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2월 1일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북한 연애 풍속도 대담해졌다 … 한국 드라마 영향? 2016년 2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38

북한 연애 풍속도 대담해졌다 한국 드라마 영향?

북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청춘들의 연애와 사랑도 ‘혁명적으로, 시대정신에 맞게’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정말로 그럴까?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완전한 허구로 선전선동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정치사상성을 강조하는 사회라 해도 뜨겁고도 뜨거운 청춘남녀들의 연애와 사랑에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이라는 매개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겠는가? 어느 청춘남녀가 자기들의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정치적 색채로 낙서하고 싶겠는가?

북한에서 청춘들의 연애와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이것도 역시 시대에 따라 다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북한이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다를 게 뭐가 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달랐다는 것이다.

2014년 10월 8일 평양에서 열린 학생 무도회에서 남녀가 짝을 이뤄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10월 8일 평양에서 열린 학생 무도회에서 남녀가 짝을 이뤄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우리가 자라던 1970~1980년대에는 연애라는 용어 자체가 부화방탕의 대명사였다. 어느 청춘남녀가 연애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기만 하면 못 들을 것을 들은 것처럼,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시기했다. 심지어 가정교육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학교에서 이런 소문이 학생들 속에 과다하게 퍼지며 교양상 나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즉시 담임선생이나 청년동맹 지도원이 불러다 비판서를 쓰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연애 방법도 여학생이 집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다 불쑥 나타나 대시하거나 연애편지를 써 여학생과 가까운 3자를 통해 전달하는 방법 등이었다. 대단히 소극적이었고 희귀할 정도였다. 이렇게 연애가 소극적이고 연애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보니 자유결혼 같은 게 거의 없고 전부 중매결혼뿐이었다. 자유결혼을 하면 가정생활이 파탄난다는 속설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연애나 자유결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는 말이다.

연애스타일, 문자·메일로 변화 SNS는 아직

허나 1990년대 들어서며 북한 청춘들의 연애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북한에 들이닥친 한류의 영향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젊은이들의 사고가 유연하고 대담해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연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조금씩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으며 비록 희미하기는 하지만 연애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부모세대의 인식 변화라 생각한다. 이전엔 어느 집 딸이 누구와 연애한다는 말이 돌기만 해도 펄쩍 뛰던 부모들이 못 들은 체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연애를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도 변화라 할 수 있다. 연애에 호기심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연애하는 친구들을 시기,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대다수 문화의 출발점은 도시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평양 같은 경우엔 중학생들이 집단체조(매스게임)에 많이 동원된다. 이때 연애가 많이 이루어지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면 어느 학교 누구, 이런 식으로 접근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조 몇 번이라는 식으로 만나기도 한다. 숫기가 없어 대시를 못한 남학생들의 경우 군 입대를 한 후 고향의 친구들에게 ‘집단체조 당시 몇 조 몇 번에게 나의 주소를 좀 전해라’, 혹은 자기가 직접 쓴 편지를 전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최근 북한 친구들은 어떤 방법으로 연애할까? 큰 틀에서는 1990년대와 비슷하겠지만 좀 더 진화했고 대담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전엔 캄캄한 밤에만 몰래 만났지만 지금은 대낮에 이성친구를 만나 연애하는 친구들도 나타나고 있다. 또 이성친구 생일에 선물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고, 여자친구 집에 일이 생기면 친구들을 데리고 가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다. 여성들도 요란하진 않아도 몸에 목걸이, 커플링, 귀걸이 등 액세서리로 치장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휴대전화를 비롯한 IT기기라는 현대문명의 덕을 보는 것도 사실이다. 휴대전화로 통지문(문자메시지)을 보내거나 컴퓨터로 전자우편(메일)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물론 휴대전화 사용자 수가 400만명에 근접한다고 해도 학생 소지자는 많지 않다.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처럼 노트북이나 태블릿PC를 갖고 있는 학생은 손에 꼽는다. 집에 한 대뿐인 컴퓨터로 하교 후 집에 틀어박혀 여자친구와 메일을 주고받을 친구가 몇이나 되겠는가? 또 정전을 밥 먹듯 하는 북한에서 컴퓨터를 아무 때나 사용하기 곤란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네처럼 학교에서, 길을 가며 실시간 SNS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이처럼 연애가 처해진 환경에 따라, 시대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체제를 막론하고 똑같은 것 같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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