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어요 | “인간다운 삶의 조건 마련이 가장 중요하죠” 2016년 7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 수잔네 루터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국제협력원장
“인간다운 삶의 조건 마련이 가장 중요하죠”
Q. 반갑습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A. 저는 2013년 12월에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의 국제협력원장에 취임하였습니다. 한스자이델재단에서는 1998년부터 근무했고요. 처음에는 재단의 정치 및 현대사 아카데미에서 일을 했고 2004년부터 2013년까지는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했습니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1995~1996년에 독일연방의회에서 보좌관으로 일을 했고요. 1995~1998년에는 한스자이델재단 장학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어요. 제가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에 한반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역학구도에서 대표적인 긴장 지역이었기 때문에 제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도 이쪽으로 삼았습니다. 이 밖에도 한국은 저와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에요. 저희 아버지께서 1991~2006년 한국에서 해외근무를 하셨거든요. 이로 인해 서울은 저희 부모님에게는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죠.
Q. 한스자이델재단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스자이델재단이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추구해 온 가치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요?
A. 한스자이델재단은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발전을 위한 봉사’라는 슬로건에 맞게 활동하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세계화가 더욱 긴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대인 오늘날에는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이 국가 혹은 대륙들 간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어요. 따라서 이러한 전 세계적인 도전 과제들에 우리는 모두 함께 대처해야만 할 필요가 있죠.
저희 한스자이델재단 국제협력원은 활동을 시작한 지난 40년 전부터 이러한 과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주체로 활동하고 있어요. 현재 전 세계 60개가 넘는 국가에서 현지 파트너들과 협력하여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시장경제의 강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희 재단은 시민사회 및 주민 참여를 강화하며 법치국가의 원칙과 바람직한 거버넌스의 진작을 꾀하고 있죠. 좀 더 구체적인 활동 내용에 관해 말씀 드리자면, 정치·경제 및 행정 부문에서 의사결정론자들을 위한 자문 활동을 하고 있고요. 여성 지원과 환경의식 고취, 사회 및 인종 상의 긴장관계 극복 등이 저희가 수행하고 있는 과제들에 포함되는 내용입니다.
Q. 독일이 통일된 지 26년이 지났습니다. 원장님께서는 통일을 향한 독일의 경험이 지금의 한국에 여전히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점을 들 수 있을까요?
A. 다가올 한국의 통일을 위한 상황들은 과거 분단 독일의 그것과는 제한적으로만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방식은 평화적인 통일이어야 하고, 실제로 향후에 한반도 통일이 도래하게 되면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들과 관련하여 독일의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 유사한 점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모든 분야에서 훨씬 더 한국의 통일이 극단적인 양상을 띨 것으로 보여요. 한국의 저희 파트너들은 독일이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 개의 사회 및 경제 체제를 어떻게 통합하였는지에 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북한 간의 격차는 더욱 명백하며, 이는 단지 경제력의 차이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죠.
남북한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지금도 여전히 휴전상태입니다. 두 체제 간의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최근에도 다시 크게 격화된 바 있잖아요. 향후 언젠가는 극복해야만 하는 양측의 격차는 분명히 커졌는데, 이는 단지 비용 측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지식에도 해당되는 것이거든요.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 독일과 비교했을 때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요. 중요한 것은,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입니다. 최근의 정치적인 사건들로 인해 남북 간의 조심스러운 접근 시도가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게 안타까운 점이죠.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통일이라는 주제가 젊은 세대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는 것인데, 이러한 작업이 활력 있게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저는 지난 5월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던 통일 박람회 행사장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Q.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교류 및 협력을 통한 단계적 신뢰구축 과정이 있었고 또한 그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는 아시다시피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원장님께서는 남북한이 교류 및 협력의 노력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A. 제가 최근에 남북한을 방문한 시기는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으며, 그에 따라 과거 분단 시절의 동서독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답변을 드리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우선 제 자신이 과거의 ‘이산가족’ 출신인데, 어린 시절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분단 상황이었지만 헤어진 가족 간에 우편이나 전화 그리고 서독 사람들의 동독 방문 및 동독 은퇴자들의 서독 방문을 통해 기본적으로 서로 소통과 만남이 가능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일부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현재 남북한 간에는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갈등의 정도는 훨씬 심하고요. 남북한 분단은 평범한 국민들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대상이란 말이죠. 지금 처해 있는 완전한 단절 정책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즉, 강화된 안보 상황의 결과로 볼 수 있겠죠. 그런데 모든 관계 및 접촉의 일관된 중단은 서로 간의 대결구도를 심화시키는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로 인해 정치안보 상의 위기 국면이 초래될 가능성도 커요. 독일의 경우에는 점진적이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통해 경제 접촉이 생겨남으로써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되었으며, 이것은 적대감이나 부정적인 선전 행위가 심화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의 출발 상황은 한국의 경우와 같이 극단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점이 될 수 있겠죠.
Q. 최근 평양에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방문하셨던 곳의 현장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A. 저는 ‘고난의 행군’ 직후로 매우 어려운 시기였던 1997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이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침울한 것이었기에 거의 20년이 지난 이번 방문을 통해 평양과 거주민들에게서 훨씬 더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에요.
평양에서 받은 첫 인상은 도시가 잘 정비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건물들이 많았으며, 부분적으로는 매우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존재했습니다. 건물에 대한 정비도 이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짧은 기간 동안 볼 수 있는 것들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없었다는 점은 이해해 주시고요. 제가 들렀던 가게들은 아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물건들이 있었죠. 특히 북한에서 생산한 식료품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누가 이 물건들을 구매하는지는 보지 못했고 주민들의 실제 일상생활 역시 접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최근 국제사회 대북제재의 직접적인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웠죠. 다만 거리의 교통 운영체제에서나 조금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평양 거리의 민간 차량은 오히려 조금 증가하였다고 들었습니다만 18시 이후에는 민간 차량의 통행이 금지된다고 했습니다. 그 원인이 연료 부족 때문인지는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겠지만 그렇게 추정할 뿐이죠.
Q. 향후 원장님의 비전과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현재 전 유럽을 비롯하여 특히 독일이 직면하고 있는 커다란 과제인 난민 문제를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평화와 자유가 보장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고 있어요. 우리 한스자이델재단은 전 세계에서 수행하고 있는 활동을 통해 이러한 환경이 모든 지역에서 이루어 질 수 있게 하는 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많은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이러한 목표가 매우 원대한 것임을 잘 알지만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가치 있는 행동임을 확신해요.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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