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4월 1일

새로운 실험 ‘우리가 통일이다!’ | 독일통일이 던져 준 교육통합 교훈은? 2016년 4월호

새로운 실험 우리가 통일이다!’ 2

독일통일이 던져 준 교육통합 교훈은?

 

베를린 곳곳에서 독일통일 25주년을 기념하던 2015년 10월에 필자는 한·독 통일역사교육포럼에 참석하여 ‘남북한 교육통합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다.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남북한 교실이나 학교를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문제들을 준비하여야 한다. 교과서 개발, 전학이나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평가, 교사 양성, 교육청이나 교육부의 형태 등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예상할 수 있다. 독일의 학자들은 통일 이전에 교육통합을 준비하는 한국이 부럽다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는 이미 통일을 이루고 사회통합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독일이 부러웠다.

독일통일은 25년이 지난 역사적 사건인 반면에 남북통일은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다. 독일의 통일을 살펴보면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분단 이후 동서독 간의 교류를 통하여 통일 환경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철의 장벽으로 냉전을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은 동독의 대변인이었던 귄터 샤보브스키의 말실수로 인해서 11월 9일 저녁에 무너졌다. 그는 동독인들의 외국 여행 자유화에 대한 기자회견 발표장에서 “지체없이, 지금 즉시 베를린 장벽을 포함한 동독의 모든 국경을 통한 출국을 허가한다.”고 발표하였다.(사실은 발표 다음 날부터 여행 허가에 관한 출국 규제 완화를 발표했어야 했다). 이처럼 독일통일의 결정적 이유가 된 베를린 장벽은 우연히 무너졌고, 그 이듬해인 1990년 8월 31일에 독일통일조약이 체결되며 10월 3일에 동서독은 통일이 되었다.

1989년 1월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1월까지 동독이탈주민이 급증하였다. 그 동안 약 16만7천명이 동독을 이탈하고, 헝가리와 폴란드 등 주변국가를 통하여 서독으로의 망명을 요구하였다. 또한 1989년 9월부터 동독 주민들은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성당 앞에서 매주 월요시위를 벌이며 개혁을 요구하였고, 이는 동독 전체로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동독 수립 40주년 기념식이 있었던 1989년 10월에는 동독의 사회주의가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던 호네커 수상의 퇴진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바로 다음 달인 1989년 12월부터 동독 주민들은 ‘우리는 하나의 민족(Wir sind ein Volk)’이라는 구호를 통해 동서독 통일을 요구하게 되었다. 동독이탈주민의 증가, 동독 내에서의 변화 요구, 서독의 통일준비 역량,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우호적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통일은 가능하였다.

독일에 있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베를린 장벽 동쪽 1.3km 구간을 말한다. 독일이 통일된 1990년 세계 각국에서 온 화가들이 장벽에 그린 105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필자(왼쪽 에서 세 번째)가 지난 2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를 방문하여 남북 학생들이 함께 그린 ‘우리가 통일’이라는 제목의 대형 걸개그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독일에 있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베를린 장벽 동쪽 1.3km 구간을 말한다. 독일이 통일된 1990년 세계 각국에서 온 화가들이 장벽에 그린 105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필자(왼쪽에서 세 번째)가 지난 2월 이스트사이드갤러리를 방문하여 남북 학생들이 함께 그린 ‘우리가 통일’이라는 제목의 대형 걸개그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양성 속 통일성 추구 동독식 교육 장점도 융합해 교육효과 높여

북한이탈주민의 증가, 북한 내 장마당을 통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확산 등은 북한 내에서의 변화 요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일 이전 동독의 변화와 유사한 점들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통일준비 역량이 높아지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베를린 장벽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던 상황에서 무너졌던 것처럼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는 날이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하여 정치·경제·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준비도 필요하겠지만, 남북한 교육통합을 준비하고 통일교육을 통하여 한국의 통일준비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은 교육을 통한 사회통합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의 통합이 필요하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데, 구서독 11개주의 교육체제를 구동독 지역이었던 5개의 신연방주에 일방적으로 이식하기보다 구동독 지역에서의 교육적 장점을 서독의 체제와 잘 융합시킴으로써 교육적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났다. 둘째, 교육을 통해 사회·문화적 통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신연방주와 구연방주 사이에 존재하던 물리적인 장벽은 사라졌지만 동서독의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은 연방정부, 주정부, 학교별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교육통합에서의 시행착오를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교육 분야별로 체계적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통일 후 동독 교사에 대한 처우 문제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일 후 예상되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교육과정, 평가, 교사교육, 교육행정 등 단계적 통합 방안을 수립하여야 한다.

교육통합 시행착오 줄이기 위해 분야별 체계적 준비 나서야

2016년 2월에 필자는 통일교육 연구협력을 위하여 베를린을 다시 방문하였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개성공단 전면중단이 결정된 직후의 방문이어서 불과 몇 개월 전 베를린을 방문할 때와는 달리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지만 이번 방문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있었다. 통일학교 학생들이 함께 완성한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우리가 통일’이라는 제목의 걸개그림이다. 남북의 분단과 통일을 상징하기 위해서 두 개의 천을 이어서 붙였다. 미술 선생님인 북한이탈주민이 밑그림을 그렸으며, 남북 학생 46명이 모두 함께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림 속 커다란 나무에는 여러 개의 종이들이 붙어 있는데, 이는 통일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의 꿈을 적어서 붙인 것이다.

지난 10월 필자가 베를린을 방문할 당시 SNU 통일학교에서는 남북의 학생들이 미술 작품을 그리고 있었다. 통일학교 학생들의 꿈을 담은 ‘우리가 통일’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고 외쳤던 동독 주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생각났다.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곳에 우리 학생들의 그림을 걸쳐서 놓았다. 베를린 장벽을 예술전시장으로 변화시킨 베를린 이스트사이트갤러리에서 ‘우리가 통일’이라는 그림을 전시했다. 동독 주민들이 통일을 외쳤던 드레스덴 구시가지 광장에서도 그림 전시를 하며 통일학교와 통일교육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박성춘 / 서울대 통일교육연구센터장(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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