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 냉전기 ‘팍스 아메리카나’ 선전의 이면은? 2016년 12월호
Book Review
냉전기 ‘팍스 아메리카나’ 선전의 이면은?
“CIA 국제조직국의 목표는 소련에 대항해 지식인들을 규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파시스트적이고 스탈린주의적인 예술, 문학, 음악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죠. 우리는 예술가였던 사람, 작가였던 사람, 음악가였던 사람,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을 규합하고자 했습니다. 서유럽과 미국이 표현의 자유, 지적 성취에 매진하고자 한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고, 거기에는 쓰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 해야만 하는 것, 그려야만 하는 것처럼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 됨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소련에서 당시 예술가와 지식인들에게 가해지고 있던 바로 그 제한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 일을 멋지게 해낸 것 같습니다.” (172쪽)
이 책은 냉전의 확산과정 속에서 미국이 어떻게 지식인과 예술을 활용했는지를 탐사보도의 방법론을 통해 밝혀낸 역작이다. 구체적으로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소위 ‘미국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지식인들을 내세운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이면서 동시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으로서, 저자는 1950~67년 냉전 시대 서유럽에서 펼쳐진 미국의 ‘문화 프로파간다’ 공작을 그야말로 속속들이 파헤친다. 예컨대 세계문화자유회의라는 비공식 민간 위장단체가 대표적인데, 이 조직은 서유럽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미국적 가치와 사고방식을 내면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즉 ‘팍스 아메리카나’의 문화적 차원을 담당하였다.
동시에 조지 오웰, 버트런드 러셀, 장 콕토, 한나 아렌트, 솔 벨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쇼스타코비치, 레너드 번스타인, 대니얼 벨, 아서 슐레진저 2세 등 서방 지식계를 이끈 유명 인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내고 ‘의외의’ 지식인들까지 등장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히 개별 지식인의 숨겨진 실체를 폭로하고 그 변절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독해해서는 그 진정한 의미를 놓칠 수 있다. 오히려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구체적인 역사적 지평 속에서 사고해봄으로써 지식의, 그리고 지식인의 근거는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현실감 있게 묻는 것으로 이 텍스트를 곱씹어보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독해가 될 것이다.
본 저서에는 역사학에 기반한 풍부한 사료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탐사 보도 기법에 기반한 방대한 인터뷰를 통해 발굴해 낸 적나라한 이야깃거리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유려한 필체와 결합해있다. 이로 인해 700쪽이 넘는 방대한 저술임에도 불구하고 냉전시대의 또 다른 차원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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