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스토리 | 합법적인 밀수? 2016년 9월호
윗동네 리얼스토리
합법적인 밀수?
현재 북·중 간 밀수 현황에 관해 최근 입국한 A씨를 만나 물었다. 물론 필자도 북한 전 지역에서 공공연히 성행하는 밀수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다. 밀수는 국경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북한은 밀수거래 없이 살아남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북한도 법이 있는 나라인데 주민들이 밀수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임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극단적인 비판이라 오해 받기 십상이다. ‘밀수가 어느 정도로 성행하고 있는가’라는 것은 사실 너무 뻔한 질문이다.
“요즘도 북한에서 외화벌이단위가 성행합니까?”라는 물음에 A씨는 웃으며 “그거 없이 북한이 삽니까?”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산과 바다에서 나는 모든 생산물이 외화벌이단위를 통해 중국이나 일본으로 밀수출되는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산에서 나는 산채, 약초, 버섯, 원목 등 수출 품목에는 제한이 없다.
문어발처럼 펼쳐진 북한식 외화벌이단위
필자가 북한에 살 때도 주민들 사이에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쌀 몇 kg 얻기 위해 생산물을 수거하러 산이나 바다로 나가는 5호 관리소나 군중외화수매상점 사람들에게 “어디 가냐?”고 물으면 “중국 되놈들 낙지(오징어) 먹고 싶다고 해서…”라거나 “되놈들 밥상에 고사리 반찬 올려주려고!”라고 대답했다.
일본에 특산물을 갖다 바치다 못해 이젠 중국에까지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다 뒤져서 상품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뭐든 캐내어 갖다 바쳤다. 북한 사람들이라고 제 나라에서 나는 각종 특산물을 먹을 줄 몰라서 남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건 아니다.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이 고기가 아니고 쌀이니 쌀을 얻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대일’로 마주서서 흥정을 거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새로 조직된 각종 외화벌이단위를 통해서만 거래가 이루어지다보니 직접 생산하는 주민들의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업 형식으로 이루어진 외화벌이단위 조직 규모를 보면 군부는 물론 국가권력 기관과 기업들까지 자기소속 외화벌이업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총정치국외화벌이, 국가보위부외화벌이, 보안성외화벌이, 사회과학원외화벌이, 정무원외화벌이, 무력부외화벌이, 호위국외화벌이 등이 있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국가기관, 기업, 단체, 학교까지 모두 열거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는 왜 이렇게 외화벌이단위가 성행하는가? 다름 아닌 노동당이 내준 외화할당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기업이나 국가기관들에 금 몇 kg씩 내라는 식으로 품목을 지정해 줬다면, 지금은 직접 현금으로 액수를 정해준다고 한다. 만약 액수를 맞추지 못하면 능력 없는 지휘일꾼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니, 간부들에겐 외화과제 달성이 목숨과도 같다. 그래서 자기 관할에 외화벌이단위를 조직하는데 이 단위의 기지장으로 임명되는 사람은 전과자든 뭐든 능력을 위주로 발탁된다. 능력이란 곧 돈이다. 현 북한 실태를 살펴보면 암암리에 중국과 거래해 막대한 외화를 긁어모은 신흥 부자(돈주)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의 주도 아래 외화벌이가 성행한다. 겉보기에는 합법적 단위로 보이지만 거래과정을 보면 모두 밀수를 위주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이 외화벌이단위다.
밀수를 둘러싼 당과 돈주의 상부상조?
그럼 북한 서해 주둔 포사령부의 외화벌이를 위한 밀수 실태를 짚어보자. 뇌물을 주고 기지장으로 발탁된 돈주들은 포사령부 산하 수산기지 운영권을 따내 중국과의 밀수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밀수를 없애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내려지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이다. 서해에서 꽃게철이 시작되면 포사령부의 외화벌이 수산기지가 활발하게 밀수에 돌입하는데 여기서 나는 이윤은 막대하다. 꽃게잡이에 나선 수많은 배들을 상대로 1kg당 100위안 정도를 주고 해상에서 직접 사들인다. 그것을 다시 중국 배들에 150위안 이상을 받고 넘겨준다. 앉은 자리에서 횡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돈주들은 그렇게 벌어들인 외화 중 약속된 금액을 사령부에 넘겨주고 나머지를 챙긴다.
또한 군인들의 식생활 개선을 위한 김정은의 방침에 의해 사령부가 직접 수산물을 거둬들이는 경우도 있다. A씨의 증언에 의하면 연간 50여 t의 수산물을 소속 외화벌이단위들이 포사령부에 내야 하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김정은의 방침이 밀수 행위에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 군인들을 먹여 살리는 일에 직접 나선 외화벌이단위 활동에 감히 누가 제동을 걸까. 돈주들이 공공연히 벌이는 밀수 행위를 군 상층부에서 직접 보호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밀수는 집권당인 노동당의 방침, 즉 김정은의 방침이 만들어 내는 합법적 행위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게 밀수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가 노동당 금고로 직행하는 한 북한에서의 밀수 행위는 앞으로도 어떤 방법으로든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지명 / 국제펜(PEN)망명북한작가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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