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6년 9월 1일

만나고 싶었어요 | “이제는 북한 정권도 시장 없이 못살아” 2016년 9월호

만나고 싶었어요 |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

이제는 북한 정권도 시장 없이 못살아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

 

Q. 지난 4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북한의 올해 식량이 약 70t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요?

A. 한국 기준으로 보면 북한이 1년에 필요한 곡물의 양은 대략 550만t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양을 모두 사람이 먹는 게 아니에요. 가축이 먹는 사료도 포함되어 있고, 종자로 필요한 양도 있죠. 일부는 가공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요. 더하여 수확 이후에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손실이 발생하는, 흔히 ‘수확 후 손실’ 이라고 하는데요. 이것이 전체 곡물 생산량의 15% 정도 됩니다. 대략 70만t 정도 되는데 완전히 없어지는 양이죠. 쉽게 말해 쥐가 파먹는다든지 혹은 다른 쪽으로 회수해야 된다든지 말이죠. 어쨌든 이런 모든 요소를 다 더하여 약 550만t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이고요. 실제로 사람이 먹는 것은 300만t이 채 안됩니다. 그러니 550만t이라고 하는 양은 1년에 북한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양, 즉 풍족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 정도는 있어야 지탱할 수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FAO의 분석은 북한이 1년에 두 번, 6월 말경과 가을에 수확을 하는데 이를 합쳐도 480만t 정도 될 것이고 따라서 70만t 가까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Q. 북한 입장에서는 식량 부족분을 어떻게든 보충해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확보해 나가는지요?

A.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외국에서 수입을 하든지, 아니면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방식이죠. 현재 북한의 연간 식량 수입 능력이 30만t 가까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부족분 70만t 중에서 30만t을 제외하면 40만t은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거든요. 유엔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부족분을 지원하는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추락했기 때문에 과거보다 지원이 굉장히 많이 줄었어요. 최근에는 국제사회의 지원 양을 다 합쳐도 5만t을 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과거에는 중국이 무상으로 20만t씩 지원하기도 했고, 러시아도 일정 부분 지원에 나섰지만 지금은 상황이 매우 안 좋아졌죠. 즉 국제사회의 지원량 5만t을 계산에 넣어도 35만t 정도는 고스란히 부족한 셈이고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양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통계입니다.

Q. 수요공급법칙으로 보면 식량이 부족하면 식량가격이 올라가야 하잖아요. 식량이라면 주로 쌀이 되겠지만, 최근 소식을 들어봤을 때 북한에서 쌀가격이 폭등했다는 이야기는 없어요.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시작된 직후 잠깐 변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재는 상당한 안정세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A.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지만 식량도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 나죠. 따라서 공급이 부족하면 자연히 가격이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식량 수요는 일정하다고 보기 때문이죠. 올해의 경우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줄었으니 그 자체만으로 보면 식량가격이 뛰어야 맞죠.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현재 북한 시장의 곡물 가격을 보면 굉장히 안정적입니다. 물론 계절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되거든요. 보통 쌀의 경우 평양기준으로 1kg 당 북한돈 5천 원이 넘는 수준입니다. 현재 북한에서 거래되는 1달러가 8천 원 정도 되니까 대략 60센트 남짓 된다는 말인데요. 사실 북한 장마당에서 쌀가격이 안정적이라는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 지속된 것이거든요. 김정은 정권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계속 안정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도대체 김정은 정권 들어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식량가격이 안정됐는지 의문스러울 수 있는데, 김정은이 자신의 아버지처럼 오랜 기간 준비를 하지 못하고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정권을 인수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지지 기반이 약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 권력 기반을 단단히 구축하려면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김정은이 등장하자마자 가장 강조했던 것 역시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야기였거든요. 민생 문제라면 결국 의식주 문제죠. 그래서 농업 부문과 경공업 부문 두 가지를 굉장히 강조하면서 더욱 많은 예산을 배분하는 행태를 이어오고 있는데요. 농업 부문만 보면, 최근에는 일반 주민들이 농자재를 스스로 조달하는 경향도 있지만 여전히 당국 차원에서 공급해주는 부분이 큽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비료, 특히 화학비료인데요. 비료의 공급량에 따라 생산량이 확연한 차이를 보여요. 올해 북한은 연초부터 화학비료 수입에 굉장히 많은 돈을 썼어요. 이미 유엔의 제재가 시작되기 전에 올해 쓸 화학비료의 양을 가능한 만큼 전부 수입해놓은 상태입니다. 화학비료의 경우 물론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김정은 정권이 지난 몇 년간 농업 부문에 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투입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 몇 년간의 북한 식량가격 안정세를 설명하는 데 살펴봐야 할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일 수 있겠죠.

Q. 물론 당국 차원에서 농업 부문에 대해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예산을 투입한 것이 최근 북한의 식량가격 안정세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겠지만, 역시 과거보다 규모와 기능면에서 활성화된 장마당, 즉 시장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의견이 많지 않습니까?

A. 물론입니다. 지금 북한의 시장은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고요. 북·중 접경지대에서 활동하는 주로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북한 상인들이 많게는 하루에 쌀 6천t을 수입할 능력은 된다고 해요. 최근 북한의 장마당과 중국의 시장 가격 차이, 그리고 북한으로 쌀을 수입해 들여오는 데 들어가는 비용 등을 다 따지면 마진이 약 20%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이 정도 이윤이라면 상인 입장에서는 밀수를 하든 다른 어떤 방식을 쓰든 수입이 나기 때문에 북한 내에 유통시킬만한 충분한 매력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죠. 공식적인 통계에 잡히지는 않습니다만, 식량 생산량이 저조함에도 장마당의 식량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면의 움직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량가격의 안정세는 결국 식량안보 수준에서 논의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식량안보를 구성하는 것은 식량 생산량과 식량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 그리고 식량가격의 안정성이거든요. 식량가격이 들쭉날쭉하면 식량안보가 상당히 훼손되는 것이죠. 따라서 식량안보 측면에서 보면 시장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산량이 적다면 수입을 해서라도 시장에 유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니 안정적인 식량이 공급될 수 있는 터전이 되거든요.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과거보다 북한의 식량안보 수준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 북한에서 2008~2009년의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 못지않게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외부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에 부분적으로 아사(餓死)자가 발생했는데 그 지역이 모두 장마당이 없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시장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례라 할 수 있죠.

Q. 북한에서 장마당의 기능이 활성화되는 양상을 들여다보면 이제는 주민은 물론이고 정권 차원에서도 암묵적으로 시장, 그리고 그 속의 자본을 활용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A. 그렇죠. 이제 북한에서 시장은 주민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북한 정권을 위해서도 필요한 기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북한 정권은 시장을 통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거든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핸드폰을 팔고 있잖습니까. 굉장히 많은 수입을 취하고 있어요. 시장에 기대서 재정자금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직접적인 거래뿐만 아니라 시장을 통해서 세금 성격의 자금을 징수하고 있고요. 또한 시장을 통해서 자본가, 소위 ‘돈주’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필요로 하는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돈주를 투입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평양에 10만 호 주택을 건설한다면 북한 정권이 가진 자본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돈주를 시장에 불러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정책 목표를 달성하고 돈주에게는 적절한 수준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식입니다. 돈주로서는 정권이 추진하니 안심하고 투자를 하고 있고요. 시장을 둘러싼 일종의 권력과 자본 간의 커넥션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는 결국 정권의 자금줄에 큰 도움을 주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Q. 국제사회 대북제재 국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향후 북한의 농업 부문과 식량 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세요?

A. 앞서 말씀드렸듯 지금 화학비료는 북한이 제재 이전에 이미 충분히 수입해놓은 상황이고, 농자재도 비교적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아마도 올해는 북한의 작황 수준이 많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식량 사정 역시 이미 북한 전역에 장마당이 존재하는데다 인접국과의 가격 차이로 인해 상당한 마진을 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북한의 상인들은 밀수를 해서라도 시장에 식량을 공급해 가격 안정세를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석탄을 비롯한 공식적인 무역에서는 제재를 취하고 있지만 북한에 들어가는 식량은 민생과 연관되어 있어 안보리 2270호 결의안의 예외적 상황이라 보고 있거든요. 더구나 동북3성의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절묘하게 이용해 나가면서 우회해 나갈 가능성이 높고요. 북한 역시 이러한 측면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본다면 제재 국면이 향후 북한 농업 부문과 식량 사정에는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 않아요.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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