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 핵무장론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2016년 10월호
특집 | 북한 핵실험 폭주 … 한국의 전략은?
한국 핵무장론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북한의 핵도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남한에서도 핵위협에 맞서기 위해 핵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해 500km를 날려 보내며 성공하자 핵잠수함 보유론이 제기됐고, 1월에 이어 9월 핵실험을 이어가자 핵무기 보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은 집권 여당에서 시작돼 확장되면서 ‘금기시된 의제’에서 ‘논의 가능한 의제’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맞서 ‘공포의 균형’을 위한 핵무장론을 주장했던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내표는 9월 9일 제5차 핵실험 직후인 9월 12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 긴급간담회에서 “우리도 이제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장을 포함한 모든 억제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경태 기획재정위원장은 개인 성명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배치와 같은 방어적인 조치만으로 북핵을 막아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전술핵 배치를 포함해 이전과는 다른 강력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핵무장 주장에 야당도 동참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의 청와대 회동에 앞서 전술핵의 주한미군 재배치 검토까지 거론하며 구체적인 논의를 요구했다. 김진표 의원도 대정부질문에서 “표준화·규격화된 핵탄두 실험은 한반도 전략 지형에서 새로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의 등장을 의미한다.”며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했다.
핵잠수함 보유 주장은 SLBM을 탑재한 채 남한의 후방을 침투할 수 있는 북한 잠수함을 막을 대안으로 제기된다. 북한이 8월 24일 SLBM 발사에 성공하자 새누리당 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은 성명을 통해 “북한이 3천t급 잠수함을 개발해 3발 이상의 SLBM을 실전배치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장기 매복, 첨단 탐지, 공격력을 갖춘 핵잠수함을 즉각 배치해 북한의 SLBM 도발을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급기야 보수단체들은 핵무장을 촉구하는 단체까지 만들었다. 애국단체총협의회와 나라사랑기독인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생존을 위한 핵무장 국민연대’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상임대표는 정기승 전 대법관, 권영해 전 국방부 장관 등이 맡는다. 이들은 취지문에서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우리는 빈손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심각한 국가안보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는 즉시 자위적 핵무장을 결단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의 핵무장, 현실화 될 수 있는가?
과연 대한민국의 핵무장은 가능할까. 우선 핵무장론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원칙적으로 한국은 원자력 기술의 무기화를 금지하고 있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국이어서 북한처럼 NPT 탈퇴 같은 ‘불량행위’를 하지 않고는 핵무장이 불가능하다. 특히 NPT 탈퇴는 농축우라늄 구입 차단 등으로 이어져 국내 원전의 가동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동맹국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것이라는 감상적 주장도 내놓는다. 하지만 한국의 NPT 탈퇴는 곧 북한과 같은 불량국가가 되겠다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 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2004년 발생한 남핵문제는 핵무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냉혹한 대응의 실제를 보여준다. 남핵사건은 1982년과 2000년 한국의 원자력 연구기관이 플루토늄 추출과 우라늄 농축 실험을 비밀리에 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단을 보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문제를 논의했던 일이다.
당시 정부는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안보리 회부를 막을 수 있었다. ‘4대 핵원칙’은 ▲ 핵무기 개발 및 보유 의사 없음 ▲ 핵투명성 유지 및 국제협력 강화 ▲ 핵 비확산 국제규범 준수 등을 통한 투명성 확보 ▲ 핵의 평화적 이용 범위 확대 등이다. 앞으로 절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국제사회의 압박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 때 문제가 됐던 연구는 1982년 4~5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옛 원자력연구소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Ⅲ’에서 시행된 ‘핵연료에 대한 화학적 특성 분석 실험’이다. 이 실험에서 문제의 플루토늄 수 ㎎이 추출됐다. 두 번째 실험은 2000년 1~2월 대전 원자력연구소에서 소수의 과학자들이 레이저 연구 장치를 이용해 우라늄을 분리한 실험이다. 이처럼 극소량의 핵물질 추출만이 있었을 뿐이지만 국제사회는 한국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고 했다. 한국은 핵무장을 추구하는 국가라는 의혹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한국은 올해 상반기 수출액이 2,418억 달러로 세계 7위 국가다. 내수시장이 작은 상황에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수출을 하지 않으면 경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현재 한국의 입장이다. 제재를 감수한다는 것은 곧 북한처럼 최빈국으로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밝히는 셈이다. 특히 핵무장은 북한처럼 어둠 속에서 살겠다는 의지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원전 발전량은 지난해 기준 16만 4,771GWh이며 전체 발전량의 31.5%를 차지한다. 이때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원료인 농축된 핵연료봉은 전량 수입해 사용한다.
지난 2015년 4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의 길이 열리기는 했다. 양국은 고위급위원회에서의 협의를 통해 양국이 합의하면 20% 미만까지 저농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저농축우라늄은 핵연료봉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한·미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국이 승인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독자 핵무장은 원자력발전소 원료 공급 중단으로 이어져 국내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제사회 용인 어려운데다 독자 핵무장 추진하더라도…
여기에다 한·미동맹이라는 한국의 핵심 외교관계까지 고려하면 더욱 비현실적이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핵도미노 현상을 우려하고 있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은 상상하기 어렵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9월 18일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담에서 “한국 및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이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며 “모든 범주의 핵 및 재래식 방어 역량에 기반한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공약이 포함된다.”고 확인했다.
미국이 핵우산, 미사일방어체계,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 억제력을 제공하는 만큼 독자적 핵무장의 꿈을 버리라는 셈이다. 전술핵의 재배치 요구에 대해서도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성 김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9월 13일 기자회견에서 “(한·미)양국 정상 뿐 아니라 양국 군사전문가들은 전술핵 재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며 “확장억제력 제공에 대한 우리의 흔들림 없는 공약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일축하는 상황에서 독자 핵무장을 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데는 또 다른 걸림돌이 있다. 바로 전시작전통제권이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전력의 운용 권리는 현재 미군에 있다. 핵무기를 독자적으로 가진다고 하더라도 미군의 승인과 허락 없이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2014년 10월 제46차 안보협의회(SCM)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재연기하기로 합의했다. 한·미가 2015년 반환에 합의했던 것을 우리 측의 요구로 연기한 것이다. 이처럼 핵무기를 가진들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여러 제재와 압박을 헤쳐가며 핵보유에 목을 맬 실효성이 없다.
또 한국의 핵무장은 북한의 핵개발 야욕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드가 되기 어렵다. 북한이 미국의 핵선제공격 가능성을 거론하며 핵개발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핵무장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황교안 국무총리는 9월 2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북핵에 대응한 전술핵 재배치론에 대해 “한반도 비핵화가 기본적 입장으로, 우리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해 핵우산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건조론도 한국의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 해군 출신의 잠수함 전문가인 브라이언 클라크 전략예산평가센터(CSBA)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반도 주변 해역은 넓지 않아서 핵추진 잠수함이 부적합하다.”며 “현대식 디젤 잠수함은 속도가 평균 시속 37km로 우수한데다 자체 소음이 적어 한국에 전략적 가치가 더 높다.”고 말했다. 미국 해군 전문가로 해군 필독서로 꼽히는 「세계의 전투함대」를 펴낸 에릭 워타임 씨는 “대양이 아닌 연안 방어는 소음이 적고 은밀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디젤 잠수함이 효과적”이라며 “핵추진 잠수함은 가격이 매우 비싸고 관리도 힘들어 한국에 효용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핵추진 잠수함 역시 원자력의 무기화를 금지하는 NPT체제를 위반하는 것이므로 핵무기 보유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북한 핵개발, 규탄 받아 마땅하지만 똑같이 대응해서야
북한의 핵개발은 비난받아야 하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더 강한 제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같은 행동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것은 유치할 뿐이다. 또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각종 레짐 속에 들어가 건실하게 활동하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모범국가다. 그런데 이 레짐을 스스로 깨겠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불량국가가 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북한이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높아지고, 레짐 밖으로 벗어났을 때 불편함이 커진다면 스스로 핵 의존증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남한이 북한처럼 되려고 하지 말고 북한이 남한처럼 되도록 만들 방안을 고민할 때다.
장용훈 / <연합뉴스> 북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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