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2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북 | 개성공단 초상화 <평화램프> 2016년 2월호

박계리의 스케치 50

개성공단 초상화 <평화램프>

개성의 공기는 평양과 달랐다. 평양은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버린 도시였다. 북한 사회가 재건되기 위해 평양이라는 도시의 복구는 필수적이었고, 이에 따라 사회주의 미학을 담은 계획도시가 설계되었다. 평양이라는 도시에 처음 갔을 때 거대한 기념비 미술의 거리가 사회주의 땅에 왔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지만 빌딩과 아파트에 둘러싸인 이 도시에 곧 익숙해졌다. 이 또한 모더니즘 도시 설계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은 달랐다. 도라산역을 넘으며 받았던 북한 땅이라는 긴장감을 대신해 고려의 역사를 품게 한 개성이었다. 그러나 개성의 역사유적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시선을 더 붙잡았던 것은 도라산역에서 역사유적지구를 가기 위해 지나쳤던 개성 시내의 모습이었다. 차창으로 보이던 현대화 되지 못한 골목골목의 풍경에서,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삶의 나이테가 겹겹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얼핏 시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개성의 현대화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 빌딩과 아파트가 대신하는 현대화가 답이 아니라는 생각은 명확하다. 낙후되어 보이지만 그 속에 묻어있는 역사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공간의 매력이 현대화라는 기능성과 잘 접목되어야 할 것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개성 사람들은 매우 활기차 보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우리에게 개성 사람들은 개성공단의 노동자 모습과 겹쳐진다. 독자들에겐 아직도 ‘개성’이라는 공간이 고려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읽혀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면 ‘개성’은 현재 우리의 역사, 즉 분단의 시대와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분단의 상징이 DMZ라면 평화의 상징이 개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은 그렇게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역사유적으로 유네스코에 ‘개성공단’이 등재될 시점이 올 것이다.

개성공단은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6km 떨어진 위치에 있어서 북한의 대남 군사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장소다. 이렇듯 남북의 군사력이 밀집한 지대, 즉 DMZ와 군사분계선을 남측 사람과 차량이 매일 왕래하는 그 자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상징성은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립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더욱 명확해진다.

이부록 작가의 <평화램프>는 이러한 개성공단의 초상화다.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단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제품 ‘개성냄비’가 곧바로 서울 백화점에서 판매되었고,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고 언론에서 일제히 보도했던 기억이 새롭다. 미술가 이부록은 이 개성냄비를 실크스크린으로 작업해 개성공단의 역사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을 ‘평화램프’라고 명명했다. 이부록은 ‘평화램프’라는 이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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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록, <평화램프> 개성공단 냄비, 디프메트지에 실크스크린, 109×236.4cm, 2015

평화 밝히는 등이자 분단과 평화 잇는 램프

“<평화램프>의 램프는 영어 Lamp, 즉 등불이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어떤 작동 상태나 과정 따위를 나타내 보이는 기계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고속도로가 입체 교차를 할 때 인터체인지와 고속도로를 이어주는 램프(ramp)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개성공단은 평화를 밝히는 등불이자 한반도에서 평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드러내 보이는 등이며 분단체제와 평화체제를 이어주는 램프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개성공단은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가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듯한 과정이다. 결코 남자가 여자로 될 수는 없지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당당히 공존할 때 엑스터시가 분출된다는 ‘뻔하지만 소중한’ 인류의 지혜가 실험되는 곳이다. 이부록의 작업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자본주의 기계화에 의한 복제품들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개성에서는 전쟁의 폭력에서 평화의 기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역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워바타(Warvata)’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이부록은 기호체계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아바타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 언어를 생산하고, 이를 대중과 소통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작가이기도 하다. <평화램프>의 세부를 들어다보면 이부록의 워바타들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Warvata’는 ‘War(전쟁)’와 ‘Avata(아바타 : 가상현실에서 자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합성어다. 즉 전쟁을 표상하는 가상의 아바타를 뜻한다. 워바타는 전쟁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병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신을 무한히 파생시켜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시각적 언어로 동작한다. 작가는 경쟁과 폭력, 통제와 소외로 얼룩진 현실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이러한 전쟁터에 배치 받아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과 맞서는 워바타들을 통해 언어기호에 내재하는 권력 작용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어렵게 만난 당국자회담의 내용이 수시로 뒤바뀌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개성공단의 일상적 유지가 더 실질적인 평화 장치가 아닐까? 개성공단의 역사와 미래를 품은 개성공단의 초상화 <평화램프>를 보며 드는 생각이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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