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러시아, 한반도 통일의 든든한 조력자로! 2016년 9월호
시론
러시아, 한반도 통일의 든든한 조력자로!
박근혜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9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제2차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극동 지역의 투자 유치 및 개발 활성화를 목적으로 지난해부터 매년 개최하는 동방경제포럼에는 한국, 일본, 중국 및 ASEAN 회원국 등 주요국 정부와 기업 인사들이 참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관계의 실질적 협력 증진 방안과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및 국제정세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러 협력동반자 관계가 획기적으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한·러 정상회담, 양국 간 실질적 협력 의제 집중해야
이번 한·러 정상회담이 북핵문제뿐만 아니라 한·러 관계의 실질적 발전이 가시화될 수 있는 포괄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대북제재 이행에 대한 과도한 논의는 회담의 실질적 성과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비핵화를 기본 입장으로 갖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을 평가하고 원칙적 제재 이행 요구를 하는 선에서 대처하는 동시에 북한과 연관되지 않는 한·러 간 실질적 협력 의제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수 있다.
경협 이슈와 관련해 현재 중단된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전략적 사업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단·중기적으로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큰 사업이다. 따라서 나선 지구 공단조성 사업은 컨테이너 화물이 훈춘, 남양 등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뿐만 아니라 만주횡단철도(TM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되는 다방향 물류망의 허브가 될 수 있는 보다 포괄적 사업으로 재탄생되어야 할 것이다.
양국 간 통상관계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한·러 교역 구조가 러시아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에너지의 천연자원 공급자의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이런 구조는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러시아가 한국에 대한 수출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이 점을 설명하고 창조경제 차원의 과학기술 협력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창조혁신 협력 분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사안은 소형원전 공동개발이다. 소형원전은 인구 2만 명 정도인 소도시에 적합한 것으로, 핵잠수함에 탑재한 기술을 활용하면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소형원전은 냉각수 대신 금속을 이용해 원자로를 식히기 때문에 바닷가가 아닌 육지 어느 곳에서나 건설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소형원전 수출 방식은 전력 수출의 새로운 모델로 기능할 수 있다.
한편 정상회담의 장소가 블라디보스토크임을 감안하면 선도개발지대 및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사업과 함께 관련 프로젝트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 극동 개발 계획 가운데 나제진스키와 미하일로프스키 선도개발지대를 포함하여 자루비노항 개발 사업, 극동 수산클러스터 사업, 연해주 농업 개발 등은 한국이 전략적으로 참여 의지를 밝힐 수 있는 분야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는 양국 간 논의 과정에서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 과제로 설정될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북핵·미사일 실험에 대해서는 유엔 차원의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대북제재 국면을 미국이 동북아 패권 전략에 이용할 것으로 판단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사드(THAAD) 배치 결정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지정학적 이익과 지경학적 편익을 고려하여 북한과 크지 않은 경제 관계를 다소 훼손시키더라도 국제 제재에 동참함으로써 지역 강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대신 미국의 세력 확장을 막는 전략을 동시에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대북제재의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일 뿐, 북한 정권의 붕괴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러시아 측에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핵으로 인한 안보 불안은 러시아 극동 개발과 한·러 경협에 치명적이라는 사실과 논리를 러시아에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북핵 등 안보 불안, 한·러 경협에 치명적임을 주지시켜야
더하여 한국은 북핵문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러시아가 소외의식을 갖지 않고 건설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가 극동 지역의 안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북한 문제의 당사자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러시아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하면서 한반도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 유라시아 또는 CIS 차원의 다자 지역협력체에 옵서버로 참여하면서 정상급, 장관급 등 고위급 차원의 접촉을 확대해 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 러시아와 실용적인 접근을 통해 유라시아의 교두보를 만드는 것은 꽉 막혀있는 북한에 대한 우회로를 확보함은 물론 통일로 나가는 길을 트는 것이며, 미국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완화하는 지름길을 찾아낼 방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과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을 통해 연해주에 교통과 물류, 에너지 교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이제 한국의 극동지역 진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숙명적 과제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정태익 / 한국외교협회 회장 (전 주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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