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리의 스케치 北 | 시간의 씨날줄에 둘린 벙커 그 역설적 아름다움 2016년 11월호
박계리의 스케치 北 59
시간의 씨날줄에 둘린 벙커 그 역설적 아름다움
최원준의 <빛의 분수>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생활 속 가까이에 있는 군사시설물을 대상으로 한 영상 작업이다. 여의도 한가운데에 있는 지하 벙커나 나지막한 뒷산 언덕 위의 벙커처럼 예측하지 못한 곳, 그러나 일상 속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는 벙커와 비트, 방호벽이 그의 화면 속에서 새롭게 인식된다.
미니멀리즘 조각처럼 규칙적으로 늘어선 직육면체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폭격에 의해 부서져 도로를 차단시킬 그날만을 기다리며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장기간 휴식 중인 이런 시설물은 언제 있을지 모를 전쟁을 기다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영상 속 주인공은 이러한 군사시설물을 따라 움직이며 읊조리고 있다.
“산을 올라 벙커로 들어간다. 차가운 콘크리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하루종일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일. 나는 가끔은 나와 벙커를 동일시한다. 어쩌면 벙커가 자신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는 응시. 그것은 감시다. 벙커 안의 세 개의 창은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각각의 역할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과거를 응시한다. 반복되는 과거를 응시하는 일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밝은 빛은 저물고 어둠만이 남았다.”
이 미디어아트 작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 속 공간인 여의도, 은평구 뉴타운 일대, 경기도 파주 등에 버려진 듯 존재하는 지하 벙커와 방어선 및 방호벽을 돌아다닌다. 평온한 여의도 버스정류장 밑 지하에서 발견된 지하 벙커에 들어간 주인공은 이 군사시설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상상했던 공간의 쓰임을 반추해 본다. 무장공비가 출현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그 모습을.
최원준, 낡아 흩어지는 군사시설물에 주목하다
그녀는 지하 벙커 속에 들어가 우리를 쳐다보기도 하고, 방어선에 올라 이 공간을 디자인했던 사람들을 기억해내기도 한다. 적이 침입하면 폭발, 파괴되어 그들의 침투를 제어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건축물. 이들이 가진 방어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는 파괴하기 위해 건설한다는 역설적 임무를 갖고 있음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시멘트로 강고히 서 있게 한다.
영상 속 주인공의 추측처럼 이 구조물의 디자이너는 직육면체 시멘트 덩어리의 연속적 나열을 보며 단순한 구조의 반복으로 물성을 강조하는 세련된 미니멀리즘 작품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에 흔들리면 안 되는 차갑고 냉정한 군사시설물과, 인간의 손맛을 제거해 낸 미니멀리즘의 조합은 꽤 그럴 듯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구조물 옆에는 잡초가 자라났고, 이 공간의 이미지는 차가운 시멘트 덩어리의 체온과는 다르게 변화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콘크리트 덩어리는 폭파되지 않았고 점점 더 낡고 닳아 흙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무덤으로 변해갔다. 군사시설물은 특성상 자신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서 위장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세월의 힘은 이들을 자연 속에 동화시켰고, 긴장된 응시의 힘은 거세되었다. 동물을 포획해내는 거미줄의 아름다움처럼, 시간의 씨줄과 날줄로 둘러쳐진 벙커는 역설적 아름다움을 은폐하며 드러내고 있었다.
시간을 머금은 낡은 군사시설물의 모습이 역설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 그 자체가 실은 커다란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이었음을 이 역설의 아름다움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주변에 있지만 인식 지도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이러한 군사시설물이 우리가 망각한 전쟁의 공포와 지금까지 살아낸 평화를 응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이러한 역설적 아름다움이 경제발전의 욕망 아래 사라지고 있음에 한 번 더 주목했다. 몇 년 전 은평 뉴타운 현장에서 땅을 파고 산을 깎아내자 은폐되어 있던 군사시설의 날 것들이 마치 유물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작가는 현장에서 이들이 사라지는 현장을 지켜봤다.
경제발전의 욕망 속에서 파괴되는 벙커와 비트. 방어선과 방어막은 냉전의 종식을 알려주는 허구적 퍼포먼스 같아 보였다. 그래서 여전히 작가의 눈은 파괴되어 사라져 버린 군사시설물보다는 시간성 속에서 닳고 닳아 자연 속에 은폐된 벙커들의 역설적 아름다움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과거를 응시하고자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빛의 분수>라는 제목을 달았다. 빛이 차단된 벙커로 대표되는 군사시설에 끊임없는 분절을 통해 더욱 빛나는 ‘빛의 분수’라는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시간성을 품고 낡아가는 이들의 역설적 아름다움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박계리 /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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