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달러, 엔, 위안, 싹쓸이 하라! 2015년 3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49
달러, 엔, 위안, 싹쓸이 하라!
북한에서도 전자카드 하나로 물건을 사고 계산하는 시대가 열렸다. 단지 아직까지 지방에서는 사용하지 못하고 수도인 평양에서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래’라고 불리는 전자카드의 용도는 우리나라 체크카드와 비슷하다. 하지만 체크카드는 은행에 가서 현금도 뽑아 쓸 수 있는데 나래카드로는 일단 집어넣은 돈만큼 물건을 구입하는 데만 쓸 뿐 현금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잠깐 이 카드의 진실을 살펴보자.
“나래카드요? 발급 안 되겠는데요”
지방에서 무역거래로 평양에 자주 드나드는 한 씨라는 사람이 전자카드 발급을 위해 무역은행에 찾아갔다. 물론 입금할 북한 돈을 한보따리 안고 말이다. 은행에 돈을 입금하고 나서 그 돈을 카드로 쓸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하자 은행 여직원은 마치 외계에서 온 사람을 보듯 어처구니 없는 눈길을 보낸다.
영문을 몰라 왜 그러냐고 하자 은행직원이 “촌에서 오셨어요?” 하며 아니꼬운 눈길을 보낸다. 속으로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거래가 안 끝났기에 한 씨는 꾹 참고 빨리 카드를 발급해 달라고 했다. 실제로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평양 사람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촌놈으로 비하하며 깔보기를 밥 먹듯 한다.
그깟 지방 촌놈이라 깔보는 것쯤은 대범함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한 씨는 어서 직원이 카드를 발급해 주기만 기다렸다. 무역일로 많은 돈을 주무르는 한 씨로서는 대금을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아니 신기에 앞서 이건 편리함의 극치이기도 했다. 1달러에 북한 돈 8천원이 넘는 현실에서 무엇을 사려면 돈을 한 배낭 정도 들고 다녀야 하니 간단한 카드로 결제를 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카드발급은 안 되겠는데요.” 직원이 그리 말하자 한 씨의 눈이 대뜸 커졌다. 그만한 사연이 있어서다. 북한 은행은 일단 돈을 입금하면 그걸 도로 찾아 쓰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은행에서 돈이 없다며 나중에 와보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카드발급이 안 되다니 방금 돈을 입금했는데 왜 안 된다는 거요?”, “손님 지금 날 놀리는 거예요?”, “예에? 놀리다니? 당신이 날 놀리는 건 아니구?”, “이 손님 정말… 어서 가요! 통장 여기 있으니까.”
직원이 발딱 일어서며 통장이 담긴 작은 바구니를 홱 밀어준다. “이봐, 당신 왜 이래?” 한 씨의 억양이 거칠어졌다.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예요?”, “뭘 모르고 알고야! 카드를 발급해 달라는데…”, “이것 봐요. 나래카드는 외화카드에요. 알아요? 내화를 한 웅큼 들고 와서 외화카드를 만들어 달라면 난들 어쩌란 말이에요!”
당황해서 되물었다. “뭐요? 그게 외화 카드였소?”, “그걸 진짜 몰랐어요?”, “아, 알면 그랬겠소?”, “똑똑히 들으세요. 나래카드는 외화를 입금했을 때만 발급해 주는 카드에요. 됐어요?”, “그럼 환전해서 하면 될 거 아니요. 그만한 것도 못하오?”, “누가 환전해 줘요? 여긴 은행이지 환전소가 아닙니다. 시끄러워요. 어서가요!”
“그게 외화카드였소?”
결국 한 씨는 돈만 입금시키고 은행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은행 건물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이건 참 요지경인 나라 북한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나래라는 이 전자카드의 실체는 분명하다. 주민들 손에 있는 외화를 손쉽게 거두어들이기 위한 북한 정부의 숨은 속셈이 들어있는 것이다. 일단 달러나 엔, 위안을 입금시키면 이 카드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현금으로는 절대 찾아 쓸 수 없게 만든 이유도 아주 선명해진다.
처음 도입되는 카드인 만큼 주민선호도도 만만찮다. 외화백화점이나 카페에 들러 카드 하나로 결제를 하고 물건을 사고 한상 푸짐히 차려 먹는 모습 자체가 부의 상징으로 넉넉히 표현된다. 나라의 곳곳에 존재하는 외화벌이 업체가 판을 치고 외화가 아니면 시장에서조차 행세를 할 수 없는 현 실정에서 외화 전자결제 카드의 출현은 북한 정부의 외화싹쓸이를 목적으로 한 면밀한 시책 아닐까.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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