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北 | 철조망의 시간은 찰나(刹那)다! 2016년 7월호
박계리의 스케치北 55
철조망의 시간은 찰나(刹那)다!
미술가 김아타가 찍은 풍경사진이다. 고즈넉한 풍경이 낭만적이고 목가적이다. 그런데 불쑥 “철조망을 발견하였나요?”라고 물으면, 그 때서야 다시 화면을 올려다보고 “아… DMZ 풍경인가?”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진의 화면은 철조망이 먼저 눈에 띄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감상자는 이 사진을 여느 풍경화와 같은 사진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철조망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평화로운 풍경이라고 무심코 생각했던 이미지들은 전쟁과 관련된 기억들로 파열되기 시작한다.
미술가 김아타가 DMZ에 갔을 때 그는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지역에 지뢰가 곳곳에 묻혀 있고, 중무장한 초소가 바로 인접해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파열의 지점에 미술가는 사진기를 설치했다.
사진의 가장 주된 작업이 눈앞의 대상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진가들은 그 대상의 지나간 역사를 포착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눈으로 보지 못한 역사를 만나고, 재해석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걸까? 미술가 김아타의 작품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우리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들여다 보자.
DMZ에 선 김아타, 남은 것과 사라지는 것을 담다
김아타는 DMZ에 사진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8시간 동안 장노출을 유지했다. 장노출 기법으로 촬영을 하면, 움직이는 것들은 움직이는 속도에 비례하여 화면에서 사라져 간다. 날아가는 새는 빨리 사라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군인들은 천천히 사라진다. 나무나 건물처럼 정지된 물체는 명확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허상처럼 사라져버리고, 움직이던 물체가 남기고 떠난 에너지의 흔적들만 화면 위에 응축되어 있다.
이 DMZ 풍경들은 그의 <온 에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김아타는 이렇게 말한다. “‘온 에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온 에어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록하는 사진의 속성과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지는’ 자연의 법칙을 서로 대비시킨 것이다.”
미술가 김아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필자는 금강산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금강산 바위 앞에서 섰을 때 이 바위를 그렸던 조선시대 화가인 정선과 김홍도가 생각났다. 이들의 작품이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떠올려졌다. 이와 함께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씨들을 보면서 김일성과 김정일도 함께 떠올렸다. 그 때서야 깨달았다. 이 바위는 조선시대 정선, 김홍도, 그 이후의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 만나고 있다는 것을. 바위의 시간 개념에서 보면, 나란 사람은 찰나를 살다가는 미물이겠구나. 나의 시간 개념이 아니라 바위의 시간 개념으로 사진을 찍으면, 김아타의 그림처럼 우리들의 삶은 찰나에 사라지고 그 에너지와 시간의 궤적이 겹겹이 쌓인 역사만이 뚜렷하게 화면에 남겠구나 싶었다.
김아타는 무엇은 남고 무엇은 사라지는가 묻는다. “‘장미의 열반’이라는 작업을 할 때였다. 17일 동안 장미가 말라가는 과정을 모두 촬영한 후에 마른 장미를 태우는 순간, 상상하지 못한 감미로운 향기를 맡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장미에서는 나지 않는 강렬한 향기였다. 상식적인 선에서 멈추었던 장미에 관한 사유를 다시 깨어나게 했다. 표피만 보고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김아타의 DMZ 풍경를 다시 보자. 평온해 보이는 표피 안에는 겹겹이 쌓인 역사적 사건들이 사라짐의 에너지로 응축되어 있다. 이 사라짐은 ‘분단의 극복’이라는 상처의 치유를 은유한다. 비무장지대를 뒤덮고 있는 자연의 시선으로 보자면,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의 역사도 찰나의 순간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린 벌써 ‘분단’을 불가항력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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