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배달 왔어요! 2016년 3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61
배달 왔어요!
밤 열시 쯤 신주 모시 듯 하는 박 씨 집 전화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박 씨는 아랫목에 옷도 벗지 못한 채 누워 곤한 잠에 빠져 들다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점심 때부터 저녁 늦게까지 음식주문 전화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박 씨다. 빨리 일어나 배달가라는 아내의 소리가 귀를 쟁쟁 울렸다. “에잇! 금방 잠 들었는데…” 박 씨는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도 얼른 일어나지 못했다. “아, 뭐해요. 만두 다 담았어요. 빨리 배달가요!” “알았어, 일어나는 중이야”
박 씨는 만두가 담긴 음식바구니를 들고 또 1.5km 남짓한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그가 달린 길을 종합하면 아마 40km 길은 쉽게 될 것이다. 휘청거리며 반쯤 달리던 그가 골목길에 들어서며 그만 돌부리에 걸려 후딱 넘어졌다. 저만큼 배달바구니가 나뒹굴고 언 땅에 찧은 무릎이 아파 골이 댕댕거렸다. 아파도 너무 아파 얼굴을 찡그리는데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긴, 자네 음식 배달하면서 뱃가죽이 펴지긴 했지”
“이것 봐. 아니,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배달인가. 엉?” 한 동네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가 어디 다녀오다가 그를 보고 다가와 부축했다. “남은 아파죽겠는데 웃어? 저리 비켜!” “흐흐, 그럼 어쩌라구. 요놈의 주둥이가 절로 웃는 걸… 어서 일어나. 근데 주문배달 음식 이렇게 버렸으니 자네 마누라 야단 또 어찌 받을까?” “그러게… 아픈 것보다 그게 더 야단이야.” “그러지 말고 배달 시간을 밤 열시 이후엔 안한다고 하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젠장, 그게 내 마음대로 돼? 집 마누라 돈 벌 구멍 생겼다고 밤낮 난린데.”
“하긴, 그러고 보면 자네 이 음식 배달하면서 뱃가죽이 쭉 펴지긴 했지.” “지금 누구 염장 지르나?”
아픔이 좀 멎었는지 박 씨는 앉은 채 다리를 쭉 펴며 긴 숨을 내쉰다. “몇 달 고생깨나 했는데 아직 자전거 한 대 마련할 돈 못 벌었나? 남들은 오토바이까지 타고 배달하는데 자네 몸은 무쇠라서 만날 두 다리로 뛰나?” “한 달만 더 버티라는데 이것 참, 힘들구만… 그 전에 이 몸 너덜너덜 다 찢겨 없어지고 말겠어. 아이고, 내 팔자야!” 박 씨는 주섬주섬 일어나 나동그라진 그릇들을 바구니에 주어 담고는 집으로 힘없는 발길을 돌렸다.
요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북한에서의 음식배달 현장 모습이다. 최근에 탈북한 A씨의 말을 들어보면 약 3년 전부터 북한 전 지역에서 이렇게 음식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식당도 사회주의제도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개인화되었는데 집집에 전화기가 놓인 2000년 초반부터 조금씩 진행되던 배달이 이젠 완전히 배달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2009년부터 개통된 핸드폰이 2012년에 들어서면서 저 북쪽 맨 끝인 함경북도 무산까지 활성화 되었고 그때부터 핸드폰을 이용한 배달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식배달뿐만이 아니다. 개인영업자들은 암시장 기름유통업자들한테 기름을 사들여 버스까지 운행한다. 그러자 강원도 원산에 사는 형이 함흥까지 가는 버스 운전기사에게 소화물이나 기타 여러 물건들을 전해줄 것을 돈을 주고 부탁하면 버스 기사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핸드폰으로 연락을 받은 동생은 버스 도착시간에 터미널에서 짐을 받아 가면 된다고 한다. 일종의 택배이다. 옛 시절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이채로운 풍경이다. 개인 장사나 식당 영업도 해당 시 인민위원회행정과에 등록하고 세금 내듯 수익의 일부를 바치기만 하면 나머지는 본인이 갖기에 위 사례처럼 가정집에서 아내가 음식을 만들고 남편이 배달하는 식의 가정 영업과 식당 영업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北 핸드폰 활성화 … 음식배달·택배 급속도로 퍼져
북한 정부에서는 이러한 생계활동 자체가 사회주의노선에 어긋나는 현상이어서 극력 반대하지만 식량을 예정대로 공급하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보고도 못 본 척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쩌다 쌀이 생겨 식량배급을 몇 kg씩 내주면 또 개인 영업 단속에 나서지만 이젠 하도 반복되는 현상이라 주민들은 그런 단속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집체 영도에 길들여지고 시책대로만 움직이려 하는 주민은 이제 북한 사회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 식량공급을 주민 통제의 주요 도구로 활용하던 시기는 이제 영영 지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영업으로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고 사는 오늘의 실정에서 북한도 이젠 나라의 문을 열고 능력껏 주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지명 / 망명작가펜(PEN)문학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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