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내친구 |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요!” 2016년 10월호
북에서 온 내친구 20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요!”
가을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였는데 하루아침에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추워졌다. 인생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날씨다.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2학기가 시작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모처럼 학교에 간 나를 화단의 맨드라미가 반겨주었다.
방학 동안 쉬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분주하게 보냈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대부분 방학 전에 넣은 대학 수시 전형에 합격했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을 조금 덜어낸 것 같았다. 생사의 고비를 넘어 이 땅에 온 저들에게 ‘대학 합격’ 소식이 준 기쁜 정도가 얼마만큼인지 알기에 내 일처럼 기뻤다. 인사를 마친 아이들은 한결 여유로운 얼굴로 수업에 임했다.
1학기에는 학생들의 입시 압박이 심해서 책 읽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가 없었다. “여러분은 이제야말로 인문학의 기초를 다져야 할 때입니다. 일주일에 한 권씩이라도 꼭 책을 읽도록 하고, 정해진 순서에 의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수업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평소 시사에 관심이 많던 은아였다. “작가님은 북한 고위직 탈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얼마 전에 주영국 북한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귀순하지 않았습니까?”
은아의 눈빛을 보니 수업 전에 꼭 이 문제를 토론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그동안 수업 시간에 쟁점이 되는 문제를 놓고 자유롭게 토론하던 터라, PPT 자료를 틀다 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자유롭게 의논해 보는 것도 좋겠네요.”
북에서 살다 온 아이들의 반응이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늘 적극적으로 발표를 잘하는 철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그만큼 북한 정권이 무너져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겠지요. 북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못 살겠다고 내려오는 걸 보면 뻔해요.” 철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끔찍해요. 북에 사는 태 공사 친척들이 당할 일을 생각하면요….” 북에 가족이 있는 민영이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아픔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보이지 않는 차별은 남한 사회가 더 심한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에도 아무 말을 않던 민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다. “작가님. 전 그동안 여기에 와서 절실히 느낀 게 있어요. 북한에서 대우받으며 살던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도 특별대우를 받는 걸 보면 은근히 화가 났어요. 이번에 태 공사를 보면서 더욱 그랬어요.” 민수의 말에 많은 학생들이 공감했다.
민수가 다시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님. 저는 반드시 성공하고 싶어요!” 심오하면서도 결의에 찬 목소리였다. 눈빛도 평소와는 달리 강렬한 그 무엇이 출렁였다.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니?” 민수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물었다. “사람들이 고위 탈북자들을 대우해 주는 걸 보면서 든 생각이에요. 솔직히 남한에 오면 평등한 대접을 받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쩌면 보이지 않는 차별이 더 심한 것 같아요. 내가 성공해야 남들도 나를 인정해 준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거죠. 저는 정말 성공해서 대접받는 사람이 될 거예요.”
민수의 단호한 목소리에 모든 아이가 숙연해졌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민수의 말에 동조를 해 줘야 할지, 부정을 해야 할지 잠시 머리가 복잡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서라든가, 누군가를 밟고 내가 우뚝 서기 위해서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건 아닌 듯싶어. 나는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에 성공의 의미를 뒀으면 좋겠다.” 뻔한 이야기지만, 진심이었다.
열띤 토론을 벌이다 보니, 1교시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렸다. 수업 진도는 나가지 못했지만,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성공’이라는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민수가 말한 성공의 의미를 알기에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고 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전하면 아이들은 어떤 반응일까?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나요?
A. 남북하나재단이 실시한 2015년 북한이탈주민 실태조사에 의하면 ‘남한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63%, ‘불만족한다.’ 비율은 3.4%로 조사되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46.5%), 북한생활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43.3%) 만족한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응답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적응 현상들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일반국민들에 비해 경제활동 참가율이 낮고, 생계급여 수급과 같은 사회안전망 의존도가 매우 높아요.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의 학력 및 경력 단절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건강 상태가 안정적 정착에 방해가 된다고 보고 있어요. 또한 이질적인 남북한의 직장 문화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도 주된 요인으로 꼽을 수 있어요. 북한이탈주민 정착관련 주요 지표는 전체 국민의 평균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어요. 정부와 정착지원기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북한이탈주민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정착 지원을 위해 노력해야 해요.
전지현 / 화성시청 북한이탈주민 담당주무관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