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수남시장 짝다리 2016년 2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60
수남시장 짝다리
최근 북한 장마당 모습이 매우 이채롭다고 한다. 지나온 세월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구역에 위치한 수남시장만 봐도 그렇다고 하는데 수남시장이 생겨난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다. 100여 만 인구가 먹고 살 기본적인 물물거래가 이루어지는 거대시장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시장의 구석구석 별의별 희귀한 흔적들이 마치 나무연륜처럼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옛날처럼 자그마한 물건을 들고 나와 팔려고 시장 귀퉁이에 슬그머니 앉아 지나가는 손님들을 쳐다보던 때는 이제 영영 지나갔다. 시장 전반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관리소 건물도 국가기관 건물처럼 규모를 갖추어 들어앉았고 관리소엔 공식 직원들만 해도 수십명에 달한다고 한다.
음식물, 쌀, 공산품, 가전제품, 윤전기재, 수산품 등 수십 가지 거래품목을 종류별로 관리하는 인원이 빈틈없이 배치되어 있어 불법유통이나 내키는 대로 가격을 정해 파는 따위들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물물거래 가격은 같은 종류라 해도 천차만별이었고 아침과 점심, 저녁 때의 값이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만약의 경우라도 관리소가 정한 가격을 어겼을 경우 단속되면 막대한 벌금과 심지어 시장담당 보안원에 의해 연행까지 당하고 시장에서 영영 축출해 버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시장 규칙에 전혀 구애되지 않고 안하무인으로 사람을 골라가며 값을 정하고 강제로 물건을 파는 이들이 있어 주민들의 원성이 높다고 하는데 2014년에 탈북하여 서울에 정착한 김태성(가명) 씨의 증언에 기초해 그 내막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다른 사람 고기를 사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요”
무더운 여름날 땡볕이 내려쬐는 정오 쯤, 옷차림으로 보아 조금은 있어 보이는 한 여인이 수남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무엇을 사서 넣으려 그랬는지 훌쭉한 비닐 꾸러미가 들려있다. 수산물이 진열돼 있는 시장 초입에서 잠시 생선과 절인 고기들을 살펴보다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매대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뚝 일어나 여인의 옷자락을 잡았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이 사람이 “어서 고기 몇 마리 사라.”며 눈을 굴렸다. 옷은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었는데 한 손에는 짝다리(목발)를 짚고 서 있었다. 딱 보니 영예군인(상이군인)이 틀림없었다. 군 복무 중 사고로 다리나 팔, 눈을 잃고 제대한 사람을 북한에선 영예군인이라 부른다.
“난 그냥 물건을 구경하는 건데요.”하고 여인이 말하자 “봤으니까 사야지. 만약 내 것 말고 다른 사람 고기를 사면 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테요.”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사는 건 내 마음이지요.” “어디 두고 봅시다.”
여인은 비웃으며 바로 옆에 앉은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바구니에 놓인 청어를 가리키며 한 마리에 얼마냐고 물었다. “이천 원이요.” 하자 “그럼 다섯 마리 주세요.”라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청어를 넣어 여인에게 내밀자 갑자기 휙 하는 바람소리가 나며 봉지가 여지없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눈에 핏발이 선 영예군인이 짚고 섰던 짝다리로 비닐봉지를 내쳤던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여인이 대들자 짝다리는 인상을 쓰며 여인의 팔을 잡았다. “야, 넌 내가 우습게 보여? 보아하니 돈깨나 주무르는 것 같은데 개수작 말고 내걸 사! 내건 값이 마리당 4천원이야. 어서!”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여인이 기겁해 소리쳤지만 아무도 나서 주는 사람은 없었다.
“법? 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법도 나라가 있어야 존재하는 거야. 네 눈엔 내가 짝다리나 짚고 서 있으니까 우습게 보여? 난 장군님이 영도하는 나라를 지키다가 이렇게 된 거야. 적선은 못할 망정 이게 어디서! 자, 다섯 마리 줄 테니까 2만원을 내. 안낼 거야?”
호통소리와 함께 짝다리를 공중에 들자 여인은 황급히 “알았어요. 사면 되잖아요.”라며 급히 돈을 꺼내주고는 봉지를 들고 도망치듯 걸어갔다. “쳇, 지가 누구 덕에 돈 모으고 사는데…” 영예군인은 이러며 또 다른 손님을 찾아 눈을 굴렸다. 최근 흔히 보는 시장의 짝다리패의 전횡이라 한다.
“쳇, 지가 누구 덕에 돈 모으고 사는데…”
놀라운 것은 이런 무도한 행동이 대낮에 버젓이 횡행해도 시장관리소나 담당 보안원까지 보고도 못본 척 지나쳐 간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른바 ‘고난의 행군’ 때에도 영예군인들의 시장행패가 도를 넘었다. 음식 매대에 가서 짝다리를 휘두르며 돈 없이 그냥 먹고 갔고 공업품 매대에서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억지를 부려 강탈하다시피 빼앗아 갔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다 장애를 입은 것에 쌓인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했던 것이다. 예컨대 내가 너희들을 지키는 군에서 이렇게 됐으니 이제 너희들이 날 ‘신주 모시 듯’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것이 발전해 지금은 그런 방법이 생계수단으로 완전히 자리매김 했다는 것이다.
영예군인이라면 응당 나라에서 살 수 있는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지금 형편에 국가에서도 그들에게 줄 것이 없어 그렇게라도 살라고 그냥 못 본 척 해둔 것이 이젠 직업이 돼 버렸다고 하는데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짝다리패의 전횡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조직깡패를 신통하게 빼다 닮았다는 것이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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