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불쌍한 당나귀 2016년 10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87
불쌍한 당나귀
남한에서 여러 동물원에 가봤다. 동물의 종류와 개체 수가 북한에 비하면 정말 다양하다. 그 많은 동물을 사육하고 관리하자면 품도 많이 들고 사료도 많이 들 텐데 그것만 봐도 경제력을 엿볼 수 있었다. 동물들은 대개 한가로워 보였다. 배고프지 않아 그런지 까불지도 않고 관람객들을 별로 경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관람객들이 동물에게 성가시게 장난치는 경우가 적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북한 동물원에선 관람객들이 동물을 그냥 두지 않고 건드린다. 관리원이 보지 않으면 꼬챙이로 찌르거나 먹을 것으로 골려주기 일수다. 아이들은 말할 것 없고 어른들도 극성이다. 거기다 동물들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먹을 궁리만 한다. 구경하는 입장에선 동물이 배가 고파야 재미가 있을 텐데 남한 동물원에선 배가 부르니 녀석들이 얻어먹으려고 재롱 피울 궁리를 안 한다. 원숭이도 그렇고 곰도 그렇다. 준비된 쇼를 보여줄 때 말고는 무덤덤하게 있는 녀석들뿐이라 사실 북한 동물원보다 재미는 덜하다.
“수령님께서 기린을 보내주셨습니다”
남한 동물원과 북한 동물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체제 선전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에선 “이 기린은 아프리카의 한 국가수반이 수령님을 흠모하여 바친 선물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지방 인민들의 문화생활을 배려하시려 중앙동물원에 있던 이 기린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은정을 마음깊이 새기고 관람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식이다.
내가 북한에서 살던 도시에도 동물원이 있었다. 동물원에는 호랑이, 사자, 곰 같은 맹수들과 독수리, 매, 부엉이, 사슴 노루, 원숭이 등 여러 종류의 동물이 있었다. 어렸을 때 이 동물원에 자주 가서 놀았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시간에 쫓겨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동물원 실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몰랐다.
어쩌다 한 번 어린 딸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갔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종전에 받던 입장료를 받지 않아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동물원을 돌아보고 나니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야생동물원이 아니라 가축우리로 변한 꼴이었다. 독수리가 있던 칸에 닭이 있고 매가 있던 곳에 오리가 있었다. 사자가 있던 곳에는 집돼지가 있고, 사슴이 있던 곳에는 염소가 있었다. 그 많던 원숭이도 두 마리 밖에 없었다.
약간의 야생동물이 남아 있었지만 사료 부담이 크지 않은 종류뿐이었다. 육식동물은 썩은 고기를 먹는 여우밖에 없었다. 제일 인기가 있는 사자, 호랑이 같은 동물들은 먹여 살릴 수 없어 평양에서 데려가고 없었다. 그런 실정이니 동물원을 찾는 사람이 드물어 입장료 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도 굶어죽는 판국에 동물원이 제대로 운영될 리 없었다.
그러다가 동물원에 당나귀라는 짐승이 새로 왔다는 소문이 들렸다. 김정일이 지금 아이들이 당나귀를 보지 못했다고 배려해 관상용으로 한 마리 보냈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 하지만 당나귀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동물원에서 당나귀를 운송수단으로 부려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구경시키라고 보낸 당나귀가 관람용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니 기막힌 노릇이었다.
어느 날 거리에서 그 당나귀를 보았다. 뜨거운 여름 햇볕에 숨을 씩씩 거리며 목재를 싣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당나귀를 몰아가는 동물원 직원은 빨리 걷지 않는다고 욕설하며 회초리로 때리기까지 했다. 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평양에 있었으면 그 고생 하지 않아도 될 걸 무슨 죄를 지어서 지방에 쫓겨나 이 고생이냐.”며 현실을 비꼬았다.
이 사실을 도 당 책임비서가 알게 됐다. 감히 김정일이 배려해준 당나귀를 부려먹다니, 당장에 회의를 열고 동물원 원장을 불러들였다. 그런데 동물원 원장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트럭을 해결해 달라고 맞섰다. 동물원 자동차가 모두 폐차되어 운송수단이 없는데 일을 어떻게 하라는 건가, 자동차를 주지 않는 상부의 책임이라고 했다. 도 당 책임비서가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구경시키라는 당나귀를 부려먹으면 되나. 그 당나귀는 관람용”이라고 타일렀다.
일도 하고 구경거리도 되는 일석이조 당나귀?
하지만 대꾸는 계속됐다. “어차피 동물원에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구경할 만한 동물이 있어야 오지 육식동물도 여우밖에 없습니다. 여우용으로 조금 나오는 고기마저 직원들이 훔쳐 먹는지 여우가 영양실조로 걷지 못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당나귀를 이동관람용으로 내보냅니다. 거리에 나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볼게 아닙니까. 그러니 관람 문제도 해결되고, 동물원에 필요한 물자도 나르고, 이런 게 일석이조라는 건데.” “뭐 이동관람?” 도 당 책임비서는 할 말을 잃고 회의 참석자들은 “동물원 원장이 걸작이네.”하며 폭소를 터뜨렸다.
당나귀는 여전히 짐을 끌었고 나중에는 앓다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말이지 북한은 사람 살기 힘든 곳이기도 하지만 동물에게도 다를 바 없다. 지금도 동물원이란 말이 나오면 그 불쌍한 당나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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