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4월 1일

특집 | “나진-하산 프로젝트 좌초 신동방정책 재정비 불가피” 2016년 4월호

특집 | 초강력 북한 옥죄기 돌입 핵심 포인트는?

·러접경 현장분위기

나진하산 프로젝트 좌초 신동방정책 재정비 불가피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시작된 국제사회 대북제재 국면 중 러시아에서 나타난 가장 큰 화두는 역시 한국 정부의 ‘나진-하산 프로젝트’ 잠정보류 선언이었다. 러시아 현지 각계각층 도처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 정부의 강경한 대북제재에 대해선 ‘정치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에 공감은 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가며 남·북·러 3국 간 추진해 온 협력사업이 가시권을 앞두고 좌초 위기를 맞은 상황에 대해선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입장이 대세다.

지난 3월 8일 정부가 발표한 독자 대북제재안에 따라 사실상 중단 수순을 밟게 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해 러시아 현지 언론들이 높은 관심 속에 분석 보도를 이어갔다. ⓒ연합

지난 3월 8일 정부가 발표한 독자 대북제재안에 따라 사실상 중단 수순을 밟게 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대해 러시아 현지 언론들이 높은 관심 속에 분석 보도를 이어갔다. ⓒ연합

한국의 프로젝트 중단선언, 긴장국면 장기화 영향 끼칠 것

러시아 입장에선 이미 3차례의 시범운송까지 마치고 한·러 사업자 간 본계약 직전에 북한의 핵실험 도발이란 쉽사리 예측 못한 돌발변수로 결국 사단이 난 꼴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극동 러시아 연해주의 하산 지역에서 북한의 나진항까지 시베리아산 석탄을 철도로 운송한 뒤 다시 뱃편으로 옮겨 실어 한국항으로 운송하는 일명 남·북·러 복합물류사업으로서 국민적 공감대를 갖고 추진하던 사업이었다. 러시아와 협력 강화로 북한의 개방을 적극 유도하며 통일경제 기반을 조성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유라시아 대륙 진출이란 국가적 명운을 걸고 핵심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던 프로젝트였다.

우선 러시아 정부는 한국 정부가 나진-하산 프로젝트 중단을 선언하자 충격과 실망이 교차하며 허탈해 하는 분위기다. 자국의 신동방정책에 참여하여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정부 관료층은 추진 동력을 잃어버리자 거의 무장해제되는 기류마저 흐른다. 러시아 정부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약 3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왔다. 10여 년에 걸쳐 나진-하산 철도 개통과 북한 나진항 인프라까지 구축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자기돈’만 쓰던 사업에서 한국과 합작하여 이제 막 투자금 회수에 들어가려 하던 찰나에 돌연 중단이라니 러시아 정부로선 그동안 들였던 시간과 돈뿐만 아니라 아시아 끌어안기의 가장 핵심 사업에 제동이 걸리며 당황하는 분위기다.

러시아 현지의 반응은 우선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간 네트워크 연결이라는 막중한 국가적 과제가 큰 위기에 놓여있다.”며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재정비가 불가피하다.”는 강경파들의 의견이 주요 반응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프로젝트 중단 선언은 결국 남북 간 긴장국면의 장기화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부정과 원망이 섞여있는 논평을 내는 정치계 리더층이 대다수로 보인다. 또한 “이 같은 위협요소들은 러시아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새로운 판을 짜는 데 반영될 것”이라며 다소 직설적이고 격앙된 탄성도 정부 관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다른 한편에서는 다소 직설적인 논평보다는 “한국 정부와 공동 관심사를 모색하는 협의를 계속해야 한다.”며 “외교적으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는 온건층 인사도 있다. 또한 “당초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관련 프로그램에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북한에 직접 자금유입 가능성이 높은 사업에 대해서만 제재 방침을 정했는데 추후에는 그럴 징후가 있는 모든 사업에 대해 전면금지를 선언하는 양상으로 전환했다.”며 “한국 정부의 이 같은 강경노선은 앞으로 북한과 경제협력 프로젝트 최소화에 방점을 둔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편 나진-하산 프로젝트 참여 기업들은 경제적 손실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다. 결국 철도편으로 북한 나진항을 경유하여 한국에 석탄을 운송하던 화주 즉, 러시아 석탄수출 업체들은 “사업 중단으로 인해 직간접적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며 사업 참여를 권했던 정부를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선제적으로 대북투자 사업을 추진했던 러시아 기업들도 앞으로 방향성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내부적 혼란을 겪는 분위기다. 연간 5백만t까지 나진 터미널을 경유해 물동량을 끌어올려보겠다는 원대한 사업계획을 가졌던 러시아 석탄수출 업체들 사이에선 “지난 수년간 정부 정책에 따라 사업에 참여했던 기업들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고작 사업 중단이었다.”라는 자조와 푸념석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애초부터 경제성을 바탕을 둔 사업이 아니었다.”며 “러시아 극동항을 통해 얼마든지 한국에 석탄을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항으로 완전히 수출이 금지된 것처럼 떠드는 여론에 별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는 목소리도 있다.

북한 개방 가속화로 상호교류 확대 기회였는데

학계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시 프로젝트 재개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며 “한국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남·북·러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북한의 개방을 가속화하여 향후 다른 사업으로까지 상호교류 확대의 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참으로 안타깝다.”는 반응과 함께 “프로젝트가 경제성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애초부터 남·북·러의 정치외교적 관계 강화를 위한 기획형으로 추진된 사업이었다.”며 “결국 당사국 중 하나인 북한이 도발하며 이 같은 긴장 국면을 만들어놨으니 어쩔 수 없다.”는 자조적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되었던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돌발변수로 인해 좌초된 지금, 경제협력 비전의 교집합을 상실한 한·러관계를 제대로 정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신뢰에 기반한 공감대 형성 토대 위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대안적 성격으로 한·러 간 경제적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경협사업을 만들어 내는 데 노력과 의지를 모으는 것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유일한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전명수 / 본지 러시아 특파원



댓글 0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