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12년제 의무교육 전환, 왜 그리 서둘렀을까? 2016년 7월호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44
12년제 의무교육 전환, 왜 그리 서둘렀을까?
올해부터 북한은 정식으로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9월 최고인민회의는 종전 11년제 의무교육을 12년제로 개정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학교교육은 유치원 높은반 1년, 소학교 5년, 중학교 6년(초급 3년, 고급 3년)의 의무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1972년부터 실시되어 온 11년제 의무교육을 40여 년 만에 변경하는 데는 김정은 정권의 속사정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북한의 학제변경은 혁명이자 도박으로 여겨진다.
혁명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단순히 학제를 1년 더 연장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종전의 11년제 의무교육 ‘사회주의 교육제도’를 변경하였다는 데 방점이 있다. 선대수령이 교육부문에 남긴 업적이자 유산인 11년제 교육제도를 변경하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북한 교육부문에 오랫동안 종사한 필자에게는 일대 혁명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도박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학제변경이 교사, 학교 건물, 교육 기자재 부족 등의 문제를 유발할 것이 뻔한데,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에서는 그 부담이 고스란히 학부형들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며, 이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소학교가 1년 늘어남에 따라 소학교에서 중학교 진학자의 1년 공백이 발생한다. 이는 군사적으로도 입대자들의 공백이 생길 것이고 그 공백이 국방력 강화에 차질을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대학 입학과정에서의 1년 공백, 노동력 공급에서의 1년 공백 등 국가적으로 감수해야 할 손해들이 너무 많다.
교육은 화학실험과 달라 오랜 기간이 지나야 성과가 나타나고 교육의 정당성은 그 성과에 기초해 비로소 입증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북한 경제가 허리를 편 것도 아니고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되는 시국에 왜 하필 학제 변화인가? 필자는 그 답을 ‘김정은 시대’에서 찾고자 한다. 유학을 통해 외국교육을 들여다 본 김정은은 본인의 시대를 특징지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의 의중을 제대로 타진한 교육계 혁신파들과 함께 만들어낸 창작물의 소산이라고 여겨진다.
김정은, 학제변경으로 노린 것은?
사실 북한에서 학제변경 문제가 논의된 것은 2005년 경부터였다. 기존 소학교 4년제를 5년제로 하는 방안이었다. 북한의 특성상 항간에 소문이 나돌 때는 이미 내부적으로 상당한 토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교사들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 리 없다’며 학제변경을 짐작은 했으나, 소문의 범위가 교육부문에 국한된 데다 그 소문의 진위 여부나 출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번 학제변경은 단순한 연장에 그치는 것 이상의 어필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김정은이 중등교육을 초급과 고급으로 나눔으로써 자신의 시대에 첫 교육혁명을 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초급과 고급의 분할이 아니라 김일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위한 연출이다. 즉 1950년대 북한 교육제도를 그대로 가져와 ‘김정은-김일성’이라는 패키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김정은이 만든 학제는 해방 후 김일성 정권이 처음으로 만든 학제인 ‘인민학교-초급중학교-고급중학교’의 명명과 순서가 동일하다. 사회의 주 골간을 이루고 있는 1950~1960년대생들 사이에서 이번 학제변경이 ‘옛날에 하던 방법이다’라는 말이 돌도록 함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교육도 수령님 때처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해 무의식적으로 김일성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늘 즐기는 상징성의 효과다.
이제 초급과 고급중학교가 ‘중학교’ 틀에서 동거하게 되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름만 다를 뿐 이전의 중학교 6년제와 다를 바가 없다. 한 울타리 안에서 초급과 고급 학제를 동시에 운영한다면 사춘기 학생들의 교양 문제까지 해결하긴 힘들다. 우리의 중학생, 고등학생의 신체적, 심적 발달과정에 크게 차이가 있듯이 북한 학생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소하게 치부된 것들이 학생들의 세계관 형성과 교양, 더 나아가 인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북한 교육 당국은 이번 학제개편 때 왜 이 점을 고려하지 못했을까? 지역 내 중학교 위치, 학교 개수, 학생 수 등을 조금만 더 종합적으로 연구했더라면 약간은 어설프더라도 초급, 고급 학제가 따로 운영되는 학교 공간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형식보다 내실을 다지는 일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