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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 조직적 경제범죄와 야생자본주의의 이면 2016년 11월호

집중분석

조직적 경제범죄와 야생자본주의의 이면

 

지난 2011년 7월 7일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인 압록강 방산 마을에서 북한군 병사와 주민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

지난 2011년 7월 7일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인 압록강 방산 마을에서 북한군 병사와 주민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

권위주의·공산주의체제에서 민주주의·자본주의체제로 전환하는 경우 흔히 나타나는 오류는 국가의 상층부에서 진행되는 법·제도적 개혁에 과도한 관심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 경우 민주적 선거제도의 도입, 기존의 권위주의 국가권력의 해체, 자본주의 시장제도의 도입,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여러 법적인 정비 등이 주요 이슈가 된다.

소련-러시아의 체제이행 과정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1988년에서 1995년 사이 매우 중요한 시기에 대부분 논의의 초점은 기존 권위주의 국가권력을 무력화하고 절차적이고 제도적인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문제, 공산주의 경제시스템을 대체할 자본주의 시장시스템을 구축하는 문제, 이와 관련된 여러 법률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문제 등에 집중되었다. 체제이행의 문제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의 문제로 이해되었고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의 구축은 체제이행의 과제를 완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조직적 경제범죄, 그리고 뒤를 봐주는 정치권력자

하지만 소련-러시아의 체제이행 경험은 국가의 상층부에서 진행되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수행의 문제가 성공적인 체제이행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실상 체제이행에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가의 하층부에 있는 사회와 개인의 일상적인 삶의 문제였다. 기존의 국가경제 시스템이 사라지고 아직 새로운 시스템이 자리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와 개인의 윤리적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 그리고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가족을 돌보고 노후를 준비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보전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한 문제였다. 때문에 체제이행 과정에서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접근이 사회와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즉 보다 미시적이고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것들에 주목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앞서 제기한 거대한 이슈, 즉 기존의 공산당에 의한 권위주의 국가권력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 어떻게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정치, 정당, 산업, 금융, 그리고 시장시스템을 도입할 것인지, 그리고 법률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에 관심과 역량이 집중되었다. 자연스레 사회와 개인의 삶에 대한 문제는 내버려졌고 1990년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가를 약탈하고 사회 전반을 착취한 심각한 조직적 경제범죄의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접근의 산물로 남았다.

대부분의 범죄가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발생하지만 조직적 경제범죄는 이와 같은 목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며 하나의 경제적·사회적 제도로 해당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작동된다. ‘조직적’이라는 의미는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며 개별 행위자의 임무가 특성화·전문화·노동분업화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경영, 지휘, 통제 등의 조직화 현상이 나타나며 범죄활동이 지속성·연속성을 보인다.

이러한 조직적 경제범죄는 일견 사회에서 경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범죄적, 약탈적이라는 특성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활동과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범죄경제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치적 스폰서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이를 ‘크리샤(지붕)’라고 불렀다. 이 스폰서는 주로 군, 경찰, 정보기관 등 독재국가의 강성권력을 집행하는 주체들과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정치권력자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과거 1990년대의 소련-러시아 사례가 오늘날 북한의 문제를 마주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북한 역시 이러한 소련-러시아의 선례를 따를 수 있다. 소련-러시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과 사회의 다양한 욕망과 자존감, 이기심, 가치관 등은 생명력이 없는 상수가 아니라 살아 숨쉬고 요동치는 변수다. 이 미시적 요소는 체제이행의 성공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상호 연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은 북한의 미래 체제이행기에 어떤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조직적 경제범죄의 대두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실제로 오늘날 북한 사회에도 조직적 경제범죄의 본격적인 등장을 예견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지나면서 북한 사회 내부에서도 소련-러시아 사례와 유사한 환경적 변화들이 관찰되고 있으며, 이는 북한 사회의 조직적 경제범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소련-러시아와 비슷하게 적어도 지난 10년간 북한에서도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개인적 열망들이 분출되었고, 이와 동시에 이러한 사실상의 자본주의 활동을 규제할 법률적·도덕적 견제 장치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구조는 표면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닮아있어 북한 체제 변화의 긍정적 신호로 이해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사실상 범죄적이고 약탈적인 경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보다 더욱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를 양산해 낼 수 있다. 이 버려진 시장경제는 사회 전반의 범죄화를 촉진시키며 이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치권력자와 군, 경찰, 정보기관 등의 스폰서 체제가 고착화되는 장기적인 폐해를 야기한다. 러시아의 사례처럼 이러한 ‘사악한 구조’는 일단 형성되면 바꾸기 쉽지 않다.

마약, 밀무역, 인신매매 야생자본주의 징후 두드러져

북한의 환경적 변화를 추정할 만한 여러 정황 증거들이 있다. 우선 북·중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과 인적교류의 증가, 탈북자의 증가와 DVD나 USB, 휴대폰 등의 전파를 통한 물질적 부의 욕구를 강조하는 경향이 문화적으로 침투해 들어간 것이 그것이다. 또한 기존의 공산당 간부나 국가의 관료와 같이 전통적으로 선호되던 가치를 대체해 장마당이나 국경무역 등을 통한 돈벌이로 부를 추구하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특히 한국 문화의 확산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확산이라기보다는 물질적 부에 대한 욕망의 확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같은 듯 보이나 사실상 완전히 다른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20년 동안 북한 내부에서 장마당과 같은 사적 상거래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북한의 변화는 물질적 욕망에 대한 숭배와 추구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의 중요한 견제 장치인 도덕적 규범과 법률적 규제가 빠져있다.

자본주의는 물질적 욕망과 법률적·도덕적 견제에 의해 작동된다. 법률적·도덕적 견제가 빠진 채 물질적 욕망에 의해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를 우리는 ‘야생자본주의’라고 부른다. 북한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화 경향은 사실상 1990년대 러시아의 야생자본주의와 유사하다. 마약 밀거래의 번성과 여러 불법적 밀무역 및 인신매매 등 북한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바로 이 야생자본주의의 두드러진 징후들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가치의 붕괴나 규범의 혼란과 같은 징후들도 나타난다. 물질적 부가 유난히 강조되는 반면 정치제도, 가족과 지역 공동체, 그리고 과학기술제도 등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가치절하 되는 것이다. 북한의 국가권력은 외견상 보이는 김정은의 폭압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스토너-웨이스가 주장하듯 국가 권력의 힘은 국가 내부의 전 지역과 모든 개개인에게까지 국가의 정책방향과 집행력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재 김정은의 권력 집행은 평양의 지배계급인 상층부에 한정되어 있으며 지방 곳곳의 하위 단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방에서는 정부 관료들이나 군부 지휘관들이 지역 범죄세력이나 장사꾼들과 결탁하여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주민들을 착취하는 현상이 만연한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북한의 국가 권력은 상당히 약화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러 탈북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군이나 인민보안성의 지위는 주민에게 세금을 강제 징수하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군인이나 경찰은 더 이상 존경이나 위협의 대상이 아닌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가족과 지역 공동체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해 가출, 탈북, 그리고 빈부격차 등의 다양한 이유로 해체되었다. 대학과 과학기술 분야 역시 일부 학교기관이나 원자력 등의 핵심 연구시설을 제외하고는 가치 절하되거나 심각한 수준으로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청진, 흥남 지역의 마약이 이 지역 화학공장이나 연구시설의 연구원들에 의해 제조되고 있는 것은 이들 시설과 연구자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중단되었으며 임금이나 배급이 거의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의 무질서는 조직적 경제범죄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장마당을 중심으로 상인들을 협박해 보호세를 받거나 마약을 몰래 유통시키는 등의 범죄세력들이 상당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가권력 집행자들의 부패 정도도 심각하다. 이들은 범죄세력과 결탁하여 범죄자의 뒤를 봐주고 돈을 챙기거나 본인들이 직접 범죄 또는 각종 이권사업에 뛰어들기도 한다.

국가와 주민 모두에 뿌리내린 범죄적 인프라 우려스러워

더불어 북한은 노동당 39호실을 포함한 국가기관 자체가 마약거래, 돈세탁, 위조지폐 제작, 무기 밀거래와 같은 국제성 조직범죄를 주도하고 있다.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직·간접적으로 많은 국가기관 행위자들이 조직적 경제범죄에 연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약 남용은 북한 사회에 일상적일 정도로 널리 번져있다. 이러한 정황은 북한 사회에 이미 조직적 경제범죄의 전조 징후들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때문에 이러한 범죄적 인프라는 미래 북한의 체제이행기에 조직적 경제범죄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소련-러시아의 경험은 미래에 예상되는 북한의 체제이행을 준비하기 위한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현재 북한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혼돈스러운 징후들은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 한다. 성공적 체제이행을 위한 법·제도적 준비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며, 사회와 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와 준비 역시 필요할 것이다. 소련-러시아의 선례는 이러한 사회와 개인에 대한 이해가 성공적인 체제이행을 위해 매우 중요함을 보여준다.

윤민우 /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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