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겨레말 | “왜 남쪽 타치를 안 쓰십니까?” 2016년 4월호
알쏭달쏭 겨레말
“왜 남쪽 타치를 안 쓰십니까?”
2009년 11월 28일.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날이다. 난 진작부터 외국에서 발매된 아이폰, 블랙베리 등의 스마트폰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출시일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터였다.
며칠 후 우리 사무실에서는 처음으로 최○○ 선생님이 일반 휴대전화를 버리고 최신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구매하였다. 난 그 소식을 듣고 당장 그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흰색의 충전기도 아름다웠다. 선생님은 내게 ‘이것도 되고요, 저것도 되고요’ 하면서 은근히 자랑질을 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보고 나니 더 갖고 싶었다. 그런데 휴대전화 요금으로 매달 2만원 정도를 내고 있는 내게 아이폰은 너무 고가였다. 할부금과 사용료를 포함하면 거의 6만원에 가까웠다. 현재의 내 월 휴대전화 요금보다 3배 가량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이 내 구매욕을 무자비하게 짓눌러 버렸다.
어느날 아침 끙끙거리며 애써 스마트폰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있는 내게 최 선생님이 메신저로 말을 건네 왔다. 난 컴퓨터를 이용하여 답을 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최 선생님이 서 있었다. 난 당연히 자기 자리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내게 말을 건네는 줄 알았다가 내 뒤에 서 있는 그 선생님을 보고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최 선생님 손에는 내가 애써 구매욕을 무의식 속에 가둬둔 스마트폰인 아이폰이 들려 있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이폰으로 메신저도 되요.” 염장을 보통 지른 것이 아니었고 그 자랑질은 내 무의식 속에 가둔 구매욕을 확 끄집어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주말에 전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내를 만나면 꼭 사달라고 졸라야겠다는 결심을 아주 굳건히 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난 작전을 수행했다.
“여보, 이불 좀 개.” “이불 개면 아이폰 사게 해줄 거야?”
“여보, 쓰레기 좀 버리고 와.” “쓰레기 버리고 오면 아이폰 사게 해 줄 거야?”
“여보, 청소기 좀 돌려주면 안 될까?” “청소기 돌리면 아이폰 사게 해줄 거야?”
“여보, 점심은 간단히 먹을까?” “점심 간단히 먹으면 아이폰 사게 해줄 거야?”
난 아침부터 아내를 종종 쫓아다니며 아내가 내게 하는 말에 토 달 듯이 무조건 끝말은 “아이폰 사게 해줄 거야?”라는 청유 비슷한 의문문으로 했다. 아침부터 내내 그러면서 쫓아다니며 아내를 성가시게 했더니 급기야 아내는 내게 천둥치는 것과 같은 큰 소리로 말했다. “사라. 사! 인간아!”
내 작전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소풍가는 아이마냥 설렘에 잠을 설쳤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나는 아내를 졸라 시내에 나가 그토록 갖고 싶던 아이폰을 샀다. 내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갖고 오면서 혹여나 떨어뜨리지 않을까 애지중지했고 충전할 때는 누가 발로 밟을까봐 구석 깊숙이 넣어두고 그 앞을 지키기까지 했다.
최근 소식을 들어보면 북에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말 평양에 갔을 때 북쪽 선생님들 중 일부는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다. ‘타치’는 북에서 스마트폰을 이르는 말로, 정식 명칭은 ‘지능형손전화기’이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는 ‘지능형손전화기’라는 말보다는 ‘타치’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스마트폰/타치’처럼 같은 대상을 달리 이르는 남과 북의 언어 차이 때문에 중국 대련에서 있던 회의에서 만난 북측 선생님이 아이폰을 들고 있던 내게 이렇게 물었다.
“완서 선생은 왜 타치를 남쪽 걸 안 쓰고 미국 걸 씁니까?”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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