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 and the City | ‘평해튼’과 ‘포템킨 마을’의 사이에서 2016년 12월호
N.K and the City 3
‘평해튼’과 ‘포템킨 마을’의 사이에서
건설 붐, 그것은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를 상징한다. 여성들의 현대화된 옷차림, 햄버거와 커피 등으로 표현되는 서구화된 소비문화 속에서도 나날이 변화하는 북한 주민의 일상을 발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고층 아파트와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한 수도 평양의 새로운 건설 붐이야말로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변화를 종합하고 압축한 하나의 상징적 재현이 되고 있다. 물론 이 변화는 지난 시대와의 단절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문양으로 한 새로운 욕망, 즉 새로운 유토피아의 구성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북한에서 건축물의 창조는 기본적으로 지도자를 형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 건축가들은 인민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의 통치 능력과 그 성과를 형상화하고 수령의 지도에 보답하기 위해 당과 수령이 제시한 과업을 수행하는 인민들을 재현하고자 애쓴다. 수령과 수령의 지도를 형상화한다는 궁극적인 목적으로 인해 건축가는 건축물의 무대 뒤로 사라진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건축가들은 기껏해야 지도를 자각하고 깨우친 기술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러는 영웅 호칭도 받고 ‘인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건축가로 널리 이름을 떨치기도 하지만 독창적인 재능을 지닌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당과 지도자의 사상을 자각한 집합적 주체로서 평가되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자의적이고 순간적인 코멘트가 담긴…
또한 도시 건축물의 형식적인 측면은 최고지도자의 자의적이고 순간적인 코멘트와 지시가 결정적인 경우가 허다했다. 김정일은 건축물 형식에 매우 적극적으로 손을 댔는데, 대표적으로 거대한 도심 거리 조성 프로젝트를 지시하고 호텔과 아파트 등의 건축적 외관을 결정하는 데 있어 그러했다. 따라서 아파트의 외관을 곡선으로 형상함으로써 거주 목적과는 무관한, 그저 외관을 위해 소모되는 공간이 여기저기 발생하는 등 건축 자체의 논리가 심대하게 훼손되는 사례들도 발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지도의 형상과 더불어 지도의 성과를 재현하기 위한 인민들의 광장과 공공건축물, 권력과 인민의 일치를 상징하는 조형물, 그리고 수령의 거대함을 추상화한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대도시의 중심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각각의 도시 구성물들(광장, 거리, 기념비, 공공건축물 등)은 국가의 정치적 위계를 도시 내에 상징·재현하기 위한 독특한 배열과 배치를 보여주게 되는데, 그리하여 도시 자체가 하나의 국가적 내러티브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요컨대 지도와 사상, 대중 동원과 속도야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건설과 건축의 패러다임이었다.
수도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고층 건물들로 수놓음으로써 근대화를 넘어 ‘문명화’를 실현시키겠다는 김정은 시대의 도시 모델은 지난 시대의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유지, 동원함으로써 실현되고 있다. 즉 시장화 된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새로 출현하는 건설 자본이 유무상의 사적 노동력 동원을 통해 속도전의 건축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강국건설과 문명화된 삶의 향유라는 새로운 지도 사상을 재현하는 스펙터클로 인민들에게 시현된다. ‘주택소구역(microdistrict)’으로 대표되는 평등한 도시 공동체의 이념은 차등화·계급화 된 도시 내부구조로의 변화를 발생시키고 있다. 도시 모델이 사회적 삶의 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근대성의 지평 속에서, 팽창을 경계하고 내부의 균형과 사회적 평등을 강조했던 패러다임은 새로운 도시 형식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서구 혹은 동유럽이나 중국의 현재를 모방하면서도 지난 시대의 낡은 문법에서는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실과 상관없이 외관상으로만 행복한?
미래과학자거리가 완공되었을 때 김정은은 “조선혁명의 여명이 밝아오는” ‘여명거리’의 개발을 지시하면서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초고층 빌딩”이 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평양의 고층 아파트가 붕괴하고 고위층 간부가 평양 주민들 면전에서 고개를 숙이는 초유의 사태 또한 목격했다. 원근법의 중심에서 펼쳐지는 인상적인 초고층 빌딩의 도시 모델 속에서 1년도 안 된 아파트의 타일이 떨어져나가고 전기 공급은 여전히 들쭉날쭉 하는가 하면 엘리베이터가 없어 가능하면 낮은 아파트를 찾아 나선다.
스카이라인으로 상징된 김정일·김정은 시대의 도시 모델은 이처럼 전형적인 권력자의 원근법적 시야와 외부를 향한 인정 욕구의 결합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델을 실현시키기 위한 내부의 논리는 낡은 시대의 슬로건으로부터 질적인 단절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김정은 시대의 도시는 ‘평해튼’의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외관상으로만 행복한 허울을 가리키는 ‘포템킨 마을’이 어지럽게 뒤섞인 어디쯤에선가 방황하면서 낡은 시대의 레코드를 반복적으로 틀어대는 모습이다.
한재헌 /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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