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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겨레말 | 심심풀이 낙화생? 2016년 10월호

알쏭달쏭 겨레말

심심풀이 낙화생?

나는 술을 못 마시지만, 회식이 있으면 2차, 3차까지는 따라 다닌다. 보통 2차나 3차에서는 가벼운 안주를 시키기 마련이다. 가벼운 안주는 대부분 오징어와 땅콩이다. 그러다 보니 2차나 3차에서는 1차에서 먹은 것만큼의 땅콩을 계속 먹게 된다. ‘안주발(?)’만 내세운다고 뭐라 할까봐 눈치를 봐가면서 먹기는 하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내가 그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버티기 위해서는 땅콩 먹기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1차에서 먹은 식사보다는 2차나 3차에서 먹은 땅콩으로 배가 부른 우가 더 많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하는 것을 혼자만 겪는다. 른 사람들은 숙취로 인해 술 냄새가 올라오지만 난 전날 먹은 땅콩으로 인해 온종일 땅콩 냄새가 올라오는 것이다. 동료들은 해장을 위해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가지만 난 땅콩 냄새 때문에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간다.

‘땅콩,’ 남과 북에 다 있는 말이다. 그리고 ‘땅콩’과 같은 말인 ‘낙화생(락화생)’도 남과 북의 사전에 모두 올라와 있는 말이다. 각각의 사전 풀이를 보면 왼쪽 표와 같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낙화생’의 풀이를 “땅콩으로 순화”라고 하고 있으며, 《조선말대사전》은 “⇒ 땅콩”으로 풀이를 돌리고 있다. 아울러 《조선말대사전》의 ‘땅콩’ 풀이에서 ‘락화생’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땅콩’을 쓸 것을 권장하고 있다. 즉 남과 북 모두 ‘낙화생(락화생)’의 다듬은 말로 ‘땅콩’을 두고 있다.

남측은 ‘땅콩’이 생명력을 얻어 널리 쓰이고 있고 ‘낙화생’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사어(死語)가 되었다. 우리에게 ‘땅콩’이 너무 친숙하여 북측도 우리와 같이 ‘낙화생’이 아닌 ‘땅콩’을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런데 북측의 문헌을 살펴보니 남과 달리 ‘락화생’이 사전에만 실린 말이 아니라 문학 작품 속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1993년 문학 작품 속에 ‘락화생’이 쓰이고 있는 이유를 몇 해 전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회의를 하던 도중 북측 선생님에게서 들었다.

북측에서도 ‘락화생’을 ‘땅콩’으로 다듬었으나 인민들이 ‘락화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공동회의 중에 간식으로 나온 북측 과자의 포장지 역시‘땅콩 과자’가 아닌 ‘락화생 과자’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맥줏집에서 ‘땅콩’을 안주로 시키면 각각 이렇게 주문하지 않을까 싶다

남 : 여기 안주로 ‘땅콩’ 좀 더 주세요.
북 : 여기 안주로 ‘락화생’ 좀 더 주세요.

《표준국어대사전》

♦ 땅콩
① 콩과의 한해살이풀. 줄기는 60cm 정도이고 잎은 깃모양 겹잎이며 열매는 협과(莢果)이다.
② “①”의 열매
♦ 낙화생(락화생)
‘땅콩’으로 순화

 《조선말대사전》

♦ 땅콩
밭에 심어 가꾸는 기름작물의
한가지 또는 그 열매
[X락화생]
♦ 낙화생(락화생)⇒ 땅콩

북측용례

보자기 안에서는 찰떡, 흰쌀떡, 지짐, 엿,{ 락화생}, 곶감, 별의별 것이 다 나왔다 . 《로정법 : 기다리는 어머니(1993 )》
자개박이 검은 네모상에는 꼬챙이에 꿴 꿩의 내장이며 노란 메뚜기 볶음, 누릿누릿 닦아놓은 {락화생}과 순대, 찢어놓은 북어 따위들이 올라있었다.
《강영희 : 쌍바위(1993)》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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