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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분쟁 25시 | ‘아프리카의 뿔’ 지역 주도권을 확보하라! … 에티오피아 분쟁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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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뿔지역 주도권을 확보하라! … 에티오피아 분쟁

2012년 3월 15일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소말리아 바이도아의 한 마을을 순찰하고 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반군을 양성하고 있어 국경을 진격해 에리트레아의 군기지 3개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에리트레아 외교부는 "에티오피아와 더 이상 전쟁을 치룰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

2012년 3월 15일 에티오피아 군인들이 소말리아 바이도아의 한 마을을 순찰하고 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반군을 양성하고 있어 국경을 진격해 에리트레아의 군기지 3개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에리트레아 외교부는 “에티오피아와 더 이상 전쟁을 치룰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시사한 바 있다. ⓒ연합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지부티와 소말리아, 수단, 케냐, 에리트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대륙 내 나이지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2015년 기준 8,524만명)가 많은 나라이다. 국토 면적은 112만6,282㎢로 한반도의 약 5배에 해당한다. 종교는 기독교인 에티오피아 정교 45%, 이슬람교 35%, 기타 토착종교 20%로 구성되어 있다. 약 90개 종족으로 구성되어 ‘민족 박물관’이라는 별칭을 듣기도 한다. 에티오피아는 대부분의 분쟁 다발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국민적 정체성의 미형성, 각 부족 공동체 간의 이질성 심화 등이 나타나고 있다. 끝없이 계속되는 동아프리카의 가뭄과 이로 인한 기근, 그리고 30년 이상 지속되었던 내전의 후유증은 에티오피아를 국민소득 475달러, 세계 최악의 빈곤국가로 만들었다.

양극체제 대리전? 중강도 분쟁 지속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에리트레아 및 오가덴, 영국령 소말리아 등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50년 유엔의 결정에 따라 에리트레아가 연방 내의 자치지역 형태로 에티오피아와 통합되었다. 1955년 하일레 셀라시에(1892~1975) 황제 시기, 영국 관할 하에 있던 오가덴 지역이 에티오피아에 공식 반환되었다. 이들 두 지역의 통합은 에티오피아에 새로운 갈등을 안겨주었다. 에리트레아 이슬람교도의 봉기와 오가덴 소말리족들의 영토회복운동이다. 1956년에는 반서방 노선을 표방하면서 아랍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에리트레아 해방운동단체도 등장했다. 또한 이 지역을 둘러싼 에티오피아 정부의 가축세 부과 등에 반발한 오가덴 소말리족들의 반정부 투쟁이 고조되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에티오피아 정부에 대한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오가덴은 에티오피아 동부 하라르게 주와 발레 주의 남동부에 있는 건조지대, 소말리아·에티오피아 국경과 에티오피아 동부 고지대 사이의 불모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소말리아어를 쓰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조상은 전에 이곳에 살았던 오로모족(갈라족)을 몰아내고, 16세기에 이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에티오피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와 영국의 도움을 받아 오가덴을 회복했다. 오가덴에서의 국경 분쟁과 내란은 1960년 소말리아가 독립한 뒤 재개되었다. 1977년 오가덴 지역에서 소말리족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무력봉기가 일어나자 소말리아는 대규모의 병력을 보내 그들을 지원했다.

이에 에티오피아는 소련제 무기와 2만명에 달하는 쿠바군의 지원을 받아 소말리아군을 격퇴했다. 소련의 지원으로 에티오피아 정부는 반군들이 장악했던 지역을 회복했다. 소말리아는 오가덴 분쟁에서 에티오피아를 지원한 소련과 국교를 단절하고 그들이 군사기지로 사용하던 베르베라에서 소련 해군을 추방했다. 이후 소말리아는 미국의 원조를 받았고 1980년에는 미국과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국내 분쟁이 전형적인 양극체제 하의 대리전으로 변화한 모습이다. 2016년 들어서도 오가덴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강도 3의 중강도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등 해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 북부에 위치한 지역이다. 에티오피아로 합병 직후부터 에리트레아 주민들은 분리·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을 결성하고, 무력투쟁을 전개했다. 1987년부터는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이 에리트레아에 대한 실질적 통제권을 확보했다. 반정부 운동의 핵심 세력인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은 EPLF와 공동으로 1991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해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EPRDF의 지도자인 멜레스 제나위는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약속했고, 1993년 5월 24일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분리·독립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와 1998년 5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으로 수만 명이 사망하고, 60여 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00년 12월 평화협정으로 현재는 휴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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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여 종족 자치주의, ‘민족 박물관분쟁의 해결책 될까?

에티오피아는 현재 30여 년 이상 지속되었던 내전의 상처를 봉합하는 시기를 겪고 있다. 2012년에 선출된 물라투 대통령과 하일레마리임 데살렌 총리는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내부 종족 통합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오가덴 지역, 에리트레아와 겪고 있는 국경분쟁은 에티오피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서부의 국경지역인 감벨라 지역에서 종족 간의 갈등으로 수백 명이 사망하는 유혈충돌 사태가 발생했고,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국경위원회는 국경 문제를 양국 간의 합의사항으로 남겨둔 채 활동을 중단했다. 이와 함께 완충지대에 머물며 분쟁지역을 관리하던 유엔 평화유지군(PKO)의 철수가 시작되면서 양국 간 갈등이 재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해 인접한 소말리아 내전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렇듯 에티오피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 중 케냐를 제외한 모든 나라와 전쟁을 치렀을 정도로 주변국과 불안한 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국경분쟁에 따른 에리트레아와 전면전 재개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렌 총리는 국내 종족 문제와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종족 자치주의 정책의 정착은 또 다른 정치실험으로 주목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종족 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에 새로운 분쟁 해결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조상현 / 군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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