사전편찬사업회 총무과장은 지난해 10월 30일, 5년 7개월 만에 평양을 찾았다. 뜻하지 않게 동면에 들어갔던 편찬사업이 기지개를 켰기 때문이다. 평양에 도착하자 오랜만에 만나는 북측 사업단이 유독 반갑게 느껴졌다.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 눈에 익은 사람들도 있었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도 있었다. 평양의 변화도 속속 감지됐다. 거리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고층 건물도 늘어났다.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단절이 오래되었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북이 함께 만드는 사전이다. 사전은 남과 북 외에도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사용하는 ‘우리말’을 담는다. ‘겨레말’은 여기서 착안했다. 통일 이후 표준어(남)와 문화어(북)를 넘어선 우리말을 구축하기 위해 2005년 첫 삽을 뜨기 시작됐다.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대사전에서 실린 올림말을 남북의 편찬원이 동일한 기준으로 함께 검토하여 23만개의 올림말을 선별하고 신어, 문헌어, 지역어, 해외지역어를 포함한 10만개의 새 어휘를 발굴하기로 했다. 그렇게 총 33만개의 단어가 수록될 겨레말큰사전은 2014년 4월 발간을 목표로 1년에 4차례씩 정기적 만남을 이어가며 꾸준히 책장을 쌓아갔다.

하지만 2009년 남북관계 경색으로 모든 교류가 중단됐다. 사업회는 언제 재개될지 모를 제21차 공동편찬회의를 준비했다. 올림말 목록 정비, 새 어휘 선정, ‘용례검색기’ 프로그램 개발 등을 진행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2013년 국회는 중단된 기간을 보장해주기 위해 겨레말큰사전의 발간을 2019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겨레말큰사전이 단순한 어휘의 통합이 아니라 민족문화 공동체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진정한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의의를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남북교류가 중단된 때에도 남북은 중국 선양에서 만나며 회의(제21차)를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사업이었기에 감회도 새로웠다. “우리를 지탱해준 것은 신뢰였어요.” 지연은 됐을지언정 중단은 되지 않았다. 남과 북 모두가 믿고 기다렸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22차 회의에서는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풀어놓으며 회의에 몰두했다. 집필원고 1만8천개를 검토하여 1만5천개를 합의했다.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9박10일간의 일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예전엔 바로 알아들었는데 … 안 만나면 더 그렇겠죠”

겨레말큰사전의 가장 큰 의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과 북이 묻어있다는 점이다. 하나하나 서로 만나서 합의하고 수록을 하니 진정한 교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만나야죠. 그렇지 않으면 남북교류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돼요.” 북한도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사전편찬에 임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평양. 반가움에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지난번보다 나았어.”라는 북한 인사의 말에 모 과장은 ‘얼굴에 뭐가 생겼나?’ 생각하며 머쓱해졌다. 알고 보니 이는 보기 좋아졌다는 칭찬이었다. “예전에는 바로바로 알아들었는데, 단번에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북한측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시간 떨어져 사용한 언어는 각자의 사회에 맞게 변했고 같은 말을 쓰는 남북의 언어는 이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단어의 의미가 달라 못 알아들었던 거예요. 만나지 않으면 이런 게 더 많아지겠죠.”

“소통에는 배려가 중요해요”

문화의 차이도 종종 있었다. 초기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어떤 말을 싫어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몸무게가 얼마나 나갑니까?” 서슴없이 던지는 질문이 남한 사회에서는 결례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회의 도중, 식사 도중 작은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만남의 횟수가 잦아지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오해는 줄어갔다. 나중에는 “남한에서 이런 질문도 실례가 됩니까?”라며 먼저 물어왔다.

“소통에는 배려가 중요해요. 기본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 힘들겠죠.” 편함과 부담감의 경계를 오가는 남북교류에서는 상대에 대한 배려, 사회에 대한 배려 등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반드시 요구된다. “‘이래서 다르구나’라며 배우고, ‘이런 것이 교류구나’라며 익숙해지더라고요.” 교류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함께 상대를 배우고 느끼는 것,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에서 교류의 의미를 되새긴다.

본 사업은 모범적인 교류협력 사례로 일본 <아사히 신문>, 중국 <조선문보>, 프랑스 라디오방송 등에도 소개됐다. 모순영 과장은 사업의 성공요인으로 비정치적, 순수교류사업이라는 점 외에도 “본질적 목적에 충실하는 것”을 꼽는다. 사업회의 목적이 언어 이질화를 극복하고 통일 이후 언어정책 방향을 구축하는 것에 있으니 사전 편찬에 최대한 집중하는 것이다. 친교나 관찰 등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보면 본래의 목적이 희석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제가 겨레말큰사전사업회 출범부터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에요. 남북 문화교류 현장에서 10년 동안 일할 수 있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잖아요. 또한 국가사업인 만큼 책임감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굳이 의도적 이벤트를 만들지 않더라도 만남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업 과정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두 교류였다.

우리말은 끈질기다. 강하다. 유일하게 한민족이 사용하는 우리말은 일제강점기에 모진 핍박에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수백 년을 이어져온 우리말에 70여 년의 분단으로 인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균열이 파열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남북 언어학자들은 오늘도 한 자, 한 자에 정성을 쏟는다. 겨레의 얼을 불어 넣는다.

통일이 되면 표준어와 문화어를 이을 우리의 모국어, 남북이 공동으로 합의해 얻은 결과물, 이것이 겨레말이다.

선수현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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