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 北 | 영화 같은 현실인가, 현실 같은 영화인가 2016년 9월호
박계리의 스케치 北
영화 같은 현실인가, 현실 같은 영화인가

정연두, <태극기 휘날리며 – B 카메라> 2013, diptych photography, 106×144 cm,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제공
정연두의 작품 <태극기 휘날리며>는 2개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격렬한 전투 장면만 있었다면 전쟁의 참혹함을 공감하고 있었을 테지만, 바로 옆의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우리의 정서적 공감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사진을 보는 객관적 거리를 다시 갖게 된다. 옆의 사진에서 보이는 영화 세트장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조금 전 봤던 장면이 현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장면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2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스펙터클한 전쟁영화를 선보였다고 평가받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낙동강 전투 장면과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현장을 담고 있다. 촬영 세트장에는 조악한 판넬 배경과 흩뿌려지는 모래 파편, 한국 전쟁 당시의 군복을 착용한 배우들이 서있다. 실감나는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들어진 세트장의 배우들 뒤로, 실제 분단 최전선인 철원 DMZ 철책선과 그 곳을 지키는 현역 경계병이 초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전 보았던 그 전투 장면은, 이 세트장의 모습을 여러 다른 각도에서 촬영해 만들어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두 사진을 보고 있으면 ‘영화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영화’의 장면이 동시에 우리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지금 전 세계는 ‘영화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영화’의 마력에 흔들리는 일상을 경험하고 있는 듯하다. 증강현실 게임 속 가상의 캐릭터 ‘포켓몬’을 잡기 위해 현실의 골목길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일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안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포켓몬을 잡기 위해 현실 세계에서 교통사고를 낸 장면이 전 세계 뉴스에 보도되는 시대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왔던 모습이 현실이 되어있는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혼재된 영화 같은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 어지럽다.
사드 배치 문제가 연일 뉴스에 도배되고 있다. 적군이 핵을 미사일에 장착해서 쏘면 미사일로 공격해서 핵을 방어해낸다는, 공상과학 영화에서만 가능했던 이야기들이 뉴스를 통해 진지하게 논의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 뉴스를 켜면,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은 전문가들이 나와 영화에서만 본 것 같은 현실이 일어난다는 가정을 세우고, 그 가정에 가정을 보태 이야기하고 있다. 가정에 가정을 더하다 보면 과연 현실에서 일어날까 싶은 ‘상상의 나라’ 이야기를 하는 듯한데, 현실에서는 진짜 사드가 배치된다고 하고 반대 시위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지독한 현실인 것이다.

정연두, <태극기 휘날리며 – B 카메라> 2013, diptych photography, 106x179cm,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제공
정연두, 보이는 현실과 실제의 간극을 묻다
현실과 같은 영화는 이미 증강현실의 세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가상과 현실과의 관계는 우리가 본 무수한 영화를 상상해보면 앞으로 어디까지 나아갈지 그 끝을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 상상력의 끝이 과연 존재할까? 그것이 문화의 힘일 수도 있고 과학의 힘일 수도 있지만 증강현실로 인해 일어나는 교통사고를 바라보면서 그 상상력의 지독한 현실이 어느 틈에 섬뜩해지고 있다.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의 혼재가 분단 현실과 오버랩 되면서 경쟁적으로 증폭될 때, 그 가속도를 우리는 제어할 수 있을까?
그의 사진 작품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낙동강 전투를 떠올리게 하지만 실은 그 장면이 아니다. 바로 옆의 사진도 세트장을 찍은 사진들의 조합인 듯하지만, 실은 그 세트장을 찍은 사진이 아니다. 작가는 연출사진을 통해 그럴듯하게 보이는 현실과 실제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도 묻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인지 실제인지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막상 이 사진의 배경이 되고 있는 DMZ에 도착하면, 우리는 DMZ의 고요함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가 이 격렬한 전쟁의 세트장을 설치하러 DMZ에 왔을 때 마주한 그 고요함. 그 역설. 이 패러독스 앞에서 작가처럼 우리도 잊고 있었던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현실 같은 영화’와 가상현실을 가정하고 벌어지는 ‘영화 같은 현실’ 간 끝없는 경쟁이 결국 우리를 패러독스에 빠트릴 뿐이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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