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트럼프, 현실적응형 실용주의자 … 대미 전략적 목표 긴요하다 2016년 12월호
시론
트럼프, 현실적응형 실용주의자 … 대미 전략적 목표 긴요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주의’ 또는 ‘트럼프주의’로 채색화 된 미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트럼프주의’의 대두는 비단 미국 국내정치의 본질을 바꿀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도 바꿀 것이다. ‘트럼프주의’는 미국 정치에서 단순히 일회성이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될 수 있는 돌발적인 사태가 아니다. 오랫동안 그 에너지가 축적되어온 구조적인 현상이다. 다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글로벌리즘의 대세 속에서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미국의 국제정치와 경제적 헤게모니가 약화되고 있는 것과 맞물려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신 고립주의적 성향이 미국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고 심각한 내홍을 치러야 할 것이다. 미국의 주류 사회는 여전히 국제주의로 무장한 의회와 관료사회, 재계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 당선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정책들을 추진함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타협들이 이미 취임 이전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긍정적인 현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북핵문제 관련 고정관념 없어 … 기회 될 수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트럼프 당선자는 우리가 당초 우려하던 것과 달리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번 박근혜 대통령과 통화에서 한국에 100% 지지를 보낸다는 말을 했다든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선거 기간에 보여준 한국에 대한 지나친 언사들을 씻어내려는 ‘의도된 우호적 제스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역시 북핵문제다. 미국의 새 정부가 이를 한국과 함께 어떻게 다뤄나갈지가 현재로선 가장 큰 관심사이며 이것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변수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치가 심각한 혼란 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인 만큼, 여태까지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 중에 한국 측의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민감한 시점에서 미국의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했기 때문에 더욱 명민한 전략이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자 본인은 북핵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백악관의 안보 관계자나 내각, 그리고 의회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되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인 측면이라 할 수 있고 잘 활용하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북핵문제가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새롭게 등장할 미국 행정부와 매우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의회도 북핵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의회를 설득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다만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임명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5월초 정도까지는 양측이 매우 구체적인 수준에서 정책을 조율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워진다. 따라서 이 공백 기간 속에 한국 측이 리더십을 가지고 북핵문제를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며 현재 대북압박 정책 외에 마땅한 해법의 수단이 없는 만큼 이러한 기조 하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대북압박을 통해서 북한이 핵포기의 길로 나오도록 미국의 신 행정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북한, 도발로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 시험할 것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미국의 행정부 교체기를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따라서 북핵 현실화 여부의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러한 호기를 절대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북한은 조만간 새로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 테스트에 나설 것이다.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단 하나다. 미국으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이는 이루게 해서도 안 되고 이룰 수도 없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철저한 공조만이 답이다. 한국의 대미 전략적 목표는 이것에 오롯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일생의 족적으로 보면 신기루를 쫓는 이상주의자보다도 현실적응형의 실용주의자로 보인다. 이러한 그의 성향과 더불어 새로 들어서는 트럼프 내각과 미 의회의 전반적인 환경은 적어도 안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에 크게 불리하지 않다. 우리가 어떠한 대미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이를 추구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의 리더십이 위기에 있는 만큼 외교·안보 분야 주요 정책집행자들의 결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인택 / 고려대 정외과 교수 (제35대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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