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극동개발 박차 시점에 대북제재 국면, 러시아는 곤혹스럽다 2016년 4월호
특집 | 초강력 북한 옥죄기 돌입 … 핵심 포인트는?
극동개발 박차 시점에 대북제재 국면, 러시아는 곤혹스럽다

지난 3월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표결에 앞서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 대사(왼쪽)와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이에 대한 유엔 차원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시각은 복잡하다. 그 복잡성은 러시아가 보여준 반응의 강도와 속도에서 드러난다. 시기적으로 세 개의 국면을 통해 러시아의 속내를 읽어볼 수 있다.
첫 번째 국면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 러시아 언론이 보여준 반응이다. 러시아는 1월 7일이 그리스도 정교의 성탄절이기 때문에 이 날을 전후해 일주일 이상 긴 휴가철을 맞는다. 따라서 북핵실험 직후 활발한 논평이나 반응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본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러시아 정부는 물론 식자층과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두 가지 원인이 추가돼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러시아가 현재 북한의 핵개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고, 2015년 하반기부터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함으로써 군사·외교적으로 중동 정세에 매몰되어 있다.
또 하나는 러시아가 북한의 핵개발을 자국에 결정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지만 북핵 문제가 생긴 근본 원인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개발은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라는 점, 오히려 이를 빌미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강화되고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이 가속화되면 이것이 러시아에게는 더 큰 재앙이라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견해도 대체로 이러한 틀 속에 있다. 4차 북핵실험 전에 발표된 것이기는 하지만 2015년 12월 30일 승인된 러시아의 ‘신국가안보전략’ 문서에는 북핵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보다는 아태 지역에서 MD체제에 대한 우려가 이전 문서에서보다 더욱 강해졌다. 아울러 ‘색채혁명(Colour revolution)’을 위협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서방(특히 미국)의 의도에 따라 특정 국가에서 정권 붕괴가 초래되는 시나리오를 러시아는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에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의 대응이 어떨 것인지를 시사해 준다.
극동개발 최대과제 … 대북제재안 채택 직전까지 편익 계산
두 번째 국면은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완성되어 최종 채택을 앞둔 시점에서 러시아가 보여준 돌발 행동이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두고 러시아가 북한을 감싸면서 미국을 애먹이려는 일종의 ‘몽니’라고 보았다. 하지만 대북제재에 얽힌 러시아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그것은 푸틴 정부가 국정 최대과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는 러시아 동부 극동지역 개발과 관련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논의가 한창이던 1월 26일, 갈루시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북한과의 무역량을 10억 달러까지 확대할 계획이며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계속할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나, 러시아 측이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예외조항을 요구한 조치가 러시아의 곤혹스런 입장을 잘 보여준다. 예외조항은 북한 나진항을 통한 외국산 석탄 운송의 허용, 북한 민항기의 북한 밖 급유 허가, 조선광업무역개발회사(KOMID)의 러시아 주재 대표에 대한 제재 제외 등 3개인데 북한과의 경협, 특히 극동개발과 관련된 사안들이다.
세 번째 국면은 제재안 타결 이후 현재 러시아가 보여주는 신중한 반응이다.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국제적 제재 자체에는 공조 의지를 표명하면서도 강력한 대북제재가 자국에 미칠 편익 계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나진-하산 프로젝트 중단에 대한 공식 반응도 일단 섣부른 판단을 자제하면서 추이를 지켜본다는 것이다. 푸틴 집권 이래 러시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견지해 온 남북한 균형 정책에 대한 조율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향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대응 전망은 어떨까? 첫째,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는 한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식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푸틴은 소련 붕괴 직후 북한이나 쿠바와의 동맹 관계 단절로 세계 경영을 위한 전략적 자산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북제재의 한 축을 중국이 주도하는 데 대한 불만으로 북·러관계의 밀착 국면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현실적이다.
둘째, 동북아에서 존재감이 옅은 러시아는 중국과의 공조를 통해 한반도에서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이 강화되지 않도록 대응해 나갈 것이다. 그 최대 시험대는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이며 기본적으로 사드에 반대하는 입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같다. 또 러시아는 남한이 빠진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협력 파트너로 중국을 생각하고 있다.
셋째,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대북 독자제재에 대한 반대, 비핵화와 평화협상 과정의 동시 진행을 강조함으로써 한·미의 독주를 막고 북한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내외 현안 산적 … 한반도 문제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그러나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러시아가 직면한 경제난이 러시아의 외교력을 제한하고 있다.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가 유효하고 국제유가의 하락이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 러시아는 산적한 국내 문제 해결과 외교 현안 수습에 바쁘다. 따라서 러시아는 한반도 관련 정세 변화에 신중함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북한의 도발과 한·미동맹의 강화 속에 고심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재자의 이미지를 연출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번 북핵 사태를 통해 우리는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의 단면을 재확인했다. 통일 과정에서 또 통일 이후에 러시아가 우리의 조력자가 될지 아니면 몽니를 부리며 피곤하게 갈지는 지금 우리가 러시아를 어떻게 설득하고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러 양국 간 신뢰의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수교 25주년을 맞는 지난해, 한국과 러시아 측 모두에서 양국 관계의 위기론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은 정상 간에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하고 한·러 경협 활성화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며 러시아 안에서 우리의 통일외교를 지지해 줄 인적 네트워크를 확대해야 한다. 이 모든 협력의 기저에 신뢰가 깔려있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현승수 /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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